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서울시 전문서기관
*『높이 오르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이유』(2025.1. 북랩出)의 저자
들어가는 말
서울시에는 서울아리수본부 산하 8개 수도사업소와 재난안전실 산하 6개 도로사업소를 중심으로 수천 명의 공무원이 도시 기반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조직만 놓고 보면 상수도, 하수도, 도로는 각기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도시 인프라의 현실에서는 이 세 요소가 ‘도로 위·아래’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된 한 몸이다.
상수도관은 도로 지하에 매설되어 수돗물을 공급하고, 하수도관은 같은 공간에서 오수와 우수를 처리하며, 그 위의 도로 포장은 이 모든 시설을 덮고 시민의 일상 이동을 지탱한다.
그러나 현재의 행정 체계는 이 하나의 공간을 세 개의 조직이 나누어 관리하는 구조다.
그 결과 도로를 새로 포장한 뒤 상수도관이나 하수도관 교체를 위해 다시 파내는 일이 반복되고, 관로 누수와 지반 침하의 원인 분석 역시 부서 간 경계를 넘지 못한 채 단절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구조적 분절이야말로 행정비용 낭비와 시민 불편, 나아가 도시 안전 위협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도로 위·아래를 하나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
서울 도심에서 발생하는 씽크홀(도로함몰)의 상당수는 노후 상·하수도관의 미세 누수와 그로 인한 지반 침하에서 시작된다.
최근 언론 보도와 관련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서울시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 223건 중 약 31%가 노후 상·하수도관 손상 또는 누수와 관련되어 있었고, 전국적으로는 같은 기간 지반침하 사고의 약 54%가 상·하수도관 손상이나 누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씽크홀 문제가 단순히 ‘도로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수도·하수도 관로 관리와 도로 관리가 분리된 행정 구조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관로의 상태와 도로 포장의 상태, 지반의 안정성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연속체인데, 행정은 이를 기능별로 쪼개어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상수도 관로의 설치·유지·교체·누수 관리는 서울아리수본부가 담당하고, 하수도 관로의 경우 서울시 물순환안전국이 5년 단위의 중장기 하수도정비계획을 수립한 뒤, 그에 따른 사업 시행은 물순환안전국 산하 물재생센터와 각 자치구가 서울시 예산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구조다. 도로 포장과 구조물 관리는 재난안전실 산하 도로사업소가 맡고 있다.
즉, 하나의 도로 하부 공간에 매설된 상수도관·하수도관·도로 구조물이 각각 다른 계획 체계, 다른 집행 주체, 다른 관리 데이터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계획과 집행, 관리 주체가 분절된 구조에서는 공정 간 사전 조정이 어렵고, 사고 예방보다는 사후 복구 중심의 행정에 머물 수밖에 없다.
상수도·하수도·도로 통합관리의 필요성
여기서 말하는 통합관리는 개별 조직을 단순히 하나로 합치는 문제가 아니다.
상수도·하수도·도로를 하나의 공간 인프라로 인식하고, 계획 수립 단계부터 공정 조정, 시공 일정, 유지관리 이력, 지반·누수 데이터까지를 하나의 체계로 연동하는 통합관리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만약 상수도관로 관리 기능과 하수도관로 관리 기능, 그리고 도로 관리 기능을 하나의 통합된 체계로 묶는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관로 교체와 도로 포장을 하나의 계획 아래에서 조정하고, 지반 상태·누수 이력·포장 상태를 통합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씽크홀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낮출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효율화가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행정 혁신이다. 더 나아가 AI 기반 관로 진단, 지반 침하 예측, 누수 감지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운영한다면, 사고 발생 이후의 복구 행정이 아니라 사고 이전의 예방 행정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선제적 행정’이다.
시민이 체감하는 행정으로의 전환
내가 수도사업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고령의 어르신이 먼 길을 걸어 수도사업소까지 찾아와 요금 민원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찾아가는 수도요금 민원창구’를 제안했지만, “새로운 업무가 생긴다”는 이유로 내부 반대에 부딪혀 끝내 실행되지 못했다.
이 경험은 여전히 공직사회를 지배하는 부서 중심 행정의 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I 시대의 행정은 더 이상 ‘어느 부서의 소관이냐’를 묻지 않는다. 시민이 얼마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서비스를 누리는지가 행정의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상수도, 하수도, 도로라는 인위적인 경계를 허물고, 시민의 삶을 기준으로 조직을 재구조화해야 한다.
통합 이후의 도시,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상수도·하수도·도로 관리 조직을 통합하면 중장기적으로 사업소 기능의 중복이 줄어들고, 일부 사업소 부지에는 여유 공간이 생길 수 있다.
이 부지를 활용해 공공임대주택이나 행복주택을 조성한다면, 도시 안전 강화와 함께 주거복지 확충이라는 또 하나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통합 모델을 공원녹지사업소 등 다른 도시 기반시설 관리 조직으로 확산한다면, 안전관리 혁신과 도시 공간 재활용, 주거복지 확대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적 확산과 제도 개선의 방향
유사 기능 간 통합관리 모델은 서울시에만 국한된 과제가 아니다. 전국 지자체로 확산할 경우, 공공 인프라 유지관리의 효율성과 안전성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지자체별로 흩어져 있는 상수도·하수도·도로 관리 기능을 통합·조정한다면, 국가 전체의 도시 안전 관리 체계 역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더 나아가 시와 자치구 간 역할 재조정을 통해 수도요금 민원과 요금 징수 업무를 자치구로 이관하고, 수도사업소는 상수도관 부설·교체, 배수지 관리, 계량기 보급·교체 등 본연의 기술적 기능에 집중하는 구조도 검토해볼 만하다.
물론 상수도 분야가 독립채산제 특별회계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조직 통합을 넘어 재정 체계 전반에 대한 제도적 검토가 병행되어야 할 과제다.
안전과 효율, 두 축을 함께 세우는 행정
상수도 관로, 하수도 관로, 도로 관리의 통합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를 바라보는 행정 철학의 전환이다.
도로 위와 아래의 경계를 허물고, 사후 복구가 아닌 사전 예방 중심의 도시 안전 행정으로 나아갈 때, 서울시는 예산을 절감하면서도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결국 행정 혁신의 출발점은 새로운 시스템이 아니라, 기존의 벽을 허무는 용기와 시민 중심의 시각에 있다.
이러한 통합 관리의 방향은 서울시뿐 아니라 중앙정부 산하 기관과 전국 지자체에도 함께 적용되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마무리
씽크홀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도로 위와 아래를 나누어 관리하지 않는 행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