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했다.
교수가 되고 싶었던 내가 나름의 치밀한 계산 끝에 내린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이 그렇듯, 계산과 실전 사이에는 변수가 작용하고 변수는 난관을 만든다.
기본적으로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전공 공부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 데다
반드시 필요했던 유치원 현장 경험마저 충분히 쌓지 못했다.
박사까지 갈 동력은 진작에 잃었고 도망치듯 결혼해
망설임 없이 육아전담 전업 주부로 눌러앉았다.
나는 어쩌다 육아전담 전업 주부를 결심하게 되었나
전문직 종사자였던 친정엄마는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았다.
도리없이 오빠와 나는 양육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 외할머니 손에 맡겨졌는데…
할머니 품은 따뜻했지만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는 법,
난 늘 엄마 품이 그리웠고 철이 들기도 전에 ‘직접 육아’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초보 엄마, 육아에 뛰어들다
예상대로 육아의 길은 험난했지만 세상에나 이런 일이… 뜻밖에도 적성에 맞았다.
‘피할 수 없다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육아전문가가 돼 볼까?’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다’ 뭐 이런저런 기대 섞인 생각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엄마와 아이, 모두가 행복한 육아 이야기>
대학에서 배운 이론이 무익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론은 이론일 뿐,
육아의 현장과 실전은 이론보다 다이내믹하고 변수 많고 처참했다.
자그마한 생명체는 의외로 고집 있고 선호가 분명한 데다 자기만의 패턴이 있었다.
먹고 자는 것에서부터 기본 습관 들이기, 인지학습까지 무엇하나 수월하지 않았으니까..
양육과 훈육을 목적으로 한 기싸움과 신경전이 불가피했다.
육아에 빠져들다
내가 초보 엄마로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아이는 세계를 잡아 삼키려는 듯
괴력을 발휘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유능해져 갔다.
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보상이라도 받듯, 아이가 보는 것을 같이 보고
아이와 전심으로 놀아주고 아이가 세계를 탐색해 가는 방식을 흥미진진하게 좇는 등
점차 육아에 심취해 갔다.
육아의 모든 과정에서, 여러모로 신묘막측한 아이와 눈을 맞추려고 노력했고
양육자로서 어쩔 수 없이 주도하지만 아이를 지배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최대한 아이를 대접하듯 존중했고
가르치기보다 코칭하는 편을 택했다.
주장하기보다는 타협을, 관철보다는 선회를 지향했다.
대단해 보이는 옆집 아이보다는 도움이 절실한 내 아이에 집중했고
아이에게 보편 일반론을 적용하는 대신 맞춤 육아에 힘썼다.
그렇다고 내 육아가 완벽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설마 그럴 리가….
시행착오, 자책, 충동, 속단, 미숙으로 얼룩진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에 대한 본능에 가까운 사랑과, 육아를 전문적으로 해내려는 의지와 실천 덕분에
많은 것들이 가능했고, 버거웠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커리어우먼 : 전업주부
그렇다고 내가 육아에 전념하는 동안 커리어 우먼에 대한 동경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
그러나 커리어 대신 ‘육아’를 선택한 내 결정에 대해, 지금까지도 후회는 없다.
학부모 참관수업 때마다 교실 뒤에서 자리를 지켜주던 친구들의 엄마를 보면 부러웠고
초등학교 소풍날 엄마와 동행한 친구의 명랑한 웃음소리에 주눅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나는 일하느라 자녀를 돌볼 수 없었던 엄마와 같이 할 수 있었던 게 거의 없었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나와의 추억, 스토리, 웃음거리가 차고 넘치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가 맛 본 감정들의 결은 너무나 다채롭고 진하며 깊다.
더없이 신비스러운 존재를 초 근접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일종의 특권이었다.
육아의 괴로움을 잊을 만큼, 아이와의 밀도 높은 교감이 주는 만족감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나아갈 길
아이를 두고 세상에 나가 번듯한 기업 하나 세울 게 아니라면 차라리 ‘육아’를 선택하자,
마음먹고 달려온 지난 시간들.
사람 하나를 잘 키워내는 일은 기업을 육성하는 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전업주부 양육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왔다.
흔들림 없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선택한 역할의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존중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현재, 자녀양육의 축적된 경험들은 ‘코칭맘 그레이스’를 가능하게 해 주었고
개인적 경험을 확장시켜 부모교육의 참신한 길을 열어가는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됐다.
이제 이 땅의 엄마들과 연대하여 참 부모 됨의 길로 나아갈 타임이다.
언제나 그렇듯, 길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 나아갈 그 길의 주인은 누가 될까?
바로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