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국민의 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만났다. 나와 같은 층에 사무실이 있다. 짐을 들고 있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사무실을 뺀단다.
국민의 힘과 국민의 당의 합당이 결렬되어서 이 양반이 탈당하겠다는 발표를 언론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서 좀 더 기다려보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이라 했다.
안철수는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고 이 양반은 고양시에서 국회의원이 되는 게 꿈이다. 서로 다른 꿈을 안고 있는 사람이 남은 몰라도 자신의 꿈만은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꿈이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인연을 정리하는 것도 당연하겠다.
안철수는 당규를 바꿔 독자 출마할 길이 있다. 그렇다고 선거에 이길 희망은 없지만, 자신의 몸값은 올릴 수 있다. 안철수가 선거에 나서서 완주하는 경우에 많게는 5에서 아주 작게 잡아도 3% 정도의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정가에서는 예측한다. 그 표는 야당 그러니까 국민의 힘에서 빠져나가는 표다. 그건 국민의 힘에는 치명적인 부담이다. 그래서 국민의 힘에서는 안철수에게 단일화를 제안할 것이라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다.
내가 좀 더 기다려보지 그러냐는 말의 의미는 그 협상 때 안철수기 이 양반에게 모종의 길을 터줄 수 있지 않겠냐는 뜻이고 이 양반이 가망이 없다는 건 안철수가 자신까지 안고 갈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나는 읽었다.
정치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아내가 차를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양손에 쥔 짐 들고 표표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곤 가슴이 저미는 감정을 나는 넘치도록 잘 안다. 질은 다르지만 나도 패배감을 안고 보따리 챙겨 쓸쓸하게 퇴장한 경험이 왜 없겠냐 말이다. 내 잘못으로 망한 적이 많지만, 거래처 때문에 졸지에 같이 짐을 정리했던 그 아픔을 나도 여러 번 겪은 사람이다.
나중에 이 양반을 만나면 소주라도 한잔 나눠야겠다.
자신이 직접 짐 챙겨 들고 상당 시간 꿈을 키우던 공간을 떠난 적은 없는가?
아니,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상상한 적은 없는가?
패자가 되어 등 돌리는 남자의 뒷모습은 처량(凄凉), 바로 그것이다.
202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