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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Nov 15. 2023

#10. 산속 이웃들

엄마는 어릴 때 나쁜 아이였어

“아유~ 애들을 참 잘 키우네. 역시 애들은 이렇게 놀면서 자라야 돼.”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우리 마을에는 거의 내 부모님 또래의 이웃들이 사셨다. 지인의 지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전원주택 마을이라 시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의 지인도 계셨다. 젊은 부부가 산속에서 아기를 키우며 산다니 이웃들이 보시기엔 신기하셨던 것 같다. 보통 젊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사니까. 맞벌이를 하고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을 쓴 뒤 어린이집에 일찍들 보내니까. 일찍부터 사교육을 시키니까.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에 가려면 최소 20~30분은 차량을 타야 했다.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가 매일 왕복 1시간 차를 타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학대가 이슈가 되기도 했던 때였다. 20개월부터 낮잠도 안 자고, 입도 짧은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면 미움을 받을 것 같았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싫기도 했다. 애들이 날마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 잠을 자고, 아이들이 놀이에 푹 빠져 있을 때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릴 때의 나처럼 먹는 걸로 누구에게 혼나서 먹는 것에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침 9~10시까지 푹 잤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간단히 밥을 먹였다. 밥을 잘 먹지는 않았지만 혼내지 않았다. 아이들은 집 안에서, 마당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놀았다. 물론 나도 ‘같이’ 놀았다. (아이들은 무엇을 하든지 엄마랑 함께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심심해하면 간단히 주먹밥, 유부초밥을 싸서 소풍을 갔다. 소풍이라고 해 봐야 동네의 계곡이나, 동네의 길 한 자락이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이 길에 도시락을 펴고 앉으면 아이들은 싸간 밥을 다 먹었다. 집에 와서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실컷 물놀이와 목욕을 했다. 그리고 나면 저녁이 되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온 식구가 모여 저녁을 먹고 놀다가 잠이 들었다.     


낮 동안 아이들과 동네 이곳저곳에서 놀고 있으면 때로 이웃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나와 아이들에게 반가운 눈빛으로 인사를 해주셨다. 때로는 우리를 집에 초대해서 넓은 마당에서 축구를 하라고 축구공을 꺼내주시기도 했고(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이 가장 작았다) 정원의 꽃과 나무를 구경시켜 주시기도 하셨다. 집에서 직접 기른 토마토로 주스를 만들어주시거나 곶감 말랭이, 식혜를 꺼내주시기도 하셨다. 때로는 반찬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다. 이웃들은 나에게 아이를 잘 키운다고 격려와 칭찬을 해 주셨다. 애들은 어릴 때 자연 속에서 놀면서 크는 게 제일 좋다며 만날 때마다 너무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분들의 응원이 참 좋았다.   


  

때로는 우리 아이들도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저녁 되면 배도 고프고 벌레도 많아지니까 집에 가자.”

“찌여, 찌여!! 안 갈래!!” (싫어, 싫어, 집에 안 갈래)  

   

아이들이 울고 떼를 쓸 때 누군가 보고 있으면 참 난감하다. 나는 아이를 윽박지르지 않고 설득해서 아이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충분한 심리적 여유와 시간이 필요한데 옆에서 누군가 불편해하는 기색이 느껴지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못하고 결국은 윽박지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 동네 이웃들은 나를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아이들이 짜증을 내고 있거나, 아이들과 내가 실랑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웃들은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표정으로 얼른 자리를 지나쳐주셨다. 그분들이 별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저 만한 나이일 때는 원래 그렇지. 천천히 해요.’ 이런 응원을 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다.     


산청에서 살았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혼나는 것에 너무 민감해서 조금만 혼나도 심리적 타격을 크게 입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내가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이나 지적이 너무 싫었다. 내가 모든 것을 망쳤고, 그것을 다 만회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마땅찮게 보는 눈빛만 봐도 나는 허둥지둥하곤 했다. 하지만 자연은 나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계절 따라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으며 순리에 따라 흘러갈 뿐이었다. 계절을 바라보며 나는 그제야 나 자신과 내 잘못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열린다)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내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며, 잘못은 수정해 나가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수는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거고, 실수 때문에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실수를 하고 나면 때로는 배우고, 때로는 잊으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산속의 이웃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대해 주셨다. 자연이 인간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의 순리대로 살 듯, 그분들도 우리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으셨다. 굉장한 노력을 들여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자연이 순리에 따라 꽃과 열매를 맺듯, 날마다 뜨는 해가 빛과 온기를 주듯 무리하지 않고 정을 나누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셨다. 그분들이 나에게 무리해서 잘해주셨다면, 나는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자유롭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나쁘게 보이지 않는지 계속 신경 쓰며 지내느라 내가 나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지 자주 생각한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상처를 입었고 어떤 상황에서 배웠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 산청에서의 경험으로 나는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키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자연스러운 내리사랑, 자연스러운 눈빛.

내가 자연과 ‘자연스러운 이웃’ 안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듯이, 아이들도 자연스러운 육아를 통해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보면 '어리석은 이도 지리산에 들어가면 이치를 깨닫게 되어 知理山이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도 지리산에 살아서 이런 아름다운 배려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때때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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