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너무 덥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으니까.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몇 년째. 고등학교 입시를 마치고 친구들을 따라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중 겨우 하나 찾아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알바가 지금 이곳이다.
추우면 춥고, 더우면 더운 이곳.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은 '사각형 안에서 하는 일을 해야 네가 편하다'라는 말씀을 종종 하곤 하셨지만 나는 확실히 사각형 안의 일은 아니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목도리를 둘러도 모자랐고, 더우면 더운 대로 얇은 반팔 한 장도 두꺼운 패딩처럼 느껴지는 곳이 이곳이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돈 버는 일이 다 힘들지' 라며 버텼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첫 아르바이트 자리로는 버거운 곳이라 곧 그만둘 것이라 예상했단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입시를 마쳤던 그때와 지금은 달라진 것이 너무도 많다. 환경도 환경이지만 나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 체력도, 건강도, 체형도, 습관도, 몸을 담고 있는 사회도, 느끼는 감정과 생각도. 많은 게 바뀌니 같은 곳이더라도 다르게 보였다. 마음가짐이 들쭉날쭉 변하기 쉬운 계절은 특히 여름과 겨울이었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사람들을 눈에 담기 쉬웠고, 마음에 품기 쉬웠다. 비뚤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다가도 다시 마음을 고쳐 잡고 눈웃음을 지었지만,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 앞에서는 하염없이 무너졌다.
취객뿐만 아니라 그 종류도 여러 가지다.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과 달리 힘도 약하고 체구도 작은 편이라 쉽게 얕잡아보고 무리한 요구를 종종 하거나 귀에 담기 꺼려지는 말들을 하는 손님들도 꽤나 많다. 술에 취해 일행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 테이블이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 아이들이 있음에도 음담패설을 거침없이 하는 어른들이 있기도 하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알바생이니까.
정말 더운 여름날. 초반에는 야외에도 테이블을 깔고 장사를 했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날이 뜨거워지고 더운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게 일상이 되자, 사장님은 더 이상 야외 장사를 못하겠다며 테이블을 안으로 들이셨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에 에어컨 3대가 풀가동되어야 그나마 시원한 바람이 돌았는데, 어느 날은 그 에어컨 한 대가 고장이 났다. 하필 가장 습하고 더운 날이면서도 손님은 계속 몰리는 주말이었다. 죽을 만큼 더웠고, 정말 얇은 반팔 한 장이 뜨겁게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같이 일하는 알바생들과 함께 에어컨 앞을 교대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몸 자체에서의 열기가 방출이 안 되고 물 한 모금도 마시기 어려울 만큼 바쁘니 열기는 몸안을 맴돌았다. 서비스업이지만 서비스를 내어주기 힘들었다. 스마트 워치에서 울려대는 애인의 응원에도 괜스레 비뚤어진 마음이 일었다.
순수한 응원에 내 마음의 불순물이 끼어들어 세상을 탁하게 보고 있었다. 속으로 그 말만 읊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다들 들어보았을 그 말.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지 말자. 짜증은 한순간이지만 이를 방출하는 순간 상대는 내 감정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임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33도까지 올라가는 가게 안이었지만 그 말만 몇 번이고 되짚었고, 정 내 마음의 환기가 되지 않는다 싶으면 억지로 웃지 않았다. 손님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만 차리고 '나'를 지켰다. 하루는 긴데 내 서비스가 벌써 동나면 안 되니까.
잠깐 틈이 나서 밖으로 바람을 쐬러 왔을 때 잠깐 애인에게 전화를 거니, 그제야 몸에서 억눌렀던 땀이 주룩 흘렀다. 몸에 갇혀있던 열들이 제 갈 길을 찾아 증발했다. 만일 아까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고,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감정은 한순간일지라도 그를 밖으로 표출하는 순간 남은 나의 그런 감정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그것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일수록 기억에 남기기 쉽다. 관계에 이물이 끼고, 그렇게 상대와 소원해진다. 정말 더운 그 여름날 나의 마음가짐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 더운 33도, 에어컨을 전부 가동해도 더웠던 그 여름날. 에어컨 한 대가 고장 나니 다른 냉기들이 열기에 묻히던 그 가게 안의 공기 속에서 나는 나의 마음과, 상대와, 관계를 지켰다. 이 날의 기억을 양분 삼아 미래의 내가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게끔, 언젠가의 발판이 되어줄 준비를 해야겠다.
유명한 말은 다 이유가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그것은 상대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소중히 지켜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