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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Sep 29. 2023

추석날 새벽

추석날 아침이다. 아침이라기보다는 새벽인 셈이다. 오랜 버릇으로 아직은 어득한 새벽에 일어난다. 

가만 생각하니 정말 여러 번 맞은 명절이다. 철없던 시절은 빼더라도 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다. 한 가정을 이루고 산 지도 아득하다. 큰 손녀가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다. 그 밑으로 올망졸망 다섯이나 된다. 정말 오랜 세월을 꼼지락거렸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어제 음식 장만을 마치고 온 가족이 같이 저녁을 먹고, 아이들은 음식을 조금씩 싸 들고 돌아갔다. 몇 년 전까지는 명절 아침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목동 형님댁으로 갔으나 근래에는 그냥 또 집으로 온다.  

    

지금은 이른 새벽이라 아내와 들이만 있다. 아내는 아직 잔다. 

식구가 많은 집에서 자란 아내는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손이 크다. 세 며느리에게 가능하면 많은 것을 들려 보내고 싶어 한다. 어제 종일 음식을 만들고는 그걸 거의 다 나눠서 보내곤 흡족해하는 것 같다. 형님댁에서 하던 게 버릇이 되어 따로 명절 상을 차리지 않아서 그렇다.

     

며칠 전부터 감기기가 있다. 날이 종잡을 수 없어서 몸이 그에 대응하지 못하는 게다. 새삼 그럴 나이가 되었다는, 조금은 암담한 기분으로 혼자 앉아 있다. 이런 일은 은연중 일상으로 자리 잡혔다. 노틀의 징표인 게다. 서글프게 시리.

     

이번 연휴는 길다. 어제까지 포함하면 빨간 글씨가 6일이다. 이 긴 휴일을 이용해서 여행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계획이 없다. 전에 취미로 사진 찍으러 다닐 때는 무던히도 싸돌아다녔는데 그 반작용인지 요즘은 한 발짝도 움직이고 싶지 않다. 차를 없앤 지 2년이 넘었는데 전혀 답답하지 않다. 물론 아내는 무척 불편해한다.     


날이 밝아 온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아침이다. 오늘 오후쯤에 나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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