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공정은 어디에 있는가
공직채용, AI시대의 인간다움의 회복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 出”의 저자
“공무원 시험은 그래도 공정하잖아.”
흔히 듣는 말이다. 누구든 같은 시험장에서 같은 문제를 보고, 같은 시간 안에 답안을 제출한다. 돈도, 배경도, 추천서도 통하지 않는다. 오직 실력과 노력, 그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이는 분명 한국 사회가 절차적 공정성 측면에서 이룬 중요한 성취다. 시험의 형식, 채점 기준, 익명 평가 등은 명확하고 평등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국가직 공무원 채용에 필요한 구조적 변화
나는 제안한다.
국가직 공무원 7급 및 9급 채용 과정에 “지역할당제와 지방대학 할당제”를 정교하게 도입해야 한다.
공직은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이자, 지역과 국민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는 최전선이다.
그렇다면 그 인재풀 역시 특정 지역과 대학에 편중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 특정 대학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 수도권 중심의 기회 구조를 해소하며,
- 다양한 지역과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공직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입직의 출발선 자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도는 단지 형평성의 관점이 아니라,
공공성이 요구되는 직무에 적합한 “사회적 대표성 확보”라는 기능적 관점에서도 타당하다.
공정한 시험의 이면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fairness)은 같지만, 실체적 공정성(substantive fairness)은 그렇지 않다. 시험장에 들어가기까지의 조건은 과연 모두에게 동일한가?
- 누구는 고시원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준비하고,
- 누구는 과외와 입시컨설팅, 해외연수까지 지원받는다.
기회의 평등이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기회에 도달할 수 있는 조건’은 평등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한국 사회 공직 채용의 구조적 한계다. 공정한 시험은 존재하되, 그 시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공정하지 않다.
금수저의 공무원 진입 – 공정인가, 자원 낭비인가
최근 명문대를 졸업하고 7급이나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금수저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더 나은 워라밸, 고정된 연금, 사회적 안정성을 찾아 공직으로 향한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그들의 배경과 교육이 과연 공공복지의 최전선에 맞는가?
과거,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지역 국회의원과 토착세력들간의 상부상조하는 과정에 공정해야 할 청년채용이 불공정으로 오염시켰다는 의혹이다.
최근 고위층 자제의 중앙부처 “공무직” 불법채용 의혹이 불거지기도 하였는데, 금수저들의 부도덕한 “도덕적 해이”의 일면이라 할 수 있다.
복지관, 동주민센터, 기초생활민원 창구에서 일할 공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력, 정서적 민감성, 사람에 대한 애정이다.
“나는 이대 나온 여자야.”
영화 속 대사가 던지는 현실적인 질문.
명문대를 나왔다고 해서 모든 자리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부모의 재력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흙수저들보다 출발선이 달랐다.
그로인해 우수한 능력과 실력을 겸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만의 노력이 아닌 사회 자본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역할은 공직 진출보다는 그들이 우수한 능력과 실력을 배양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보다 공정할 것이다.
국가의 부와 가치 창출 영역, 즉 민간부문에서 말이다.
AI 시대, 공직의 미래와 인간다움
사회는 AI와 로봇으로 대체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상위 1%가 가치를 창출하고, 상위 10%가 이를 보좌하며 나머지는 잉여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존재한다.
공무원의 역할도 예외는 아니다.
행정처리는 인공지능이, 상담은 챗봇이, 민원은 키오스크가 담당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러나 인간만이 가진 자질, 즉 감수성과 창의성은 여전히 AI가 넘보기 힘든 영역이다.
공무원 역시 두 부류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 감수성이 뛰어난 공무원
- 창의성이 뛰어난 공무원
진짜 인간다운 공무원. 사람을 이해하고, 상상하고, 연결할 수 있는 사람만이 공공의 영역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교육의 공정성이 진짜 공정을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감수성과 창의성조차도 금수저가 더 쉽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 교육, 토론식 수업, 해외경험, 책 읽을 시간… 모두 환경의 산물이다.
결국,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험을 공정하게 치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감수성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즉, 공정한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공정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다.
그러한 교육이 가능하려면, 공정한 조세원칙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금수저가 어찌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하겠는가!
재벌 회장, 고위관료, 금융가 등 내노라하는, 소위 이 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그들의 노력, 실력만으로는 그들의 부와 명예를 이루었다고는 할 수 없다.
사회제도나 국가·시민들의 지원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마무리: 공정은 배치다, 공정은 교육이다
공정한 시험은 출발일 뿐이다.
공정한 사회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미래의 공무원은 기술이 아닌 감성적 인재, 창의적 인재여야 한다.
그 인재는 공정한 교육을 통해 자란다.
금수저, 흑수저 와는 무관하게 그들 각자가 보유한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가 인정하는 적정한 수준의 교육을 동등하게 받을 수 있는 교육^^
공직사회의 실체적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단지 채용의 공정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기회 이전의 교육부터 공정하게 설계해야 한다.
“미래의 공정은 시험이 아니라 감수성이고,
스펙이 아니라 상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