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에 집으로 가는데, 아파트 놀이터에 서 있던 여정이가 나를 보곤 눈물을 흘리며 털어놓는다. 조금 전에 옷에다 쉬를 했다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농협이 문을 닫는 오후 늦은 시간의 아이들 놀이터에는 화장실이 없어진다. 좀 큰 아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가서 해결하지만, 아직 어린 여정이는 그런 융통성이 부족하다.
우리 시절에는 소변 같은 것은 시(時)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었다. 또래 여자애가 보는 앞에서도 당당한 자연인이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옷이 젖어도, 아무 데서 옷을 벗을 수 없다는 자의식(自意識)이 분명하다.
굵은 눈물을 흘리는 여정이에게 할아버지도 어렸을 때 그런 일이 많았다고 위로했다. 사실은 내 이력에, 옷에다 쉬 할 일은 근본적으로 없었다. 그러고 싶어도 우리 시절에는 보이는 모든 곳이 다 화장실이었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말은 여정이한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옷에다 응가를 한 적이 두어 번 있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정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서 할머니에게 인계한 뒤, 나는 자의식(自意識)이라는 단어에 매달렸다.
자의식에 대한 명징한 해석이 알고 싶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자의식(自意識)
자아철학(philosophy of self)에서, 자의식 또는 자기인식, 자기지각, 자아인식(self-awareness)은 자신의 인격(personality)이나 개별성(individuality)에 대한 경험이다.[1][2] 감각질(qualia)에서 경험되는 의식(consciousness)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의식은 개인의 환경, 신체, 생활양식을 인식(awareness)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자의식은 그러한 인식을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3] 자의식은 개인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성격(character), 느낌, 동기, 욕구(desire)를 잘 알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자의식에는 크게 내적 자의식(internal self-awareness)과 외적 자의식(external self-awareness) 두 범주가 있다.[4]
내가 검색한 내용이다. 무슨 소린지 알 수 있는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정직하게 모른다고 실토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식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