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진채 Sep 22. 2023

떼거리

‘떼거리’의 사전적 의미는, ‘떼’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만 나와 있다. 사전(辭典)의 이런 대목은 나를 당황하게 한다. 그래서 다시 ‘떼’를 검색했다. ‘떼’란, 목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무리라고 되어 있다. 왠지 같은 말을 두 번이나 듣는 기분이다. 

여하튼 ‘떼거리’라는 단어는 우호적이지 않다. 입에 넣고 웅얼거릴 때 느껴지는 느낌까지 그렇다. 우리가 은연중 거부감을 느끼는 당(黨)이라는 단어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셋만 넘어서면 분열한다는 그런 선입견 말이다.   

  

아침 운동하러 나오면 운동 코스에서는 제일 큰 팔각정에 모여서 이야기하는 남자 노인 떼거리가 있다. 항상 내가 먼저 나와서 약간 떨어진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그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모이는 게 보통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큰 것은 떼거리를 형성한 기(氣)를 과시하기 위한 영웅심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들의 상당수는 귀가 안 좋을 것이다. 귀가 안 들리면 당연히 자신에게 잘 들릴 정도로 볼륨을 높이게 된다. 그중 몇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겠지만 곁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이유도 없이 덩달아 다투듯이 언성을 높이는 게 습성이다.  

   

그들은 적게는 일곱에서, 많으면 열둘 정도가 모이는데 주제 같은 건 없고 토론이랄 것도 없이 그냥 몇 마디 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정도로 끝나는 수가 많다. 일부는 오가는 대화에 관심조차 안 보이기도 한다. 멍하게 앉아 있거나 팔각정 주위를 빗자루로 쓰는 사람도 있다. 그 자리에 머무는 시간도 예상보단 짧다. 그러나 그분들은 생각은 따로 있어 보인다. 자신과 다른 화제에 겉으로 반응을 내보이는 것을 자제할 뿐이라고 나는 읽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토론에 서툴다. 여럿이 모여도 갑론을박(甲論乙駁)을 은연중 피한다. 그래서 어떤 여론이 현장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역사를 바꿨다는 촛불집회에 가서도 앞에서 열정적으로 하는 주장을 듣고 앉아 손뼉만 치고 있다가 연단에서 유도할 때만 우~우하는 고함을 지를 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세계가 놀랄 합리적인 일을 혼돈 없이 이루어 왔었다. 

    

요즘은 사회가 조용하지 않다. 나도 겉으로는 무심한 척하지만 관심이 많다. 내 나름의 의견도 있다. 그러나 밖으로 내색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젠 팔을 걷어붙이든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이다. 우리나란데·····.   




  

작가의 이전글 길 곁에 샛길을 만드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