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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물 Aug 17. 2024

구겨진 휴지장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



너의 의미를 곱씹는 일마저 의미가 사라졌을 때, 나는 내 가슴을 잘라 심장문을 열었다. 심장 속에 구겨진 마음 하나. 내 구겨진 휴지장 같은 마음을 가슴속에서 꺼내어 들었다. 보잘것도 없이 엉키고 위축된 마음의 뭉치를 어디에 버리면 좋을까 둘러보다, 잠시나마 펼쳐 네가 했던 약속을 다려본다. 손으로 다린 휴지장엔 언젠가 써 내려갔던 말들 위로 구겨진 흔적들이 한가득 남아있다. 심장의 온기로 다려보면 자국이 펴지지 않을까, 하고 내 심장 반쪽을 떼어 다려보지만 휴지장을 다리미로 다리듯 온도차에 불타서 사라지는 한 장의 마음에 나는 다시 내 심장을 남은 반쪽에 붙여 두었다. 너와의 기억들로 건넸던 온기를, 이제 나 자신에게 건넨다.  심장이 완전히 붙고 나면 온전한 삶의 박동으로 회복될 것이다.


꺼내든 휴지 뭉치를 아직 손에 들고 있다.


불쑥 휴지통으로 던져버릴까 생각하곤 했다. 몇 번이나 던져 버리려던 구겨진 자국 가득 남은 그것을 활짝 펼쳐져 있었던 때만큼은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며 아직 손에 쥐고. 가끔은 펼쳐보며, 눈물로 점철되었던 시간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도 괜찮겠다고. 부드럽게 손으로 감싸 쥔다. 펼쳐져 있을 땐 가벼웠던 휴지장 하나가, 동그랗게 구겨지고 난 후로 조금은 무게가 더해졌다.


-휴지장



말이란 것은 한 장의 휴지장 같아서 가볍게 날아가버리기 쉬운 것이라 느낀 적이 있다. '말'이라는 것은 얼마나 흩어지기 쉬운 것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말이라는 것이 그렇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곱씹고 곱씹던 마음이라면, 그 의미가 온전하게 다른 마음으로 날아가 잠시나마 앉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마음이 말이 되어 나의 심장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해도, 그 말이 나왔던 마음이 달라지거나 더 이상 없다면 이미 심장에 앉아버린 말은 내 심장으로 녹아내리는 눈물이 될 뿐이다. 내 심장으로 들어온 말은 곧 나의 마음이 된다. 기쁨이 될 수도, 슬픔이 될 수도 있는.


심장으로 내려앉았던 말을 곱씹는 일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생각했을 때, 그때 느꼈던 내 마음이 꼭 구겨진 휴지 뭉치 같다 느꼈다. 구겨지고 너덜너덜해진, 힘없는, 숱한 눈물들을 흡수했던 휴짓장 하나는 참 보잘것없이 찌그러지고 뭉쳐져 있다. 아마도 내 마음 하나가 그렇게 생겼을 거라고 그려본다. 이제는 갖고 있는 것이 어떠한 의미도 없다 여겨지는 건 꼭 구겨져 쓸 수 없는 휴지쪼가리 하나의 쓰임새와 닮아있다. 이제는 이 글과 함께 심장에서 꺼내어 휴지통으로 휙 버릴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꽁꽁 숨겨둔 물건들을 상자 속에 넣으며 가슴에서 꺼내든 마음 하나에 담긴 그동안의 시간들을 마주했다. 하나씩 꺼내어 살피다, 어쩌면 그것도 그것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랜만에 눈물이 나왔다. 어떤 감정이 묻은 눈물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지나간 시간과 감정들에 대한 애도의 눈물이었을까?


가치 없다, 아무런 의미 없다며 버리려던 휴지장을 손에 쥐고 있다. 휴지는 종이와 달라서 모나지도 않고 빳빳한 구석에 찔릴 틈도 없이 부드러우니, 가끔은 휴지장같은 마음을 꺼내어보며 쓰다듬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진다. 구겨진 종이같이 아프던 마음이, 부드러운 휴지처럼 옅어지다가 나중엔 공기 중으로 날아가 사라지지 않을까. 말이 그렇듯이,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하며 가슴속에서 꺼내든 마음 하나를 부드럽게 손으로 감싸 쥐어 본다.


휴지장처럼 구겨진 마음 하나를 비워낸 심장 안으로, 새 살이 차오른다.

꺼내든 내 마음 쓰다듬으며, 당신의 마음도 쓰다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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