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 만남에서 찾은 부모 됨의 길
동검도 채플 갤러리에 반하다
강화도 남동쪽에 자리한 작은 섬 동검도.
동검도는 아마 꽤 오랫동안 바다와 하늘, 그 둘을 가르는 선,
자연의 힘으로 '드러남과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갯벌,
무심한 철새와 무명의 갈대들의 소유였을 것이다.
이곳 동검도를 설렘 가득으로 찾아 나선 우리 부부.
토요일 이른 오후, 우리를 마중한 동검도는
너른 갯벌의 품에 안긴, 적막한 아름다움이었다.
어느새 동검도의 핫플이 된, 하얀 뾰족탑 모양의 채플 갤러리에 들어서면
조광호 신부님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우리 부부의 눈길을 빠르게 낚아챈 작품들이 있었으니 바로 채광을 양껏 머금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
감상 지점과 시각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니 그 신비한 위엄에 절로 숙연해졌다.
갤러리를 찬찬히 둘러본 뒤, 작고 아담한 채플로 향한다.
와우! 들어서는 순간, 마니산을 마주한 창 너머의 동검도라니,
흐릿한 날씨에도 그 자태가 빛에 싸여 더없이 찬란했다.
시간이 사라진 듯, 공간조차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의 머묾,
‘나 지금 여기에 있으니 신과 하나 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어느새 기도의 문은 절로 열리고…
이곳에서 매일, 아니 매 순간 드려지는 ‘빛으로 드리는 예배’가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이곳을 찾는 모든 지친 영혼들의 안식이 되게 하소서….
특별한 만남, 소중한 인연
이곳에는 또 하나의 특별함이 있으니, 바로 채플 갤러리 지킴이, 매니저 선생님 부부다.
너무나 뵙고 싶었지만 다소 늦은 걸음으로 달려간 길.
동검도에서 인생의 제3막을 열고 ‘새로운 시작’의 꿈이 한창이신 선생님 부부는
‘동검도의 채플 갤러리’라는 장소성에 더해지는, 인생의 대미를 장식할 부부만의 서사를 엮고 계셨다.
그리움과 반가움에 나눈 소중한 두 분과의 대화는
그야말로 연륜, 지혜, 겸손, 열의, 온기가 전해지는 시간으로 이어지고...
선생님 부부의 안부와 안정된 정착을 눈과 귀, 마음으로 확인한 후
벅찬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 부부, 약속 같은 다짐들을 해본다.
우리도 인생의 후배님들이 달려와 만나고 싶은 부부로 나이 들어가자는 약속,
잘 늙어갈 수만 있다면, 이 또한 한껏 멋질 수 있다는 희망 같은 다짐을…
나이 듦이 누군가의 짐이 아닌 ‘누군가와의 나눔’이 될 수 있다는 진실을
몸소 보여주신 두 분께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당연한 권리의 포기, 옳은 것으로의 나아감
우리 부부가 선생님 부부에게 온정을 느끼고 위로와 격려를 제대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두 분이 우리 부부에게 그 어떤 사심이나 욕심도 갖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욕심과 기대를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러나 ‘당연한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의 시작이 아닌가!
철학을 말하니 뭔가 거창해 보이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양육관에 관한 것이다.
왜 부모는 자녀에게 꼭 욕심을 가져야만 할까?
부모의 과한 욕심이 자녀를 망친다는 교훈에 이미 익숙한 우리가…
옳지 않다면, 내 아이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면, ‘당연함’에 반기를 들 충분한 가치가 있다.
부모의 권리라 믿었던 것으로부터의 후퇴
나 역시 아이들을 키우면서 기대와 욕심이 없었을 리 없다.
그야말로 ‘내 것’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노력의 역사이기도…
‘기대와 욕심을 품는 것’과 ‘품은 것을 강요하며 몰아가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내가 낳았으니 ‘내 맘과 내 뜻대로’의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 여기서부터가 양육의 시작이다.
자녀 학업의 여러 문제에 봉착, 갈등하며 괴로워하는 상담자들에게 자주 하는 조언,
“옆집 아이 보듯 내 아이를 키워보세요.”
그러면 내 아이가 적어도 옆집 아이만큼은 이뻐 보인다.
부모는 자녀의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까
좋은 멘토는 우리가 살아온 삶을, 나름 잘 살아온 삶으로 인정해 준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거나 함부로 매도하지 않는다.
좋은 멘토는 자신의 바람과 기대를 요구하지 않는다. 인류 보편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좋은 멘토는 지시하거나 단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혜 있는 따뜻함으로 다가와 축적된 인격과 삶으로 말한다.
좋은 멘토는 자신의 경험을 내어주고 길을 보여줄 뿐, 정답 대신 희망과 용기를 심어준다.
가르치는 대신 우리가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등대’ 역할을 한다.
좋은 멘토는 우리가 헤매며 힘겹게 가는 길을 응원과 사랑으로 밝혀 준다.
이것이 바로 코칭의 힘, 내가 지향하는 육아다.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
전통적 육아관에서 조금은 비켜난 멘토 같은 부모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자녀가 힘들 때,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마음을 다쳤을 때, 외로울 때
제일 먼저 달려와 만나고 싶은 진정한 ‘어른’ 말이다.
대학 새내기 막내가 얼마 전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첫 날을 벼락 봉변당하듯 보내고 귀가한 딸아이,
그날의 우여곡절 에피소드를 쉬지 않고 재연하던 중에
울먹이며 하는 말, “엄마가 생각났어..”
이날로부터 지금까지 딸아이는 내게서 위로와 격려의 세례를 받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당신은 거듭된 실패와 절망 앞에 서 있는 자녀에게 '희망으로 통하는 문'이 되어줄 수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