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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Sep 25. 2023

개 팔자

아주 오래전에 읽은 단편소설이 생각난다. 그래 정말 오래된 이야기다.

제목은 잊었는데, 꼴통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나이 많은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다. 저 자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있는 건 다 없애버렸고 내가 물려줄 것은 저것밖에 없다고. 마당 한구석에 있는 개집 앞에 굴러다니는 흙 묻은 개밥그릇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작지만 온전해 보이는 사기 사발이다. 

“저 사발은 진품이다. 저걸 내가 소중하게 아꼈더라면 그 자식이 이미 갔다가 없앴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이다. 사실(fact)일 수도 있으나 가공된 이야기(fiction)인 것이 일반적이다.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넌지시 말하는 것은 어머니의 깊은 뜻이다. 자신이 없을 때를 예비하는 것이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들의 배우자로 기대한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고, 저건 적잖이 귀한 것이니 알고 있으라는 귀띔이다.    

  

그 이야기의 어디에고 개에 관한 언급이 없다. 저놈이 진돗개라던가 아니면 풍산개라는 그런 말은 없고, 개는 말 그대로 그냥 개 취급이다. 

엎어진 개밥그릇, 밟힌 개똥, 바로 그 옆에 무심한 듯 엎디어 있는 개. 

그런 모습에 그 어떤 안일을 느낄 수 없다. 그러함에도 아주 자연스레, 쇠말뚝에 묶인 굵은 쇠사슬을 목에 건 개는 전혀 불만이 없어 보인다. 

그 소설에서는 개는 흙범벅이 된 채 엎어져 있는 개밥그릇에도 미치지 못하는 존재다.  

   

개는 인간과 가깝다. 단군신화에는 곰에 밀려 등장할 기회를 놓쳤지만, 그 후로는 꾸준하게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고 있다. 그러함에도 그들의 부침(浮沈)은 복잡하다. 복날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게 좀 뜸해지자 밀려오는 외국 종자에게 사랑받던 자리에서 밀려나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도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그래도 아직 개의 위상은 나름 괜찮은 편이다.

사람이 화가 나서 하는 말 중에, ‘개 같은 놈’이라는 말은 거의 비등하게 사람과 비교 대상이 된다. 더한 것은, 사람이 사람더러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도 한다. 사람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공식 인증이니 얼마나 영광인가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어지간한 개는 나를 봐도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머리 허연 영감 정도는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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