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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Dec 13. 2023

사람은 두 종류다. 기부하는 자와 기부하지 않는 자.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보면 모금하는 활동을 기본값으로 하게 된다.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복지단체에서 일하더라도 정부지원금으로 기본적인 운영은 되지만 좀 더 많은 지원을 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내가 20여 년간 일한 8곳의 일터 중 정부 연구기관이었던 보건사회연구원을 빼고는 모든 곳은 개인 후원자를 모집하는 곳이었다. 그 후원을 요청하는 모금활동이 절박하느냐 부수적이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정부지원을 받는 복지시설은, 사실은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인데 정부가 직접 하면 효율도 떨어지고 정부가 너무 비대해지기 때문에 민간 기관에 맡겨 운영하도록 하는 구조이다. 운영기관을 일정 기간마다 심사, 선발하고 기본적인 인건비 및 운영비를 정부가 지원한다. 우리 흔히 만나는 복지관, 아동양육시설, 쉼터, 아동보호전문기관(학대 피해 아동 지원), 지역아동센터 등 복지시설에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여기에서 일하면 모금활동은 늘 하지만 정부지원금이 있기 때문에 절실하진 않은 편이다. 이런 곳들 중 적극적인 시설들이 모금활동을 하는 편이다. 정부지원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좀 다른 건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고 복지 사업을 하는 곳이다. 정부 지원금이 없는 곳은 100% 모금활동에 의해 운영된다. 나는 이런 곳들에서 주로 일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 고액 후원자에게, 개인 후원자에게 기부를 요청하는 일이 단체의 존폐를 가르는 일과도 같다. 나는 주로 기업의 고액 후원에 기반한 사업이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인 고액 후원자가 있는 곳에서 일했지만 그것만큼이나 개인 후원자 모집은 필수적이다. 

월 1만 원 정기후원은 소소한 것 같지만 1명이 주는 월 1000만 원보다 1000명이 주는 월 1만 원이 단체를 안정적이고 건강하게 만든다. 한 명의 천만 원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천명의 기부는 누구 한두 명이 나가도 다시 한두 명이 들어오며 단체를 든든히 받쳐주기 때문이다. 정기후원을 신청한 사람은 평균적으로 3년 정도 그 기부를 유지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든 복지 단체들의 바람은 개인 소액 후원자가 많아서 단체를 든든히 받쳐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1명의 월 1만 원 정기후원자를 만든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사회복지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되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 등으로 ‘아, 내가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하니 주변사람들에게도 기부를 요청하면 다들 해줄 거야. 정기후원자 10명쯤이야!’ 하며 호기롭게 주변에 기부를 요청하게 된다. 하지만 금방 알게 된다. 정말 가까운 친구들도 기부 요청은 결국 “돈”의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민감하며 특히, 아무리 소액이라도 고정적으로 지출을 해야 하는 정기후원까지 오는 친구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 단체에 정기후원을 신청하는 사람은 뻔하다. 나. 우리 가족(엄마, 아빠, 언니들), 그리고는 다른 복지단체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다. 우리는 흔히 이를 품앗이라고 부르는데 내 사정을 아는 건 다른 복지단체에 있는 친구들이라서 나는 그 친구 단체에 후원을 하고 그 친구는 우리 단체에 후원을 하는 식이다.  그리하여 사회복지 20년. 나는 수없이 기부를 요청한 사람이자, 수많은 기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기부요청은 단계가 있는데 가장 가벼운 것은 일시 후원이다. 네이버의 해피빈이나 카카오의 같이가치처럼 일시적 기부를 요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하게 있다. 거기에 우리 사업이나 행사, 특정 기부를 요청하는 기부캠페인을 일정 기간 동안 여는 것이다. 그러면 주변에 기부를 요청하기 좀 더 쉬워진다. 일시 기부이고 사용처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대놓고 일시 기부를 요청하는 행사들이 있는데 연말마다 열리는 후원의 밤 등의 행사 티켓을 파는 일이다. 우리끼리는 안다. 후원의 밤 행사 티켓을 준다는 것은 오라는 초대의 의미라기보다는 거기 적힌 티켓 금액만큼의 기부요청이라는 것을. 그런데 그 티켓을 받고 그 의미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아, 나 이 날 시간 안되는데… 이런 얘기를 한다면 그 티켓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괜찮다. 100명에게 기부를 요청하면 5명 정도가 반응을 한다고 하니 나는 지금 95명 중 한 명을 만났을 뿐이다. 

