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14일 >>>
2018년, 진새골 “사랑의 집”에 세 들어 살 때, 나는 방이 따로 없고 책상이 창고 한 켠에 있었다. 책상 오른쪽 위 벽에는 40cm x 30cm 아날로그 TV가 한 대. 심심하면 보라고 아내가 내다버리려다 말고 설치해 준 것이었다. 하루는 무심코 TV를 켜 놓고 일하는데, 청소하러 들어온 아내가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아니, 여보, 저게 뭐예요?”
돌아보니 아내가 TV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일에 정신이 팔려 순간 영문을 몰라 하던 나는, 다시 몸을 돌려 TV를 쳐다보고서야 비로소 상황파악이 됐다. TV가 소리는 나는데 화면이 수건에 덮여 안 보이니까, 아내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아, 저 수건! 하하, 알다시피 한국 TV는 내가 기독교 채널들만 보는데, 설교자를 보면 자꾸 TV를 끄게 돼서...... 혹시 얼굴 안 보고 말만 들으면 TV가 계속 켜 놔질까 했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네. 이렇게 수건으로 가리니까 이제 안 끄고 계속 듣게 되네. 나는 설교자의 표정과 몸짓에 거룩함, 신실함 같은 게 보여야만 그 설교가 계속 들어지거든…… 그런데 이제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까 아무래도 괜찮다.”
별나다, 까탈스럽다는 핀잔을 평생 들었는데, 그날도 따가운 “오늘의 말씀”을 어김없이 들었다..
“살다가 살다가 참 별 일을 다 본다.”
아내 말이 백번 맞다. 나는 성격이 안 좋다. 무지 융통성 없고 꼼꼼하고 인내심도 없다. 마음에 안 드는 건 길게 못 보고, 못 듣고, 못 견딘다. 이해하고, 기다려 주고, 추스르고, 아쉬운 소리도 하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정말 안 된다. 그런 건 모두 아내의 몫, 나는 좀 참다가 안 되면 단칼에 자르고 만다. 늘 나더러 “공부라도 열심히 했길래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쪽박 차기 딱 좋은 사람”이라더니, 실제로 그랬다. 완벽주의 성품 탓에 사업도 3년 만에 접고 결국 재기를 못했고, “공부”하는 사이트 브릴리언트(brilliant.org)에 와서야 그 “까다로움”이 마침내 빛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입사 후 3년, 회사에 상근(常勤) 편집자(editor)가 필요해졌을 때, 내로라는 젊은 수학자들을 다 제치고 내가 뽑혔던 것이다. 전 직원이 경합, 일체의 문제/교재를 점검했는데, 모든 오류를 100% 다 잡아낸 사람은 나 혼자뿐, 아무도 그 근처에조차 못 왔었다. 그런 연유로 9년째 편집 일을 계속하고 있다. 틀린 것, 비뚤어진 것, 최선이 아닌 것은 못 봐 내는 성격엔 이만한 일이 없다. 글자 그대로 천직(天職)이다.
돌아보면 2001년에 처자식을 미국으로 되돌려 보낸 것도 다 이 “성격” 탓이었다. TV 같으면 소리만 듣고 화면은 가리기도 하겠지만, “삶”을 살아갈 환경은 그처럼 입맛대로 취사선택할 수 없는 것.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가족과 작별하고 나는 다시 기러기 아빠가 됐다.
1. 아침에 일어나면 좋은 뉴스가 하나도 없다.
2. 자식들에게 본받고 살아라 할 만한 인물이 없다.
3. 집단적인 정서불안으로 온 나라가 붕 떠 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틀림없이 뭔가가 내다보였으리라. 까칠한 성품이 단순히 못마땅함을 넘어 모종의 위기감을 느꼈으리라. 안 그랬다면 어떻게 그런 무리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으면 어떻게 내 조국 대한민국이 그처럼 마음에서 멀어질 수 있었을까? 실제로 나는 그때부터 점점 한국 TV 채널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뉴스를 아예 안 본 것은 20여 년, 대통령 부인이 누군지 모르는 것이 벌써 여러 대(代)째다. 하도 인구(人口)에 회자되어 어떤 분은 겨우 이름은 들었다.
