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만, 인간은 협력을 배운다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말해 많이 버거웠다.
“유전자가 왜 이기적일까?”, “인간의 선한 마음도 결국 계산으로부터 나온 것일까?”
책의 서두부터 도킨스는 냉철하게 말한다.
모든 생명은 자신이 가진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고.
그래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개체는 ‘생존기계’라는 수단적 존재 ....
이타심조차 결국은 이기적 유전자의 장기적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면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런데 초반에 등장하는 한 장면이 묘하게 기억에 남는다.
암컷 사마귀가 교미 도중 흥분한 수컷의 머리를 잘라 먹는 이야기다.
도킨스는 그것조차 “유전자의 계산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머리를 잃은 수컷은 성적 충동을 제어할 중추가 사라져
더 격렬히 교미하게 되고, 그 결과 암컷은 교미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 격렬한 교미를 통해 더 많은 수정란을 남긴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숫사마귀의 머리통을 덤으로 먹어 치울 수 있는 ‘일거양득’ 아닐까 싶다.
잔혹하게 들리지만, 생명은 그렇게 이기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만 함께해야 생존할 수 있다.
새들이 경계음을 내서 포식자를 알리는 행동, 잘못하면 잡혀먹히는 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만....
벌들이 자신을 희생해 여왕과 군체를 지키는 행동.
이 모두가 겉보기엔 이타적이지만 결국 공유된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협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타적 행동은 ‘이타적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이기적 유전자들의 협력적 결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인간의 충성과 희생도 유전자의 전략일까
이쯤에서 문득 생각이 옮겨갔다.
고전 『초한지』에 나오는 인물들,
항우의 부하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며 목숨을 던지던 장면,
유방을 위해 뜨거운 가마솥에 삶아져 죽음을 택한 신하들의 이야기 말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이 불가능할 것 같아보이던 시기에 가족 3대를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던 독립운동가들 ....
그들은 명예와 신념, 독립을 위해 희생했지만,
도킨스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도 일종의 ‘유전자의 전략’이라는 말인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집단의 가치를 지키려는 행동, 그 안에는 ‘생존’ 이상의 유전적, 혹은 문화적 본능이 숨어 있다.
유전자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 밈(meme)
도킨스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밈(meme)’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유전자가 생물학적 정보를 전파한다면,
밈은 인간의 사상·문화·신념을 복제하고 확산시키는 단위다.
항우의 마지막을 함께한 장졸들의 "충절", 유방의 "신뢰", 이순신의 "충", 안중근의 "의기"....
그리고 후대에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하는 우리 모두는
결국 그들의 ‘밈’을 계속 복제하여 전승하고 있는 셈이다.
생물학을 넘어, 인간은 이제 ‘가치의 유전자’를 전파하며 진화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대목에서 나의 일도 겹쳐 보였다.
공직자로 살아오며 ‘공익’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때로는 개인의 욕망을 눌러야 했고,
조직의 목표를 위해 타협해야 할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름의 이타적 행동이었지만,
도킨스의 관점에서 보면 그 역시
‘공익’이라는 "밈"을 조직원들과 공유하고 확산시키고픈 열망에 기인한
이기적 본능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유전자는 생물학적 생존을 위해 작동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런 유전자를 초월하는 가치의 생산과 보전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강한 사회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남는다.
한국사회가 앞으로도 강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기적 유전자로 충만한 시민일까, 이타적 인간일까?
결국 사회는 이기적인 사람만 많아도 오래가지 못하고,
너무 착한 사람만 많아도 발전이 멈춘다.
경쟁과 협력, 개인과 공동체가 적당히 맞물릴 때
비로소 사회는 단단해진다.
나는 도킨스의 말을 떠올렸다.
유전자는 본래 이기적이지만, 그 속에서 서로 돕는 법을 배운 생명만이 오래 살아남았다고 했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다.
자기 이익만 챙기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무조건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리지도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을 때 문명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도킨스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런 인간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가 만들어낸 협력의 결과물’이다.
나의 생존이 곧 우리의 생존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이기심은 이타심으로 변하고,
사회는 한층 더 성숙해진다.
협력적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다, 배워진다
그런 인간은 어떻게 길러질까?
나는 그 답이 교육에 있다고 본다.
유전자는 본능을 만들지만, 교육은 그 본능의 방향을 바꾼다.
협력적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워지는 존재다.
부모가 자녀에게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해야 결국 나도 잘된다”는 경험을 보여주는 게 더 강력한 교육이다.
한 아이와 젊은 엄마가 길거리의 휴지를 줍는 환경미화원 곁을 지나면서,
엄마가 아이에게 “너 지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기 청소하는 사람처럼 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저 분 덕분에 우리가 깨끗한 곳에서 살 수 있단다”라고 말하는 엄마도 있다.
두 문장은 단순한 훈육의 차이가 아니라,
어떤 밈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느냐의 갈림길이다.
전자는 우열과 경쟁의 밈을, 후자는 존중과 협력의 밈을 복제한다.
한 세대의 말 한마디가 다음 세대의 가치관을 진화시킨다.
학교 또한 점수 중심의 경쟁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협동이 성과로 이어지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함께 과제를 해결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공동의 성공’이 개인의 만족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학생들은 협력이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현명한 생존 전략임을 체득하게 된다.
한국 교육이 바뀌어야 진화도 가능하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오랫동안 ‘개인적 이기심’을 자극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공유된 이익’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변해야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더 이상 1등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풀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것이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의 이타적 진화”를 현대사회가 실현하는 방법 아닐까.
아직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진 못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유전자는 여전히 이기적이지만,
인간은 그 위에서 협력을 배울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 배움의 시작점이 바로 교육과 문화의 힘,
즉,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밈’이라는 것도^^
마무리하며
도킨스는 유전자의 냉정한 논리로 세상을 해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던진 메시지는 결국 “협력의 지혜”였다.
생명은 이기적으로 태어나지만,
문명은 서로를 배우고 돕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라난다.
그리고 그 진화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어떤 가치를 다음 세대에 복제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p.s. 솔직히 고백하고자 한다....
비과학도인 나에게는 난해한 책이었다. 한번의 난독으로는 이해 할 수 없어,
이 책에 관한 오디오 북이나 동영상 등을 수차례 보고 들은 후에야,
이런 대략적인 독후감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