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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물 Aug 14. 2024

여름으로.

-한 계절이 지워져 가는 시간들.



봄과 여름 사이를 걷고 있어.

매일 밤 걷고, 걷고, 또 걸으며

밤하늘로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을

지나가고 있어.     


자정이 가까워지면

숨어있던 별들이 하늘을 수놓아

아름답게 떨리는 빛들

조그만 별들은 내 눈가에 고여.  

   

걷고, 걷고, 걸을수록

밤하늘 별은 선명하게 빛나는데

내 머릿속 아득해져 가는 별 하나,

흩날려 사라져 가는 하얀 꽃잎들.    

 

내 마음 보석함에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어 반짝임을 붙들어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기억은 사라져 가고

하늘로 흐드러진 별들만 남겨지고 있어.  

   

어떻게든 떠올리고 또 떠올리지만

소금기로 지워져 가는 흐릿한 장면과 달리

오늘따라 더 선명한 별들에

세상의 모든 슬픔들이 나를 찾아와.    

 

걷고, 걷고, 또 걸을 때마다

너를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보지만


그렇게 너와의 봄을 지나쳐

어쩌면 나는 여름으로 가고 있나 봐.   

  

걷고, 걷고, 걸을 때마다


봄에서 여름으로 멀어져 가는

별 하나에 추억이 서글픈

봄과 여름 사이의 날들이야.     


-여름으로




지워지지 않아 슬펐던 날들이 애석하게도,

지워져 가는 시간들이 슬플 수도 있음을.

밤마다 선명하게 빛나는 별들의 아름다움을 보며 알았다.


여느 때와 같이 산책을 하던 날이었다. 그날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만 여름이 오기 전, 이 시를 썼던 나는 한창 누군가를 생각하고 떠올리던 시기를 걷고 있었다. 누군가의 모습이 그리워서 그리고 그려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져 가는 모습에 안간힘을 써서 떠올리곤 했다. 차츰 지워져 가며 '괜찮아지고 있는 과정이구나.'하고 꽤나 괜찮은 시간들로 걸어가다가, 문득 그날 산책을 하며 올려다본 밤하늘에 별이 너무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걸 봤다.


밤 11시경, 수풀이 우거진 공원에서 어쩌다 올려다본 어두운 밤하늘에는 그날따라 참 많은 별들이 예쁘게도 수놓아져 있었다. 


내 눈가에도 반짝이는 별 하나가 고였다가, 별똥별이 되어 턱 밑으로 떨어졌다.


별은 여전히 저렇게나 선명하게 빛나는데, 내 선명했던 기억은 흐릿해지고 빛이 바래가는 것이 왜 그리도 슬펐는지. 슬픔을 넘어서서 서글프기까지 했는지. 아마도 저 시기의 나는 그 사람을 잊고 싶지 않았나 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내 머리와 마음속에서라도 선명하게 간직하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음이 서러웠나 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이제는 머릿속에서 마저 지워지고야 마는 그 모습과 달리 저 별들은 함께였던 그 때나 혼자인 지금이나 너무도 뚜렷하고 선명하게 빛나고 있어서. 


봄밤에 함께 걸으며 봤었던, 밤하늘을 가득 채울 정도로 흐드러진 하얀 벚꽃 잎은 이미 다 떨어지고 없었다. 그렇게 봄이 끝나고, 그 이후에는 기억들도 그렇게 져버린 벚꽃잎들처럼 희미하게 지고 있었다. 벚꽃잎 떨어진 빈 하늘에는 하얀 별들만 가득 빛나고 있다. 그렇게 나는 그 사람과 함께했던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고 있었고, 하늘 위에서 여전히 한가득 빛나는 별들과 달리 가장 커다랗게 반짝이던 기억 속의 별 하나가 사라져감에 많이 서글퍼했다.


지워져 가는 시간들이 서글펐던 것을 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사라져 버린 그의 모습을 잊기 싫을 만큼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이 글을 꺼낼 수 있는 건 가을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빈 마음이 오늘따라 어떤 글도 덧붙여 쓰지 못할 정도로 어떠한 기쁨도 슬픔도 없이 깨끗하게 비어있어서. 꽉 찼을 때의 내 마음을 꺼낼 수밖에 없겠다며 이 여름에 기어코 이 글을 꺼내고야 만다. 분명히 방금까지 비어있던 내 마음에, 잠시나마 슬픔이 차오름을 느꼈다. 슬픔의 기억과 흔적이 글에 뚝뚝 남아 그런 걸까? 


나의 빈 마음으로, 

언젠가 가득 찼었던 나의 마음을 들여보낸다.

나의 빈 마음에 잠시나마 차오른 어떤 마음이, 

누군가의 또 다른 빈 마음을 채워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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