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정관념 혹은 확증편향

by 임진채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어린아이와 엄마가 같이 탄다. 아직 다섯 살에도 이르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여자아이다. 애가 발뒤꿈치를 들고 4자를 누르기에 나는 그 위 8자를 눌렀다.


“8 층에 가세요?”

“응”

아직 어린데 숫자를 읽는 것이 기특하다.


“머리 아프세요?"

“아니! 왜?"

“할아버지잖아요"


“애 좀 봐!” 하면서 제 엄마가 머리를 툭 치는 것으로 우리의 짧은 대화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곤 정해진 데로 애는 4층으로 나는 8층으로 따로따로 갈 길을 갔다.



숫자를 읽을 수 있고, 늙으면 (할아버지가 되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이치까지를 알고 있다는 것은 나이에 비해 사리 판단이 빠르다. 단지 할아버지는 머리가 당연히 아파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믿음)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아마 제 할아버지가 머리 아프신 모양이다. 아주 영민한데 특수한 사실을 일반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직 어린 나이니까 간단한 주의 정도로 그 오류는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애의 부모나 사회가 그 오류를 바로잡는 일에 자칫 방심하면 그 오류는 고정관념이나 확증편향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애 자신은 물론이고 사회에도 이롭지 못하게 작용하고 만다. 예를 들면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망국적 지역감정이나 인종 차별, 그리고 성공한 건설회사 회장 출신이라면 국가 경제 관리에도 밝을 것이라는 끔찍한 고정관념까지도 그 근원은 입증할 수 없는 맹랑한 사고의 오류에서 빚어진 결과다.



제 나라 글은 잘못 써도 부끄럽지 않고, 세계에 나가서 경쟁력이 있으려면 전 국민이 종사할 일 하고는 상관없이 영어에 올인(all in)해야 한다고 우기고 모든 학생을 코를 꿰서 끌고 가는 리더십도 같은 유의 오류에서 빚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혹시 나도 무슨 선입관이나 억지에 물들어 턱도 없는 말을 지껄이지는 않나 모르겠네.

제 흠은 잘 안 보이는 법이라고 하던데…….



20211208





keyword
작가의 이전글떠나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