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 늦은 사모곡 -
그녀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사십 대 후반으로 넘어간다는 얼굴은 새댁의 보시 시한 솜털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쳐다볼 정도로 앳되고 맑은 얼굴이다. 그렇다. 얼굴이 아주 앳되었었다.
친정 아버님은 목회하다 은퇴하셨다고 했다. 자라온 환경이나 지금의 위치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여 없을 것 같은 외양이다. 옷은 세련되게 입었고 얼굴은 앳되지만, 분위기는 내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때만 나갔던 교회의 여전도사님을 연상케 했다. 치마 길이가 무릎 밑에서 찰랑거리면 오늘을 사는 여인이라 하기에는 좀 동떨어진 느낌이라는 게 정상적인 판단일 것이다.
생각도 그 범위를 벗어나려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콩 심은 데서 콩이 나야지 행여 민들레 홀씨라도 날아와 싹을 틔워 노란 꽃을 피운다면 그것마저도 편히 바라보지 못할 성품인 것 같았다.
남녀가 유별하고 학연, 지연은 물론이고 그 흔한 취미로 하는 사진동아리의 후배도 아니다. 친하다고는 하나 섣불리 내면을 훔쳐볼 엄두를 낼 수 없었는데 우연히 이야기하던 중에 불륜에 대해 정도 이상의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기에 새삼스럽다고만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자신에 관해서 한 이야기는 아주 짧고 구체성이 없었다. 자신은 절대 자신의 남편을 용서할 수 없고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남편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애들 때문에 남편과 헤어질 수 없다고만 말했다. 딱 거기까지만 말했다.
고승이 화두를 던지듯이 심상하게 말하고는 부연 설명이 없으니 나머지는 내가 소설을 쓰듯 얽어 맞추는 수밖에 없어 보였으나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박수무당도 아니고 남의 소중한 사연을 어림짐작으로 재단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얘들 때문에 이혼할 수 없다는 말이 이명(耳鳴)처럼 뇌리에 일렁인다.
예전에 술에 곤죽이 되어 돌아온 남편에게 이유도 없이 얻어맞고 흐르는 피를 목에 두른 무명베쪼가리로 누르며 엉겁결에 도망 나와 우리 집 곳간에 맨발로 서 있던 내 친구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많이 봤다. 적삼에 묻은 피를 바가지에 떠 온 물에다 손가락으로 쥐엄쥐엄 주물러서 짜 입고 어둠이 짙어 술 취한 남편이 고꾸라져 잠들기를 기다리던 그 처연한 모습을!
사위가 숨죽여 적막한 깊은 밤에야 마당이며 마루에 나뒹구는 세간들을 대충 치우고 불씨마저 사그라진 부엌에서 눕지도 못하고 비스듬히 기댄 채 눈을 감던 그 이지러진 얼굴을!
새벽닭이 미처 훼치기 전에 애들 먹일 밥 안쳐놓고 호미 들고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밭으로 나가던 그 서러운 숙명을 등때기에 걸머메고 살아가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한 없이 팍팍한 모습을!
바래버린 그림처럼 오래전에 기억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무명적삼을 입은 내 친구 어머니의 모습과 다시 맞닥뜨린 기분이다.
상전이 벽해가 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기도 하는 요즘 세상에서 애들 때문에 지금은 이혼할 수 없다는 여인을 만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 말대로 애들 다 키워서 자기들 갈 길 다 보내고 머리에 서리 내릴 즈음에 휠체어 타고 가정법원에 드나들겠다는 것인지 요령부득하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은 답답하다.
글을 쓰다 밖을 내다보니 추적거리며 내리든 겨울비는 그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게 하늘은 높고 하얀 구름도 마냥 한가롭기만 하다. 이토록 무쌍한 세상의 섭리를 어리석은 내가 어찌 가늠하겠나만, 어미가 자식을 품에서 차마 놔버릴 수 없다는 이 끈질긴 업(業)이 억겁(億劫)을 이어져 내려온 생의 비밀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돈다.
어머니!
알 것 같지만 도저히 알 수 없는 우리의 어머니께 다시 고개를 깊이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