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징조
선율이 가 2학년이 되었다.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했다. “자! 이제 결전의 한 해가 시작했다!” 당사자인 선율이 보다 내가 더 의욕이 앞섰다. 왜냐하면 2학년 1학기 성적으로 외국어 고등학교를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되자 상담을 시작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작년처럼 과목별로 각 과목 선생님들이 상담을 해 주는 줄 알았다. 사실, 작년에 영어와 수학 선생님에게 상담받고 꽤 도움이 되었었기 때문에 올해도 피드백을 기대하고 있었다.
가장 처음에 공지가 올라온 위클래스 상담을 신청했다. 위클래스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고 학교에 아이들의 심리 상담을 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굉장히 아름다운 여 선생님이셨는데 비슷한 또래의 자녀도 키우고 계셔서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잘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선율이는 외모가 어때요? 마른 체형인가요? 운동은 뭐해요?” “보통체격이고 특공무술 2단에 검도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니까 “와! 인기가 엄청 많겠는데요? 잘생겼어요? 남자아이들은 운동을 잘하면 그 무리 안에서 서열이 생기거든요.” 라며 활동 사항이나 외모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며 위클래스 선생님은 선율이 가 어떤 아이인지 파악하기 위해 여쭈셨다.
그리고 “부모님 이외에 함께 살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라고 가족 관계에 관해 묻자, 나는 “할머니와 삼촌이 함께 살고 있고, 다른 삼촌들도 다 근처에 살고 있어서 자주 왕래해요. 선생님은 ”친척분들이 근처에 살고 왕래도 자주 해서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되겠네요. 아주 좋은 환경이네요. “ 라며 칭찬하셨다. 이것이 위클래스 선생님과 첫 만남이었다. 내가 상담하고 싶었던 것은 영어와 수학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각 과목 선생님들과의 상담은 진행하지 않고 위클래스와 진학 상담만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상황이 달라져서 아쉽기는 했지만 지금 선율이 가 지도받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충분히 피드백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침마다 선율 이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줬다. 선율이 입에서 죽으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어린 왕자처럼 선율이 가 내 곁을 떠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선율이 가 두어 시간 동안이었지만 집을 나갔었고, 죽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충격이었기 때문에 위클래스 선생님에게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사춘기 남자아이의 마음 상태를 여자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럴 때 아빠라는 작자마저도 선율이 한 테 “버럭!”하고 소리 지르고 나서 가출 사건이 벌어진 이후로 선율이는 다시는 아빠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고 아빠는 아빠대로 “왜 내가 애한테 먼저 연락을 해야 돼?”라며 둘 다 자존심 싸움하면서 서로 먼저 연락하지 않으려고 하니 속 터질 노릇이다.
위클래스 선생님에게 선율이 가 민감한 시기라 집을 나갔던 일을 상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선율이 가 걱정돼서 엄마와 상의한 끝에 아침마다 학교 등교할 때 데려다 주기로 했다. 선율이는 “말 걸지 말고 저쪽에 떨어져서 걸어.” 라며 냉담한 눈빛으로 쌀쌀하게 말한 후에 모르는 사람인 양 눈길 한 번 주지도 않고 자기 혼자 걸어갔다. 나는 서운하면서도 슬퍼서 몇 번이고 울컥했지만 ‘선율아 사랑해.’라며 속으로 되뇌며 꾹 참고 그림자처럼 선율이의 뒤를 따라갔다.
그날도 선율 이를 따라서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 후에 출근하려고 터덜터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위클래스 선생님이 걱정이 되었는지 선율이의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주셨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선율이 요즘 어때요?” 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아침마다 아이 등교 길에 같이 가주고 있어요. 지금 막 교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에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선율이 별일 없나요?”라고 묻길래, “아! 어젯밤에 선율이 팔에 무언가로 긁은 자국이 있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자해를 한 것인지 어디에 긁힌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잖아요?”라고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그렇네요. 그밖에 별일 없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며칠 전에 아빠가 선율 이를 잠깐 보러 집에 왔을 때 호통치고 나서 운동을 가지 않고 집 주변을 배회했었어요. 그때 죽으려고 했었다고 말해서요. 제가 어떻게 죽으려고 했냐니까 맨홀 뚜껑을 열고 뛰어내리던가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고 말해서 둘이 같이 울었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놀라며 “어머니, 애들 중에는 입버릇처럼 ”나 죽을 거야. “라고 늘 말하는 애들도 있는데 선율이처럼 구체적으로 죽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생각해서 얘기하는 아이들이 드물어요. 남자아이들은 여자 아이들과 달라서 기분이나 충동적으로 바로 뛰어내리는 경우도 있어요. 상황이 심각해 보이니까 학교로 다시 와 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말씀에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서 학교로 서둘러 갔다.
상담실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은 선율이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는지 걱정하시며 관내의 심리 상담과 정신과를 병행하고 있는 몇 곳을 추천했다. 그중에 가장 좋다고 판단되는 병원에 예약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정신과 진료는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상황이 시급하다고 판단해서 위클래스 선생님이 병원 측에 다시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하자 병원에서 바로 오라고 말했다. 병원 예약이 잡혔기 때문에 선생님은 선율 이를 조퇴시키고 정신과로 서둘러 가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아이를 데리러 교실로 갔다. 선율이 가 갑자기 조퇴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선율이는 “이따 오후에 운동회 계주 대표 뽑는다고 했어.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작년에 내가 계주로 뽑혀서 달렸던 거 기억하고 나 추천해 준다고 했는데... 나 계주 나가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순간 선율이 가, 운동을 그렇게 못했던 아이가 위풍당당하게 계주를 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위클래스 선생님이 상태가 좋지 않다며 당장 정신과에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 말에 맹목적으로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위클래스 선생님과 선율이의 교실 앞에 가서 선율 이를 데리고 나왔을 때의 당황하는 선율이의 모습과 ‘갑자기 선율이 한 테 무슨 일이지?’하며 상황파악을 하는 아이들의 의아한 표정이 느껴졌다. 선생님과 나는 개의치 않고 당황한 선율이 에게 “괜찮아, 일단 나가자.” 라며 등을 토닥여 주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척하며 선율 이를 데리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