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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Dec 06. 2023

기업 회장님을 만나는 사회복지사

고액을 기부하는 사람들 



내가 사회복지 10년 차가 되었을 때, 나는 한 아동복지재단 면접을 보았다. 잠시 일을 쉬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그때 나의 면접을 보았던 이사님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 회장님의 따님이셨다. 이곳은 대기업 회장님이 개인 돈을 기부하여 만든 곳이었고, 나는 사회복지경력 10년 차에 이곳에 입사하여 현재 12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사님은 수수하고 검소하여 가까이서 대할 때는 재벌가라는 것을 잊게 만드는 분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사회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고 오케스트라 활동을 할 기회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회장님인 아빠를 설득하여 이 재단을 만드셨다고 했다. 이사님은 재단 초기에는 문서 하나하나를 직접 만들고 매일 출근을 할 만큼 열정적이셨다. 미국에 계시든, 한국에 계시든 온갖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마치 상근이사처럼 일하셨고, 자연히 몇 명 안 되는 직원 중 한 명이었던 나는 이사님과 친해졌다. 팀장으로 입사했던 나는 입사 2년 차에 우여곡절을 거쳐 실무책임자인 사무국장으로 승진했다. 사무국장이 되고서는 이사님과 더 가까워졌는데, 외부 활동을 싫어하고 내향적인 이사님은 누구를 만날 때면 어색함을 피하고 싶어서인지 나를 자주 데리고 다니셨다.

 

처음 회장님과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게 된 건 이사님이 데리고 간 식사자리였다. 회장님 역시 이사님처럼 매우 내향적인 분으로 대외적인 행사 자리에 거의 나타나지 않으신다고 한다. 그 기업에 수년을 다닌 임직원 중에도 회장님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외부에 나타나지 않는 회장님으로 유명했다. 우리 재단에서 일 년에 한 번 아이들 연주회를 열 때 회장님이 오시고는 했는데, 그 회사에 “회장님 얼굴을 보려면 그 재단 연주회를 가면 된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그래서 실제로 그 회사 직원들이 많이 왔다) 그런 회장님과 마주 앉아 식사라니!!  

이사님은 여느 때처럼 재단에 나오셔서 직원처럼 일하고 계셨고, 마침 회장님께 전화가 와서 회장님도 재단으로 오셔서 잠시 담소를 나누시더니 밥 먹으러 가신다고 나가시면서, 같이 가자며 나를 데리고 가셨다.(오 마이 갓.) 마음의 준비도, 상황파악도 안 되는 상태로 나는 직원들과 점심 먹으러 가듯 회장님과 회장님 친구분, 이사님과 넷이서 밥을 먹게 되었다. 그때 나눈 대화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  드라마에 나오는 회장들의 집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집이냐? (회장님의 질문이다.) 

-  왜 드라마에서는 회장이 차에서 내릴 때 직원들이 일이나 하지 줄 서서 기다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웃겨서, “하하 그럼 회장님은 차에서 혼자 내리세요?”라고 물으니 “나는 우리 직원들 월급을 많이 주거든. 다들 일해야 해.”라고 하셨다.  

동석하신 친구분과 고등학교 동창이셨는데, 얘기가 어린 시절로 넘어가더니, 

“내가 재동초등학교를 나왔거든” 

하시는 게 아닌가!!! 

“회장님! 저도 재동초등학교 나왔어요!”

순간 회장님이 3초간 나를 빠안히 쳐다보시는데, 그때 나는 느꼈다. 나란 존재가 회장님 머릿속에 입력되고 있음을.  (아, 한국사회의 학연 지연이여!)


그 이후 몇 번의 본격적인 사업 제안 프레젠테이션 자리가 있었다. 내가 대기업 팀장도 임원도 아닌, 회장님에게 사업을 직접 브리핑하기를 4-5차례 했는데 이건 매우 매우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까 싶다. 그 자리는 마치 앞의 식사자리처럼 별거 아닌 듯 만들어졌는데, 어느 날 이사님이 재단에 오셔서, 

“아빠가(회장님) 청소년 쪽 지원을 좀 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뭘 제안하면 좋을지 고민이에요.” 

