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새벽부터 울상이더니 아침결에 기어이 눈물을 뿌린다. 그 눈물에는 은연중 가을이 녹아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빗물은 잎을 타고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젠 잎이, 마치 부직포(不織布)처럼 빗물을 스미듯 삼킨다. 그 빗물을 마른 잎이, 새끼를 가슴에 묻은 어미인 양 입에 머금고 미적거린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겨우 떨어내곤 한다.
회한(悔恨)에 절은 얼굴처럼 핼쑥한 잎은 이제 젊고 팔팔하던 여름이 아니다. 온갖 풍상(風霜)에 탄력을 잃어버린 가을인 게다. 아직은 이른 가을이 지나온 영화를 되돌아보듯, 흐느끼듯 눈물을 뿌린다.
창가에 멍하니 서 있는 내 가슴에도 쌓이는 낙엽처럼 가을이 쌓인다. 결국 가을이 쌓인 가슴은 돌아서서 훔치는 눈물은 이내 얼룩이 지고 만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는 이토록 이유 모를 서러움이다. 더욱이 종일 추적이는 눈물이라면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쌓인 한(恨)으로 쌓이게 된다.
어젯밤에는 큰손녀가 집에서 잤다. 제 동생이 갑자기 열에 들떠 응급실에 가야 한다기에 저녁참에 내가 태우고 집으로 온 것이다. 주는 밥을 다소곳이 받아먹고 새치름하게 앉아 만화영화만 저녁 내내 보고 있었다. 할미가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해보라고 성화를 해도 제 부모 있을 때와는 달리 고개만 흔들고 만다.
밤이 깊어 할미가 끼고 자는데 어둠 속에서 한참을 기척이 없더니 어느 틈엔가 훌쩍이고 울기 시작하더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엄마 곁에 있고 싶다고 했다 한다. 어린 것의 표현이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엄마 곁에 있고 싶다고 했다니 전해 듣는 어른의 가슴까지 아리게 한다.
낮이 지나고 사위가 어둠에 묻혀가는 대도 내리든 가을비는 그치지 않는다.
멀찍하게 서 있는 외등만 매가리 없는 눈을 치켜뜨고 있지만 한 뼘 제 주위도 밝히지 못한다. 다시 보니 겨우 흠뻑 젖은 제 몸만 드러내고 추운 듯 서서 오들거리고 있다.
비에 눌려 어둡다고 하나 아직은 이른 범인에도 지나가는 우산 하나 보이지 않는다. 가을이 깊어 버린 것도 아닌데 갑자기 살갗에 솜털처럼 솟아오르는 한기(寒氣)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굳은살이 도탑게 덮여있을 것으로 여겼든 내 가슴이 이토록 쉽게 촉촉하게 젖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설명할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아침 먹고 냉큼 제 엄마 곁으로 가버린 손녀 때문이다. 아니 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때문이다.
아니 그냥·····. 그래, 그냥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가을비는 여전하고 밤은 깊어가는 데 젖어있는 마음을 어디서 밀릴지 마땅치 않아 입맛만 다신다.
아마 소주 몇 잔으로는 어림없을 정도로 깊은 속내까지 젖어버린 모양이다.
2010. 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