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의 어둠, 도서관의 불빛

by 소정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대학에 입학했지만, 현실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섬에서 다섯 해 동안 공무원 생활로 모은 적금이 있었으니,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 생활은 매몰찼다.


팔다리조차 제대로 뻗을 수 없는 좁은 방세에다, 공과금·책값·생활비까지 겹치니 통장은 가뭄 난 논바닥처럼 금세 밑바닥을 드러냈다.


겨울이면 방 안을 헤집는 찬 기운을 막으려 연탄불 구멍을 열어두곤 했다. 그러나 연탄가스 냄새가 은밀히 스며들어 머리가 띵해질 때마다,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해야만 했다.
자취방은 책과 옷가지만 쌓아둔 창고일 뿐, 결코 사람의 온기를 품은 ‘집’이 될 수 없었다.


이런 생활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대로 대학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막막했다.
지도교수님을 찾아가,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으니 야간 근무를 부탁드렸다. 그러나 교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정말 공부하고 싶다면, 야간 근무는 오히려 독이 될 거예요.
그 시간에 온 힘을 다해 공부하세요. 그리고 장학금을 받을 만큼 공부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지켜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하고 확실한 길입니다.”


그 말씀은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어떤 변명도, 어떤 핑계도 허락되지 않는 단호한 조언이었다.
그렇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공부만이 나를 다시 세워줄 수 있다는 그 사실, 순간 그 말씀이 희망으로 내 맘에 스며들었다.

어둡던 내 길 앞에 작은 등대 하나 솟아올라, 내 앞길을 환히 비추기 시작했다.


다음 날 새벽부터, 나는 가장 먼저 학교 정문에 줄을 섰다.
교문이 열리자마자 나처럼 애처로운 학생들과 함께 숨차게, 도서관으로 달려가 창가 자리를 차지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가 독학생의 지친 일상을 위로하듯 감싸주었다. 그곳은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라, 매 순간 꿈을 단련하는 훈련장이었다.


자정 무렵 도서관 문이 닫히면, 다 쓴 연습장 하나를 슬쩍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내일의 자리를 미리 찜해 두곤 했다.

“여학생이, 이렇게 늦게까지 학교에 있으면, 집에는 어떻게 가려고?”
수위 아저씨는 책상 위에 놀려진 노트를 못 본 척, 넌지시 건넨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집’이라는 단어가 객지 생활의 허전함에 잠겨 있던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집아라니...

나에겐 따뜻한 밥 냄새도, 기다려줄 부모님 조차 없는 온기 없는 초라한 쪽방, 자취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나의 마음을 고추 세웠다.
'비록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내 힘으로 학업을 마치고, 당당히 내 길을 찾아야지.'


공부는 고되고 더뎠다.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해도 원서 한쪽을 해석하기 어려웠다. 동기들이 당구장이나 미팅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도서관의 빈자리를 지키며 불빛보다 더 밝게 내 눈을 밝히고 다짐했다.


“나는 영리하지 못하다. 그러나 끈기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그 힘으로 버티자.”

그 믿음 하나로 한 페이지씩,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2학기부터는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충당했고, 교회와 학교 장학금까지 이어지며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불안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우리 과는 여자가 취업하기 어렵다. 늦기 전에 다시 공무원으로 돌아가라.”

선배들의 충고에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엄마의 말씀을 떠올렸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배워야 한다. 꼭 도시에 나가 대학을 졸업해라.”


뼛속 깊이 새겨진 생전 엄마의 말씀이 나를 단단히 붙잡았다.

아무도 내 길을 결정해주지 못한다.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망망한 현실 앞에서, 나는 스스로 등대가 되어 나의 길을 밝히기로 했다.

'돌아갈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길.
난파선에 매달린 듯한 생존의 몸부림.'
그 길만이 내가 살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쪽방의 퀴퀴한 어둠과 도서관의 따뜻한 불빛은 나를 담금질하는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그 순간들이야말로 내 안의 나를 단단히 벼려낸 시간이었으니까.


대학생활은 고달픔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졸업과 국가에서 인증하는 면허증까지 손에 쥘 수 있었다.

비록 모든 것을 가진 이들에겐 소소하고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빈손뿐이던 내게는 이 결과가 더없이 당당하고 만족스러웠다.

나는 체득했다.


“어둠을 견뎌야만 비로소 빛을 만날 수 있다는 진실을.”


혹여 지금 누군가 어둠 속을 걷고 있다면,
그 끝에는 반드시 당신만의 빛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