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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그 조용한 울림

나는 B♭같은 사람입니다.

by 비플렛 쌤



따뜻하고 둥근 울림.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중간 톤.
편안하면서도 가슴에 은근히 감도는 여운.
내성적이고 진중한 정서를 지닌 곡들에서 자주 쓰이는,
오늘 나는, B♭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B♭은 정확히 말하자면 ‘시(B)’보다 반음 낮다.
그렇다고 불안정하거나 어두운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한 톤 낮춘 그 음에는
조금 더 여유롭고, 다정한 듯 따뜻함이 스며든다.


18세기 음악평론가 Schubart는
B♭장조를 “희망, 절제된 명랑함, 낙관적인 사랑”이 담긴 조성이라 표현했다.
그 말처럼, 이 음은 조용하지만 따뜻하고,
단정하면서도 은근한 감정을 품는다.


말로 하자면 이렇다.
흥분한 목소리 대신,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하고 한 톤 낮춰 말해주는 누군가의 음성.
그게 바로 B♭의 정서다.


삶 속의 B♭은 이렇다.
친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던 순간,
하루를 마친 뒤, 피아노 앞에 앉아
마음에 닿는 곡을 아주 조용히 연주하던 시간.
화려한 무대의 중심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는 반주의 자리처럼.
내가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그 울림이 누군가에겐 오래 남는 순간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따금 다장조 곡을 연주하다가
“그냥 B♭으로 낮춰볼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B음으로 낮추면, 어딘가 날카롭고 낯설어진다.
하지만 B♭으로 조를 바꾸는 순간,
곡 전체가 부드럽게, 그리고 중후하게 변한다.

이건 단순한 전조가 아니다.

숨을 고르는 듯한 감정의 이완.
나는 이 느낌을 ‘B♭의 마법’이라 부른다.


실제로 많은 곡들이 B♭의 이 매력을 품고 있다.
쇼팽의 녹턴 Op.9 No.1,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도입부,
그리고 찬송가 ‘빈 들에 마른 풀같이’도 그렇다.
이 곡들에는 공통적으로,
조금은 느긋하고,
따뜻하며,
어딘가 그리운 울림이 있다.


그리고 B♭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 어딘가에서
자연스럽게 도를 향하게 해주는 음이다.
도약보다는, 흐름을 만들어주는 쪽.
선명하진 않아도,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되는 음.


만약 내가 음표 하나라면,
나는 아마 B♭일 것이다.

크게 나서지 않지만, 꼭 필요한 자리.

그래서 오늘도,
나직이,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가고 싶다.
B♭처럼.


튀지 않지만 흉내 내지도 않는,
고유한 음색으로 곁에 머무는 존재.


조용히 옆에 앉아,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편안하게,


누군가의 노래가 이어질 수 있도록.


나는 B♭ 같은 사람이고 싶다.
아니,
나는 B♭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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