박완서 작가님의 '마른 꽃' 중에서
처절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견디며 지냈던 시간, 혹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내몰렸을 때 할 법 한 행동을 하며 보낸 시간을 표현하고 싶을 때 ‘짐승스러운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말은 박완서 작가님의 단편소설 ‘마른 꽃’에 있는 내용으로 사별한 노년의 여성과 남성이 만나고 사귀게 되는데 서로의 가정에서 자녀들이 두 사람의 재혼을 바라게 된다. 노년의 여성은 생각한다.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짐승스러운 시간’을 보낸 사이가 아니기에 다시 결혼해서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부부가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시간들을 ‘짐승스러운 시간’이라고 표현하다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주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혼하자마자 3개월이 되었을 때 임신을 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방귀로 일찌감치 방귀를 텄고 출산 후 모유수유를 했기에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 잠이 들기 일쑤였다. 3시간마다 수유를 하니 늘 수면부족 상태였고 아이의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재우고 뒤처리를 하는 것은 내가 살면서 경험한 가장 극한 육체노동이었다. 봉두난발에 둔탁한 수면잠옷으로 더 도드라진 찌고 부은 몸, 턱까지 드리워진 다크서클에 퀭한 눈으로 나는 나의 이 모든 사태는 남편의 탓인 양 얼마나 눈을 흘겨 대고 거친 말을 쏟아냈는지 모른다.
그렇다! 부부가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시간은 ‘짐승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것은 지극히 본능적이고 순수한 일이기도 하다. 박완서 작가님은 이 글에서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 의미를 내 나름대로 해석한다면 극한 상황을 견디는 것과 동시에 본능적이면서도 순도 높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상황을 누린다는 의미 이기도 한 것이다. 함께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시간은 극한체험임과 동시에 순수한 기쁨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함께 짐승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남편을 바라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박완서 작가님의 마른 꽃 중에서>
“내복을 갈아입을 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 굴 비듬, 태산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 곪, 아무 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올린 진한 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 제아무리 거드름을 피워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 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없는 잔소리, 백 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들이 너무나 빤히 보였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 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재고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불가능을 꿈꿀 나이는 더군다나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