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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Oct 04. 2023

거시기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온 삭신이 아프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나는 사전을 찾아본 적은 없으면서도 우리 고향의 사투리쯤으로 치부했다. 지방 출신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조금은 열등감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사춘기에 부산에 가서 무심코 ‘여덟 시’를 ‘야달 시’라 말해서 곁에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주눅이 들어 말하는 게 두려웠다. 그건 지금까지도 내게 작동하고 있는 트라우마다.    

 

그러다 오늘 무슨 생각에서인지는 몰라도 국어사전에 ‘삭신’이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역시 전라도 사투리였다. 사전에 ‘삭신’은 ‘몸의 근육과 뼈’를 이르는 말로 나와 있다. 나는 그 뜻을 확인하기 전에 이미 그 단어를 기피 단어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나는 아파했다. 

    

사투리는 전라도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전라도 사투리는 유난히 열등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본인들이 만든 자격지심은 아니다. ‘야달 시’에 무안을 당한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말하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경상도 말은 구조상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또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국어책을 읽는 식으로 말했다. “식사하셨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투는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내가 경기도 고양시에서 산 지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고향에서 16년, 부산에서 13년, 전주에서 12년을 살았으니 이곳에서 제일 오랜 34년을 산 셈이다. 이곳에 올 때 내가 여기서 이리 오래 살리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의외로 많은 곳을 방황한 셈이다. 한 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흘러 다닌 그 세월이 어찌 편할 수 있었겠는가. 더 아픈 것은 내 고향 해남에서는 고작 16년을 살고서 보자기에 당장 갈아입을 옷 몇 벌 싸 들고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열여섯이면 아직 어린애다. 그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서러움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유난스레 고향 사투리가 입속에 맴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거시기’다. 이 단어 하나가 가지고 있는 확장성은 그 어느 말도 따라올 수 없다.

전에 손석희 앵커가 말했다. ‘거시기’라는 단어의 뜻은 3,000개가 넘는다고·····.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이 말은 말문이 막할 때 그 곤혹스러운 순간을 무난하게 넘길 수 있는 임기응변의 수단으로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말이다. 그 유연함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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