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람이 뒤를 돌아볼 때

by 임진채

사람이 뒤를 돌아볼 때는 평상심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생각보다 진중하지 못하다. 오늘이 어제보다 못한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서면, 아주 쉽게 안심해버린다.

지난날은 부끄러운 게 일반적이다. 그 부끄러움을 이어받지 않을 것 같다는 건, 최소한 자책할 이유 같은 것이 없다고 안심해버린다는 뜻이다. 시간이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인격이나 능력이 느릴지라도 발전의 길로 인도한다. 그걸 우리는 은연중 의심 없이 믿고 싶어 한다.


요즘 전에 써놓은 글을 찾아 읽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한 번 읽는 것은 우연일 수 있는데 일부러 시간을 만들이 자주 읽는다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다. 오늘이 어제보다 못한 것 같다는 불안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치한 것은 같은데, 진정한 감성을 담으려는 그런 흔적이 지금의 내 글에는 전혀 안 보인다. 그건 변명할 것도 없이 내 인간성이 그대로 안 좋은 쪽으로 굳어버렸다는 뜻이다. 턱도 없는 자만이 나를 지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식적인 감성팔이는 곤란하지만, 티 나지 않게 글에 녹아 있는 인성은 부드럽고, 표현이 유려(流麗)하다는 것은 능력에 속한다.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 감성이 둔해질 수 있다는 말은 턱도 없는 변명이다.

요즘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면 고집스럽고 뻔뻔해 보이는 한 늙은이가 퀭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

험한 세상을 살아와서 그렇다고 핑계를 댈 수도 없다. 험한 세상을 같이 살아온 내 친구 중 나같이 사악하게 생긴 영감은 없다. 친구들의 얼굴에는, 이젠 살 만큼 살았다는 그런 지신이, 그런 포용이 가슴에 쌓인 여유라고 생각한다.

시거든 떫지나 말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쥐뿔도 모르는 인간이 잘난 것처럼 아는 척은 안 하겠다는 다짐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반성한다는 뜻으로 지난날 쓴 글을 짬짬이 소개할까 한다.

2008년 여름에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 가서 이외수 선생님께 여름방학 한 달간 연수 교육을 받을 때가 내 글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는 둔한 사람이라도 잠깐은 발전할 수 있다는 교훈을 늦게야 깨닫고 있다. 이제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 다시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가을은 왔는데도 거둘 것 하나 없이 마냥 뒤돌아보고 있는 서글픈 나에게도 죽비를 때려주실 선배나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한다.


창밖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꽉 막힌 내 가슴하고는 달리·····.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