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다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의 저자
서울대공원의 호랑이 ‘낭림’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상제의 도움으로 “백두”를 만나 아이를 낳게 되었고, 역시 상제(上帝)의 도움으로 다시 서울대공원 호랑이로 환생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낭림과 백두, 상제의 염원인 “하나됨”을 위해 남측 호랑이와 인연을 맺게되었고,
4마리의 아이들과 단란한 생활을 하던 중, 모두의 그 오래된 염원을 이루기 위해,
그 아이들은 서울을 떠나 각자의 과거와 연결되어있는 대륙이나 땅으로 흩어졌다.
분단의 역사를 살아낸 낭림의 피는 더 이상 한반도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들은 갔다. 그리고 기다렸다.
한때 평화로웠으나 상처 입은 땅, 이젠 치유를 넘어 하나되는 한반도, 세계를 위해서.....
한반도가 하나되는 날, 세계는 갈등과 분쟁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 될 것이다.
러시아 아무르강 일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 위에 장엄한 기운을 풍기며 선 호랑이, ‘두림’.
그는 여기까지 오기전에 백두산 자락에 서있던 백두산정계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구한말, 대국 청나라와의 북방영토 경계확정을 위한 협상에 나섰던 이중하 선생의 결연함...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강토는 축소할 수 없다”라며 단호하게 대응했던 그 기상을 되새기면서...
“고구려의 옛 땅은, 땅이 아닌 정신이다.”
“나는 돌아온 것이 아니라, 기다린 것이다.”
한참을 응시한 후에 그는 정계비에서 언급된 송화강 지류인 토문강으로 휘달렸다.
아무르의 러시아의 호랑이 무리들은 처음엔 두림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는 싸우지 않았다.
설원의 늑대떼와도, 숲의 곰들과도 조화롭게 어울렸다.
그의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태도는 경계심을 녹였고, 러시아 보호구역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곳에 ‘평화의 호랑이 숲’이 생겼다.
중국 내몽골 자치구 근처, 옆으로는 만리장성이 지나고, 옛 고조선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지.
태림은 유독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기에서 치우(蚩尤)는 무릎 꿇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분노보다 이해를 택하겠다.”
그는 마치 오래전 탁록대전에서 황제(黃帝)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건곤일척의 전쟁을 벌였던 것처럼...
한족 호랑이 무리와 한동안 갈등을 겪었으나, 이내 말할 수 없는 그 무언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해 버렸다.
경계와 경쟁의 상징이었던 그 땅에서, 처음으로 다른 언어와 몸짓을 가진 이방(東夷) 호랑이가
‘무릎 꿇지 않음’이 아닌 ‘포용’으로 설득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인 보호관리자들은 태림의 차분한 태도에 감명받았다.
그는 곧 유라시아 생물다양성 프로젝트의 상징이 되었고, ‘치우의 후예’라 불렸다.
도쿄에서 남쪽으로, 큐슈의 한 자연보호구역.
바다를 건너온 ‘림화’는 이곳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백제의 멸망, 임진왜란, 식민지 시절...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바다 너머를 응시했다.
오래전 한국과 일본은....
서로 왕래하면서, 어려울 때 돕고 살았던 아름다웠던 기억도 잠시....
그의 머릿속엔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해버린 백제의 부흥을 돕기위해, 27천여명의 일본군이 수백척의 함선을 이용하여 백제땅으로 이동하던 장면...
이어서 최초의 한.중.일 삼국전쟁이 치러졌던, 663년의 백강(지금의 금강) 하구와 그곳에 널부러진 전사들의 시신들로 인해 피비린내나는 참혹한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 이후의 임진왜란, 한일병탄, 일본군의 검과 총아래 신음하는 한국인.....
“망각은 평화를 낳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은 연민을 낳는다.”
일본의 가미가제(신風) 호랑이들은 림화의 정신을 싫어했다.
그들은 림화의 과거의 기억을 빼앗기 위해 과거 그들의 선조호랑이들이 범했던 유사한 잘못을 자행했으나,
어찌 림화의 그 정신을 빼앗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되려, 림화의 강인한 눈빛과 근엄한 기상과 힘에 제압당하여 끝내 꼬리를 내리고, 함께하게 되었다.
일본의 젊은 사육사는 첫눈에 림화의 온순한 행동과 이상한 눈빛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다.
림화는 교육 동영상의 주인공이 되었고, 일본 내 한일 우호 상징으로 뉴스에 오르내렸다.
그녀의 뒤에는 언제나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듯한 시선이 있었다.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 린든은 조용한 존재였다. 그는 종종 철창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1866년, 신미양요.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
사냥후 먹잇감을 나누는 하이에나처럼...
그들은 제국주의 기운이 태동하는 ‘도쿄’라는 심장에서 만났고, 어려울 때 서로 돕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름진 뱃속을 더 채우기 위해 과거에 맹세했던 맹약도 헌신짝처럼 벗어던져버렸다.
“나는 기억한다. 침묵은 용서가 아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 커뮤니티에서 영웅이 되었다.
그의 사연을 들은 학생들은 한국의 역사를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린든은 뉴욕 공립학교의 다문화 교육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가끔 동물원에 음악방송이 흘러나오면, 린든은 가벼운 마음으로 몸을 흔들기도 하는데, 마치 ‘케데헌’의 “골든”에 맞춰 춤추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인들은 한반도의 ‘하나됨’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 낭림이 처음 서울에 왔던 1999년을 기념하여, ‘백두의 후예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두림, 태림, 림화, 린든이 각각 자국 보호 프로그램 협정을 통해 일시적으로 서울대공원에 모였다.
그들이 끌어안았던, 그래서 그들에게 매료되어버린 대륙의 호랑이들도 함께했다.
낭림이 박제되어 있는 전시관 앞, 그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떤 몸짓도, 울음도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대공원 전체는 숨을 죽인 듯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대형 스크린이 켜지고, 서울의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통일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반도의 형상이 화면에 떠오르자, 두림이 천천히 일어서더니, 다른 호랑이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머리를 부딪쳤다. 그것은 싸움의 시작이 아니라, 화해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분단의 상징이 아니었다. 이제는 통일의 상징이 되겠다.”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낭림의 전설』은 단지 서울대공원의 한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저는, 우리가 얼마나 깊이 분단의
역사와 외세의 흔적을 품고 살아왔는지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낭림은 철창 속의 동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상처와 회복, 고통과 희망,
그 모든 시간을 관통해온 ‘기억의 존재’입니다.
그 후손들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과거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다시 서울에 돌아와 하나되는 이야기를 쓰는 동안 저 역시도 우리의 아픈 과거에 대한 , 그리고 제 기억 속의 동물원 한 켠을 헤맸습니다.
‘두림(杜林)’이 응시했었던 백두산정계비와 아무르강,
‘태림(泰林)’이 포효했던 만리장성,
‘림화(林華)’가 바라본 백강의 석양,
‘린든’이 기억한 신미양요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역사까지,
이 모든 서사는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세계를 꿈꾸고 있는가?”
서울대공원은 단순한 공원이 아닙니다.
그곳은 서울시민의 기억 저장소이자, 미래 세대의 상상력이 자라는 공간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호랑이 한 마리에서 시작된 전설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