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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Sep 27. 2023

내게 명절이란

내일부터 명절 연휴가 시작되니 추석이 코앞에 다가선 게 맞다. 그래도 아직 명절을 느끼게 하는 모습은 안 보인다. 내게도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내는 조용하게 명절 음식 거리를 사들이는 모양인데 겉으로는 별 내색이 없다. 아내의 성격에, 말이 없어지는 것은 마음에 걸리는 게 많다는 뜻이다. 뻔한 액수의 범위 안에서 처리해야 하니 할 말이 없겠다. 그런 일이라면 넉넉하게 챙겨주지 못한 나도 할 말이 없다. 

살아가면서 제 잘못을 떠넘길 대상이 없는 것처럼 황당한 일은 없다. “우리가 여유가 없는 것은 알량한 조상 탓이야!”라고 떠넘길 수라도 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은데·····.  

   

내게 명절이란·····. 글쎄.

추석은 성묘가 중요한데 나는 고향이 먼 남쪽이어서 그것도 어렵다. 고향이 먼 것보다, 고향에 가까운 친척이 전혀 없다는 것이 고향길을 막는 이유다. 

가까운 곳에 사촌들이 살아서 명절에는 목동 형님댁에서 다 모였었는데, 며느리의 눈치가 보인다는 형수님 말씀에 몇 년 전부터 그 일도 관뒀다. 

우리 집은 명절 직전인 내일 아내가 세 며느리를 데리고 앉아서 음식 장만을 할 것이다. 음식이 다 되면 저녁에 일단 제집으로 갔다가 아이들 데리고 와서 아침 먹는 게 고작이다. 아이들에게 설날은 세뱃돈 받는 기대라도 있지만, 추석은 특별히 손꼽을 이유가 없다. 

내게 셋이나 있는 아들들은 밥 먹고 밋밋하게 앉아 있다가 처가에 아니면 바람 쐬러 간다고 아이들 데리고 가버린다. 그러면 단둘이 남는다. 그래도 섭섭할 이유가 없다. 이젠 익숙해진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밖에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을 들었을지라도 종종걸음 걷는 사람이 안 보이는 것으로 봐서 빗발이 긁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이리 아닌 듯 내리는 비는 사람을 더 답답하게 한다.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가 조금만 더 각(角)이 지면 사람의 반응이 달라진다. 그리 콩 볶듯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묘한 반전이다.  

   

비 뿌리는 날에 걸맞게 기분이 서서히 젖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8층 창 앞에 서서, 밑에 엎뎌있는 행신역을 내려다보고 있다. 역 앞으로 우산을 쓴 사람이 바쁠 일 전혀 없다는 걸음으로 지나간다. 선물꾸러미도 없이 그냥 빈손이다. 벌써 고향으로 가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아마 내일 새벽쯤은 출발하겠지. 뭐.   

  

문득 시계를 돌아본다. 지금 시간은 오전 10시 35분.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이건 가슴을 휘감는 회한(悔恨)이 아니다. 내 낡아버린 몰골에 지레 외로워하는 게 분명하다. 종점 어림에서 서성이는 늙은이의 마음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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