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갔다 오세요?”
흐릿한 눈으로 상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노인이 힘없는 소리로 묻는다.
“뉘신지요? 혹시, 나를 아시나요?”
황당하다는 표정의 젊은이.
“아이참, 아버지도·····.”
이런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인가. 외모는 멀쩡한데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읽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치매(癡呆)다. 요즘 집 나간 후 연락이 안 되는 어른들을 찾는 광고가 핸드폰에 자주 뜬다. 남의 일 같을 수가 없다.
우리는 살아 숨 쉬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일을 결정하고 그 집행까지도 한다. 작게는 텃밭에 푸성귀를 골라 심는 일부터, 크게는 원자력 발전소를 깨부수기도 하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오염수를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남의 나라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 반면에, 선하거나 악하거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도저히 결정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신의 거취 문제다. 살고 싶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더 살 수도 없을뿐더러 당장 눈을 감고 힘들고 마음에 안 드는 이 세상에서 떠나고 싶은데 그걸 본인이 결정할 수도 없다.
요즘 나는 아무래도 내 권한 밖에 있는 것 같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본 적도 없는 귀신이 무서워서 이불 속에 꼼짝없이 숨어 머리카락 보일까 걱정하던 어린 마음은 아니다. 깜냥에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은 넘겼던 사람으로서 가능하다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다. 지금 내 생활이 곤궁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콱 죽어버릴까 보다, 하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 글을 여기까지 쓰는 데 며칠이 걸렸다. 내가 화두(話頭) 삼아 내건 죽음(死)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지금 심정은, 겁 없이 여기까지 왔다가 며칠을 실랑이하고 난 뒤 슬그머니 물러설 것 같은 남사스러움이 쌓여만 간다. 그래도 어쩌랴. 일단 여기서 멈추겠다. 미완성인 이 글을 지울까 하다, 그래도 내가 치열하게 매달렸던 흔적은 남기는 게 나를 위로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 더 책을 읽고 고민한 후에 오늘 완성하지 못한 이 글을 이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