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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Dec 30. 2023

기부금은 어떻게 쓰이는가(쓰여야 하는가)

어딘가에 정기후원을, 혹은 일시후원을 하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후원이 어떻게 쓰인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결식아동의 방학 도시락을 지원하는 사업에 후원을 했다고 가정해 본다면, 나의 10만 원이 고스란히 1만 원짜리 10개의 도시락이 되기를 당연히 바라시겠죠? 

하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도시락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일을 담당할 담당자가 있어야 하니 그 사람의 인건비가 들어가야 하고 어느 지역의 어떤 아이들을 어떻게 선발하여 무슨 도시락을 어떤 방법으로 전달할 건지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이 경우 실제 도시락 비용이 직접비에 해당하고, 흔히 그 이외의 모든 것을 간접비로 생각한다. 간접비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주민센터나 학교에서 저소득 가정 아동 명단을 넘겨받아서 도시락 업체에 그 주소를 그대로 넘겨 배달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업이 목적대로 누수 없이 잘 진행되려면 생각보다 신경 쓸 것이 많다. 우선 받은 명단의 아이들이 어떠한지 파악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방학에 도시락이 필요 없는 집도 있을 것이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방학 때 엄마의 나라에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의 부재로 시골 할머니네 내려가 있는 아이들도 있다. 지역아동센터에 다녀서 거기서 밥을 먹는 아이들도 있다. 전화 확인으로 안되면 방문하여 확인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명단으로 대상을 선정하고 나면, 어떤 방법을 쓸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아이들이 방학 때 원하는 도시락은 무엇인지 욕구 조사도 해야 한다. 안 먹을 것을 매번 배달해 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방문하면서 아이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할 것인지, 그냥 업체에 돈을 주고 배달까지 맡길 것인지 등이다. 당연히 전자가 좋은 방식인데 그렇다면 자원봉사자도 모집하고 교육도 시켜야 한다. 봉사자가 가정에 방문해서 도움이나 변동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 도시락 배달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과 어떻게 평가하고 기부자에게 어떻게 피드백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평가 마무리까지 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역할이다. 그 담당 사회복지사의 역량에 따라 동일한 내용으로도 완전히 다른 사업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한다. 도시락을 배달하는데 사회복지사 인건비가 왜 필요하냐고. 내가 너희들 월급 주려고 후원한 줄 아냐고 말이다. 

사업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간접비는 적게 들어간다. 사업이 섬세하고 촘촘할수록 간접비가 높아진다. 프로젝트에 따라서는 간접비만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 단체가 참여했던 '어린이병원비 국가 보장' 활동의 경우, 직접 비용은 거의 없다. 각 단체들이 모여서 국민건강보험에서 어린이 병원비 보장성을 높이라는 활동인데 기자회견을 열거나 성명서를 내거나 토론회를 개최하거나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이 사업은 실제 수많은 어린이들의 병원비 부담을 줄이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 단체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병원비를 지원하는 사업(직접비)은 하지 않고 정책 활동만 참여했기 때문에 사람만 투여하면 되는 간접비만 있는 프로젝트이다. 

사업에 대한 고민이 깊을수록, 더 필요한 곳을 찾아들어갈수록 간접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더 손이 많이 가고 신경 쓸 것이 많아진단 얘기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모금 문화에서는 "간접비=쓸데없는 비용"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매번 모금단체와 관련한 뉴스 중에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것이 “알고 보니 비용이 모두 단체 인건비로 나갔다. 100만 원 아이들에게 전달된 돈은 50만 원 불과” 이런 류의 기사이다. 그래서 한때는 비영리법인들의 간접비 비율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간접비가 적을수록 높은 순위) 어이없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복지단체,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숙명적으로 내 급여의 존재 자체가 뭔가 숨겨야 할 일처럼 부담스러운 재정항목이 되어 버린다. 수많은 간접비의 관련 규정들이 존재한다. 규정마다 기준도 다르고 간접비 허용 범위도 다르지만 메시지는 모두 같다. 간접비를 줄이라는 것. 


결국, 나는 간접비다!

내 인건비가 오르는 것은 간접비의 상승이고, 우리가 사람을 더 채용하는 것도 간접비의 상승이다. 사회복지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사람”으로 본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는 막상 “줄여야 할 간접비”로 취급될 때가 많다. 하지만 결국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 거리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할 때, 수많은 물품 지원, 현금 지원이 있었지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고 전화할 수 있는 의지되는 복지사 한 명이었다. 그 복지사 한 명 한 명이 사건 사고가 난 곳에 출동해 주고 경찰서에 소년원에 동행해 주고, 병원에 함께 있어 준다. 알바비용 떼먹은 사장한테 같이 찾아가서 싸워주고 억울할 일에 내 편이 되어준다. 전체 사업비 중에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는 복지사 인건비가 70%도 넘게 차지한다. 이 사업은 그냥 청소년이 처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복지사(활동가)를 키우고 보내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거리 청소년은 지원하고 싶지만 인건비는 지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모든 후원처(자)의 조건이니 설득의 길이 멀고도 험하다.  

“아, 우리도 그냥 뿌리는 사업하자. 손 안 가는 사업 하자.”라고 마음먹을 때가 있다. 뿌리는 사업은 쉽고 신경도 안 쓰인다. 하지만 이게 정말 의미 있는 사업인지, 현장의 필요에 잘 맞춘 사업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영혼은 도망가고 재미도 없어진다. 내가 뭐 하는 사람이지?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 쉽다. 


우리가 좋은 재료를 아무리 많이 사다놔도(직접비) 주방도구가 없고 주방이 없고 무엇보다 요리를 해줄 엄마가 없다면(간접비) 재료만 자꾸 쌓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내가 후원하는 후원금이 현장의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인건비로 쓰이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고 내가 직접 도와주지 못하는 세심한 곳을 복지사들이 살펴주길 바란다면 이제 우리는 그만 간접비라는 용어 자체를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비영리단체 활동가와 사회복지사의 처우와 인건비를 당당하게 높일 수 있게 할 때, 자연히 더 좋은 역량을 가진 인력들이 현장으로 들어올 것이고 그건 우리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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