이제는 TV 볼 때 더 이상 수건이 필요 없다. 5개 기독교 채널에 대한 미련도 다 버렸기 때문이다. 1천만 명 기독교인 수(數)가 무색하게 만신창이가 된 나라. 그런 건 아랑곳없이 365일 미사여구, 동문서답만 일삼는 기독교 방송들. 수많은 국민이 고통에 찌들어 가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교회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앞뒤가 안 맞고, 납득이 안 가고, 용납이 안 되어 딱 끊어 버렸다. 그러니, 가끔 아내가 참다 참다 못해 들려주는 얘기, 길에서 좌중에서 어쩔 수 없이 흘려듣게 되는 소식이 내겐 전부다. 사실 나는 그런 것조차 안 듣고 몰랐으면 좋겠다. 사안마다 디테일은 다를지라도 윤곽은 빤한 것, 어차피 위의 1, 2, 3 안에 다 들어올 테니까. 좋은 뉴스, 흐뭇한 미담, 제정신인 얘기는 하나도 없을 것이니까. 상식이 짓밟히고 억지가 횡행하는 어처구니없는 나라. 양식(良識) 있는 사람은 숨이 막혀 살 수가 없는 해괴망측한 나라. 최소한 내 자식들은 그런 공기를 안 마시고 사니 감사, 또 감사할 따름이다. 걱정 하나는, 아내가 종일 핸드폰과 무선 헤드폰을 끼고 사는 것. 여기 시카고 딸네 집에 와 있는 지금도 똑같다. 자나깨나 나라 걱정뿐이다. 국적이 바뀐다고 조국(祖國)이 바뀌는 건 아니라며, 24시간 목숨 걸고 싸운다.
내가 아내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은 2014년 부부학교 때다. 성향조사 결과, 뜻밖에도 아내는 압도적인 점수로 “주도형”이 나왔던 것이다. 겨우 주도형이었던 나는, 30년 우리 결혼이 왜 그처럼 피를 튀겼는지 그제서야 의문이 풀렸다. 그런 강적(强敵)을 모시고 사는지 내 어찌 꿈엔들 알았으랴! 그래서 그때부터 바짝 수그렸는데, 그 뒤 성향 재조사 결과 나의 주도적 성향이 싹 사라졌을 정도로, 나는 아내의 그 잠재된 “보스 기질”을 최대한 존중해 주었다. 세상 누구보다 불의를 못 참는 아내. 남편이건 가정이건 나라건 전부 올바로 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내. 목표가 서면 아무리 세월이 걸려도 꼭 해 내고야 마는 아내. 그런 나의 아내가 지금 이 참담한 조국의 상황과 마주한 것이다. 나는 그릇이 작아 피하고 도망가고 안 보고 말지만, 아내는 완전히 그 반대다. 광화문도 가고, 한남동도 가고, 여기저기 동참도 호소하고, 댓글도 달고, 후원금도 보내며 매일매일 최선을 다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사람이 나섰으니 기필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2022년에도, 암 수술 회복도 채 안 된 몸으로 연일 광화문을 오가며 결국 원하는 바를 성취했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고야 말리라.
가령 내가 포로로 잡혀 있고 내게서 캐낼 중요한 정보가 있다면, 적군은 나를 달리 위협, 학대할 필요가 없다. 묶어 놓고 한국 뉴스 5분만 틀어 놓으면 깨알 같은 사실까지 술술 다 불 것이다. 내게 그만한 고문은 또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한국에서 단골 미용실도 그래서 끊었다. 가깝고, 싸고, 친절하고, 빠르고, 잘 깎고 하여 12년을 한결같이 다녔던 그곳. 언제부턴가 24시간 뉴스 채널을 켜 놓길래, 두세 번 참다가 발길을 끊었다. 하하, 징그럽게 까칠한 성격, 이러다가 다 끊고 뭐가 남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처럼 다 끊는데, 절대 못 끊는 아내가 항상 걱정이다. 혹시 과하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지, 요사이는 특히 더 자주 그 기분을 살핀다. 참 감사한 것은, 암울한 중에도 아내가 유머센스를 잃지 않는 것. 얼마 전에는 “아예 파(派)를 반대쪽으로 바꿔 볼까?” 하길래, 내가 “듣던 중 제일 반가운 소리”라고 맞장구치며 둘이 낄낄 웃었다. 또 사나흘 전에는 내가 감기가 들었는데, 삼시 세끼를 다 얻어먹지는 않으려고 평소처럼 시카고대학 도서관으로 나서던 순간, 아내가 붙잡으며 하는 말,
“여보, 감기는 잘 먹고 푹 쉬는 수밖에 없어요. 맛있는 거 해 줄 테니까 오늘은 도서관 가지 말고 종일 누워 있으세요. 그래도 아픈 새끼보다는 삼식(三食) 새끼가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