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인간, 변해야 할 행정

『Same As Ever』를 읽고

by 김정선


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出)의 저자


들어가면서

모건 하우절의 『Same As Ever(불변의 법칙)』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의 본성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통찰로 시작한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통해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그 본질을 이해하면 더 나은 판단과 리더십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30여 년의 공직 생활을 통해 그 명제를 수도 없이 체험해왔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의 불변의 법칙

내가 경험한 ‘변하지 않는 진리’는 두 가지다.

첫째, 공무원은 교육으로 변하지 않는다.

둘째, 공무원은 승진을 위해 일한다.


교육은 공직자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도구라기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에 가깝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교육을 받아도, 조직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배우고 잊고, 또 배우고 잊는 단순 반복 속에 제자리걸음을 한다.

승진 또한 공직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다.


승진의 가능성만 보이면 불가능한 일도 해내지만,

그 보상이 없다고 느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조직의 리더십이란, 이 욕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승진은 곧 동기부여의 지렛대”인 셈이다.


‘더 크고, 더 빠르게’의 착각

저자는 인간의 무지를 벼룩의 사례로 들려준다.

벼룩은 작지만 공중으로 60cm를 뛸 수 있다.

그런데 벼룩이 사람만큼 커진다면, 공기 저항 탓에 고작 180cm밖에 뛰지 못한다.


‘더 크고 더 빠르게’가 효율의 동의어는 아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급격한 확장과 조급한 변화는 오히려 실패를 부른다.

스타벅스의 과도한 성장도 그 교훈을 보여준다.


저자는 “성장의 핵심은 인내와 희소성”이라 말한다.

인내가 있어야 성장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고,

희소성이 있어야 그 가치를 감사히 여길 수 있다.


창의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조급함이다.

행정 현장에서도 이 진리는 예외가 아니다.

나는 과거 수도사업소에서 소장으로 재직당시 창의아이디어 공모전을 두 달 단위로 추진해보자고 했다가

직원들의 원성을 산 적이 있다.

조급함은 창의를 말려버린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간은 변화를 싫어한다

저자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덧붙이고 싶은 또 하나의 불변의 법칙이 있다.

“인간은 창의를 싫어한다.”


새로운 일을 시키면 저항하지만, 기존 업무를 늘리는 건 별다른 반발이 없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이 본능적 저항이 결국 도태로 이어진다.


공직사회도 다르지 않다.

내가 교통지도과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교통지도단속체계’를 도입하려 했다.


기존의 실적 중심 단속을 바꿔, 시민이 공정하다고 느끼는 단속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직원들의 저항은 예상보다 훨씬 거셌다.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 “괜히 일만 늘어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수없이 설득하고 현장을 돌며 방향을 맞췄고, 결국 제도는 시행되었다.

초기에는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내가 자리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체계는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제도가 나빴던 게 아니라, 변화를 지탱할 사람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혁신은 제도보다 사람이 완성한다.


고통을 감수할 용기

“고통이 수반되어야 변화가 일어난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 벼락치기할 때 집중력이 폭발하듯,

위기 상황은 인간의 잠재력을 깨운다.


전쟁과 기후재난 같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류는

새로운 과학과 기술을 만들어냈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그 대표적 사례다.


행정도 위기를 통해 발전한다.

“문래동 적수사고” 이후 상수도관 교체가 본격화되었고,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에는

‘시설물안전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방식을 반복한다.

평상시에 변화를 말하면 외면당하고,

위기가 닥쳐야 겨우 움직이는 현실이 안타깝다.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변화를 꿈꾸다

인간은 변화를 싫어하지만,

그 변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된다.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의 조선 관리가 현실에 안주했지만,

미래를 내다본 단 한 사람,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구했다.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창의의 본질이다.


그 역할을 오늘날의 공직자가 해야 한다.

오늘날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다.

싸다는 이유로 화석연료를 고집하고,

비싸다는 이유로 신재생에너지를 외면하는 태도는

결국 미래세대의 생존을 담보로 한 무책임이다.

“원전이 답이다”라는 단편적 구호 뒤에 숨은

정치적 계산을 꿰뚫어볼 통찰이 필요하다.


공직자는 과학과 윤리를 함께 견지해야 한다.


마무리 말

저자는 말한다.

“미래를 예측하려 애쓰지 말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추론하라.”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직시하는 것이 진정한 통찰이라는 것이다.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되, 그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사는 것이 곧 미래를 바꾸는 길이다.

30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며 나는 깨닫는다.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그 본성을 다스릴 줄 아는 행정이 세상을 바꾼다.

행정의 미래는, 결국 사람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Same as ever”라 했지만,

우리 행정만큼은 “Different from ever”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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