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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Nov 24. 2023

용불용설(用不用說)

‘용불용설(用不用說)이란,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세대를 거듭함에 따라서 잘 발달하며, 그러지 못한 기관은 점점 퇴화하여 소실되어 간다는 학설’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간단하게 해석하면,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는 것, 그건 아주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잠시 관리를 소홀히 했을 뿐인데 나쁜 결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자신이 감내해야 한다는 건 가혹한 일이다. 이렇게 걷기 운동하는 것을 어제 겨우 하루 쉬었을 뿐인데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얼마나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야, 그 용불용설에 해당하는지 알고 싶다.   

  

내가 허리를 앓아야 할 정도로 주위 여건이나 상황이 열악했던 적은 없다. 나는 원래 게으른 사람이니 육신을 혹사한 적은 결단코 없다. 그래서 본인의 무관심이나 방관하고는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내 아픔의 내력을 생각하면 이 심한 고통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아픈 정도가 하루를 건너뛸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몰아치는 태풍처럼 걷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뭔가? 5번과 6번 척추가 협착과 탈골이라고? 왜? 그 원인은? 

    

나이를 제법 드신 할머니 한 분이 걷다간 멈춰서서 손을 뒤로 돌려 허리를 한참이나 두드리다 다시 걷는다. 나처럼 허리가 아픈 분이다. 물을 것도 없이 우리는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 뜻을 같이한 적이 없으니 동지라 할 수는 없고 애잔한 환우(患友)인 셈이다.     


위로의 말이라도 건넬까 하다가 부담으로 작용할까 봐 그냥 지나쳤다. 그러나 마음이 걸려 금방 되돌아봤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아주 천천히 걷는다. 하루 이틀 아픈 몸짓이 아니다. 

이젠 식구들에게 아프다는 소리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될까 봐 조심스러운 게다. 아파본 사람은 안다. 피붙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아픔을 호소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이렇게 허리가 아파서 돌아가시는 분은 없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은 바로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이리 살아서 뭐 하겠냐고 한탄한다.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뜻이다.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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