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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Oct 06. 2023

보청기

오랜만에 보청기를 꺼내 본다. 이걸 맞추기 전에는 말이 안 들린다는 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큰돈 들여 맞춘 이 물건이 의외로 쓸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자주 느낀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잊은 탓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과 어울리는 횟수가 줄어든다. 은근슬쩍 나를 피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지만, 나도 예전과 달리 사람과 어울리는 게 부질없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보청기는 책상 서랍에 있는 때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부쩍 늙어버린 자신을 보는 게 좋을 사람이 있는가?

특별한 사고가 나지 않았는데도 남이 하는 말이 잘 안 들리는 건 나이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예?.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라고 되묻는 일이 즐거울 사람은 없다.  

   

내가 보청기를 맞출 때 잘못 생각한 건, 그렇게 자주 되묻는 상대가 아내 외에는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잊은 점이다. 아내란 묻고 또 물어도 미안하지 않은 상대다. 그래서 없는 돈에 보청기를 산 내 판단을 후회한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건물주가 노크하고 들어온다. 나보다 서너 실이 많은 분이다. 이리 큰 건물을 가지고 있는 분이 의외로 소탈해서, 일개 세입자인 나를 찾아와 이야기하다 가는 분이다. 이야기래야 그냥 지나가는 세상 이야기다. 이런 일이 잦은 것은 두 사람의 성향이 비슷한 탓일 것이다.


길게 이야기한 건 아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이 점점 안 들린다. 내 귀 탓만은 아니다. 그분은 원래 조곤조곤 말하는 편이어서 알아듣기 어렵다. 

예전에 눈치채지 않게 살폈는데 그분은 보청기 같은 것은 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말이 잘 들린다는 것은 대단한 건강이지 싶어서 항상 부러웠다. 그런 아쉬움이 있는 분 앞에서 새삼스레 책상 서랍에서 보청기를 꺼내 낄 수는 없다. 그게 예의에 벗어나서가 아니라 젊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말씀 좀 크게 하시지요.” 할 형편도 아니다. 그분의 입을 유심히 살피는 게 고작이다. 아무리 내가 용을 써도 이야기가 겉돈다는 느낌이다. 힘든 시간이었다.

가뜩이나 정이 안 가는 보청기는 밉상스럽게 지금 같이 필요할 때 서랍에서 자고 있다. 그렇다고 날이면 날마다 혼자 있으면서 보청기를 끼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근래 들어 혼자 중얼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너, 요즘 어려운데 꼭 더 살아야 하냐? 좀 빠르긴 한데 이쯤에서 관두면 안 될까? 숨 쉬는 것 말이야.”   

  

아직 눈을 감지도 않았고 타지도 않은 엘리베이터가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는 기분이다. 늙는다는 게 이리 어려울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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