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엄청 덥다. 예보로는 오늘 섭씨 35도를 접수했다고 한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운동하러 나갔다. 당연히 운동하는 사람의 수가 많이 준 것을 느낀다.
차마 돌아설 수 없어서 천천히 걷는다는 게 반환점까지 왔다. 일요일에는 교인들이 성경 공부한다고 점령하는 곳인데, 오늘은 좀 특이한 분이 점령하고 있어서 그 자리는 포기하고 다음 벤치로 갔다.
나는 이 동네에서 걷기 운동을 적잖게 해온 사람인데, 이렇게 벤치 하나를 독차지한 사람은 처음이다. 길게 누워서 부채질을 살랑살랑하고 있다. 그분은 할머니도 아니고 그냥 아줌마였다. 따로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귀퉁이에서 몇 자 적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음 벤치에서 글을 쓰려고 찾으니 볼펜이 안 보인다. 앞 벤치에서 흘리고 온 모양이다. 더운 날에 거기까지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간들 그 볼펜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생각하니 깜냥에는 오래 쓴 볼펜이니 행방 정도는 확인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았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멋쩍은 짓은 없다. 힘없이 걷는데, 내가 앉아서 쉬던 벤치 10여 미터쯤 앞에 볼펜이 떨어져 있다. 놀랐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기대도 안 했었다.
정황으로 봐서는 내가 거기다 볼펜을 떨어뜨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가장 온전한 추측은 글을 다 쓰고 볼펜을 주머니에 넣는다는 게 실수로 떨어뜨렸을 것이라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데 볼펜은 으슥한 벤치 부근이 아니라, 거기에서 한참이나 앞으로 나온 길 정중앙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무리 내 머리가 낡았다고는 하나, 생각하면 누군가가 볼펜을 주워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잘 보이는 곳에 두면 잃어버린 사람이 찾아갈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
볼펜을 주워들고 주위를 살피니 제법 많은 사람이 지나다닌다. 볼펜이 안 보인 게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니니 주인이 올 때까지 그냥 두고 갈 길을 간 것이다.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머리 하얀 영감 한 명이 서 있으나 투명 인간인 듯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누구 것이든 상관없이 먼저 본 놈이 임자라는 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
윗물은 썩어서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냄새를 풍기며 발광(發狂)하고 다니는데, 거기서 썩어 흘러내리는 아랫물은 흐르고 흘러 이토록 아름답도록 맑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누구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