기부 플랫폼에 기부캠페인을 열어놓고 나의 SNS에 이것을 올려 불특정 다수 나의 지인들에게 기부를 요청한다. 그리고는 그 누가 거기에 혹시라도 반응했나 하루에도 몇 번을 그 플랫폼을 확인해 본다. 영 시원찮다 싶으면 단체 톡방에 올린다. 거기서도 시원찮으면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는 개인톡을 보낸다. 개인톡까지 갔다는 것은 정말 절박한 모금이었다는 건데, 개인톡까지 가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기부에 응해준다. 이쯤 되면 이건 내 얼굴 봐서 하는 기부이기 때문에 나중에 밥이라도 사야 한다. 이런 일이 여러 차례 있다 보니 모든 인간관계는 둘로 나뉜다. 기부하는 자와 기부하지 않는 자. 


처음에는 "기부하지 않는 자"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걔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혼자 되씹기도 하고 여기에 답이 없다고?? 혼자 상처받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어떤 타고난 기질처럼 기부에 쉽게 반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당연하게도 돈이 많고 적음과도, 나의 친분 정도와도 별로 상관없다. 

기부하는 자 1 :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함께걷는아이들]은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와 오케스트라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는데, 음악가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음악과 관련된 사업이다 보니 음악가들이 이 사업에 기부를 많이 할 거라 생각해서 음악강사 모임에서 몇 번을 얘기했다. 이런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고. 그런데 정말 그 많은 강사 중 아무도! 거기에 반응하지 않았다. 악기기부 캠페인이라고 중고 악기를 기부하면 수리하여 필요한 아동복지시설에 전달하는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사실 음악가들에게 은근히 기대를 했으나, 아무도! 악기를 기부한 사람이 없었다. 처음엔 좀 의아했으나 그냥 그러려니 혼자 생각하던 즈음, 지휘자가 새로 왔는데 이 분은 우리 단체 일시 후원 캠페인에 거의 매번 기부를 한다. 처음 그 지휘자가 적지 않은 돈을 청소년 캠페인 사업이 후원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나의 마음속 인간 분류의 최상단에 위치하게 되었다. 음악가인데 기부하는 자.  


기부하는 자 2 : 일하면서 만나 친구가 된 그룹이 있는데 다들 비영리단체에서 20년 넘게 일한 내 또래의 친구들이다. 단체 모금 캠페인이 시작되어 내가 속한 여러 단체톡방에 올리다 보면 가장 빛의 속도로 반응하는 방은 바로 이 친구들이다. 20년 넘게 기부를 요청해 본 자들. 그들은 결국 기부하는 자이다. 


기부하는 자 3 : 나의 개인 SNS는 500명 정도의 친구가 있다. 내 친구 삼기의 원칙은 한 번이라도 오프라인으로 만나거나 말을 해본 사람들인데,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주 친한 친구들보다는 주로 일로 만나서 얼굴을 아는 정도의 관계들이 많다. 나는 모금 캠페인을 여기 자주 올리는데 느슨한 관계의 사람들 중 눈팅만 하다가 훅 모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정말 얼마나 반가운지!!! 보통 그런 경우는 우리 캠페인에 정말 공감하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인사겸 개별 메시지를 나누게 되는데 우리 활동에 응원도 되고 그 사람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부하는 자 4 : 한 번은 큰 아들이 유튜브 광고에서 어려운 아이들 사정이 나오며 기부를 요청하길래 정기후원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나도 모르게 “야!! 엄마도 아이들 도와주는 단체에서 일하는데 우리 단체를 후원해야지, 어디 다른 데를 후원하는 거야???”라며 1차원적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가족에게도 제대로 어필을 못한 건가 씁쓸하기도 했지만 대규모 광고로 어렵고 안타까운 사정을 노출하며 후원을 요청하는 방법에는 이길 수가 없다. (이건 뒤에서 다시 다루려고 한다.) 아들은 진심 어이없어하는 나의 반응에 못 이겨 우리 단체에도 후원신청을 해주었다. (본인 용돈에서 나가는 후원이다)


기부하지 않는 자 : 우리 단체에 신문사에서 오래 일한 내 또래의 직원이 연구직으로 입사를 한 적이 있다. 비영리나 복지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뭔가 조직문화 적응이 서로 어려웠는데, 한 번은 하도 재정을 아껴야 된다는 개념이 없길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돈은 기부자들이 낸 기부금이다. 한 달에 1만 원 기부금을 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지 않냐.”라고 물으며 얼굴을 쳐다보니 모르는 얼굴이다. “혹시.. 어디 기부해 본 적이 없으세요?”라고 물으니 없단다. 와. 내 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기부해보지 않은 자를 내가 직접 만나게 되다니!! 그는 결국 우리 조직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다. 


기부자 행동을 연구한 자료들을 보면 기부한 사람이 또 기부를 한단다. 기부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든 모금 메시지를 보고 한 명이라도 더 기부하는 경험을 하여 “기부하는 자”에 속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기부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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