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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Nov 29. 2023

프롤로그

좋은 일 너머, 사회복지사란 직업

무슨 일 하세요? 

사회복지사인데요. 

좋은 일 하시네요. 


이 말은 “How are you?” “Fine, Thank you”처럼 자동적이다. 하지만 많은 사회복지사들은 이 말을 싫어한다. “좋은 일”이란 말속에 담긴 “비전문적”이고 “자원봉사”처럼 느껴지는 뉘앙스 때문이다. 의사인데요. 변호사인데요. 란 답에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하진 않기 때문이다. (이 역시 좋은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천사처럼 착한 사람들이고 저임금으로 혹은 돈과 상관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현실판 마더테레사 정도의 환상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가끔 주위에서 내가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 놀라기도 해서 내 월급을 나도 모르게 적게 얘기하거나 숨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처음 사회복지를 시작할 때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사회복지현장은 그저 직장이고 나는 직장인일 뿐이다. 나는 이 업종에서 20년을 넘게 일했는데, 초반 10년 동안은 한 직장에서 2년을 넘기지 못했다. 모든 직장이 그렇듯 참을 수 없는 상사 내지 동료가 있었으며, 그들이 펼치는 (내가 생각할 때) 부조리와 의미 없는 업무에 ‘아, 여긴 답이 없어 하루도 더 못 다니겠다’는 생각으로 박차고 나오기를 7,8회 하고 난 이후, 난 이제 더 이상 이 바닥에서 일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즈음 지금 일하고 있는 [함께걷는아이들]을 만나 현재 12년째 일하고 있다. 


사회복지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아동, 노인, 장애인 등)를 직접 도와주는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20년 직장생활 중 이렇게 도와줄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첫 직장은 복지관이었는데, 그때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대면해야 했다. 지역 노인분들을 위해 한방봉사자분들이 오는 매주 월요일은 8시간 내내 한방 뜸뜨기 보조를 했고, 매주 수요일은 반찬봉사자분들이 만들어 놓은 반찬을 포장하여 가가호호 가정방문을, 토요일은 빈곤가정 청소년들과 동아리 모임을 하는 식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피곤했고, 매일매일 파김치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파김치는 더 삭아갔다. (전문용어로 소진됐다고 한다.) 그때 2년 동안 복지관을 다니며 깨달았다. 난 이런 일은 못하겠구나. 

그 이후 나는 석사를 공부하여 연구원에 취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라고 자그마치 대한민국 보건복지의 모든 정책을 연구하는 국책연구원이다. 여기서도 1년 반 만에 퇴사를 했는데, 연구직은 중요했지만 지루했고, 바쁜 와중에도 심심했다. 공부를 더하기는 싫었는데 박사를 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의 이직의 역사는 X표를 하나씩 그리는 과정이었다. 아, 나는 현장은 아니구나. 연구직 아니구나. 공공조직 아니구나.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어 결국 무얼 했냐고?  

나는 연구직이나 공무원처럼 현장과 너무 동떨어져 사회복지 현장감이 없는 곳도 아니고 매일매일의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현장도 아닌, 그 사이에 자리 잡았다. 사회복지 현장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기부할 의사가 있는 개인, 기업, 단체에게 이런 곳에 이렇게 지원해 보세요.라고 제안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나는 기업 사회공헌 사업을 제안하거나 수행하는 일을 많이 했는데, 나의 첫 기업 프로젝트는 SK계열사가 함께 기부한 사업으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전문분야 선생님을 파견하는 사업이었다. 2년 반에 40억이라는 큰 금액이었고, 나는 그 프로젝트 팀장으로 입사했다. 물론 나는 SK 직원이 아니라 이를 수행하는 비영리단체 소속이었다.  

SK와 함께하는 “행복한 일자리”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였는데, 이때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생활복지사 샘 외에 학습선생님, 영어선생님, 체육선생님, 보건선생님, 야간보호선생님 등 특정 분야를 지도할 선생님을 선발하고 교육시켜 파견하고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나는 이때 일이 너무 재밌어서 일에 푹 빠져 일과 내가 일치되는 경험을 했다. 기업의 요구를 현장에 반영하고 현장의 요구를 사업에 반영하여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사업으로 잘 진행되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은 나의 적성에 잘 맞았다. 이 사업은 2년 반 약속한 기간이 끝나고 심지어 정부 정책사업으로 확장되어 100명이었던 일자리가 2,700명의 일자리 정책사업으로 전환되었고 나는 보건복지부 담당 사무관을 도와 정책화하는 과정에 일조했다. 이 사업은 “아동복지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있으며 지자체가 직접 고용하는 일자리 사업이 되었다. 사회복지영역에서의 나의 이런 포지션은 지금까지 유지되어 아직도 나는 기부자에게 누군가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제안하고 그 비용이 복지 현장에서 잘 사용되도록 다리를 놓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들으면 매일의 일상이 엄청 뿌듯할 거 같지만 우리의 일상이야 복지관에서 처음 내가 반찬을 끝도 없이 포장하며 내가 반찬 포장, 배달하려고 여기 왔나. 현타가 온 것처럼 일상적인 행정업무, 보고업무, 회의, 행사 등에 치여 나는 누구인가?를 돌아볼 때가 많다. 


그렇게 사회복지 22년. 내가 해온 “좋은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학부 4년, 석사 2년, 사회복지사 1급 자격, 22년의 관련 경력. 이 정도면 전문직이고 나는 전문가지! 내세우기보다, 그 공부와 업무의 궁극적 목적에 “좋은 일”이라는 “선”이 자리 잡고 있었음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일”이지만 단순히 그저 좋은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닌, 내가 경험한 사회복지, 비영리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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