“아, 그럼 이사님 제가 자료를 좀 준비해 드릴까요?” 

“그럴래요?” 로 가볍게 시작된다. 

현장 얘기도 듣고 그동안 노하우를 총동원하여 제안서를 열심히 만들어서 이사님께 설명을 한참 했더니, 이사님이 다 들으시고

“이거… 국장님이 우리 아빠한테 설명하세요. 제가 같이 갈게요.” (오 마이 갓)

처음 회장실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가던 날의 긴장이야 말해 뭐 하랴.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 나와 동행하는 이사님은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 당연히 전혀 긴장하지 않았고, 그런 온도차는 묘하게 나의 온도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단 세 명이었지만 엄청나게 큰 회의실, 엄청나게 크고 넓은 테이블 저 위 상석에 회장님이 앉으셨다. 저 멀리 내 맞은편 이사님이 앉으시고 회장님 우측이지만 아주 멀리 내가 앉았다. 준비해 간 자료를 발표? 설명? 했다. 몇 가지를 물으시더니, 

“이거 거리에 있는 청소년들 돕는다고 하다가 사고 나서 시끄러워지면 안 하니만 못하다. 그건 유국장이 책임질 건가?”

고지식한 나는 ‘책임진다는 게 뭐지?’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센스 있는 이사님 재빠르게 답하신다. 

“아휴, 아빠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책임질게요” 

“그럼 함 해봐라.” 

그렇게 청소년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거리 청소년들의 일자리 지원, 주거 지원, 위기 지원.. 이후 몇 번의 브리핑 자리가 더 있었고, 나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회장님을 대면하다 보니 어느새 불편하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회장님은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셔서 어느새 나는 회장님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자료를 설명하거나 옆에 붙어 앉아 손으로 자료를 가리키며 설명하곤 했다. 


사람들은 부자가 기부를 하면 흔히 색안경을 끼고 많이 본다. 특히 대기업 오너들의 기부는 묘하게 엄청난 금액에도 불구하고 칭송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 기부 의도가 순수하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혹은 세금을 빼돌리려고 등등

나는 이사님과 회장님 외에도 몇몇의 고액 후원자를 만나본 적이 있다. 그분들은 대중들의 오해처럼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기부를 생각하기보다 순수한 기부가 목적인 분들이었다. 메시지는 너무 명확하다.  “내가 돈이 많은데, 의미 있게 쓰고 싶다!” 는 것. 회장님은 이런 흔한 오해들이 싫어 본인의 기부를 아예 알리지도, 전혀 오픈하지도 않으셨다. 물론 이 분들은 사업가인지라 효율적 효과적 기부가 무엇인지, 기부도 하고 세금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항상 같이 생각한다. 

회장님이 한 번은 땅을 기부해 주셨는데, 자그마치 70년대 사놓았던 시골 어디의 땅이 도로가 나면서 도로공사에 팔리게 된 것이다. 40년이 넘은 땅을 팔게 되었으니 값이 엄청나게 올랐을 거고 세금으로 내는 비용이 어마어마했나 보다. 그리하여 ‘세금으로 내는 거보다 재단에서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게 낫겠다.’며 기부된 것이다.  회장님(개인)이 도로공사에 팔면 양도세가 어마어마하지만 우리(복지재단)가 그 땅을 기부받아 도로공사에 팔면 우리는 양도세를 내지 않고 그대로 그 기부금을 사업비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혹자는 아, 부자들은 다 세금혜택 받으려고, 세금 피하려고 기부하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그건 정말 모르는 소리다. 내가 회장님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자. 내 10억짜리 땅을 팔면서 50% 세금인 5억을 내고 나에게 남는 돈이 5억인 경우와, 내 10억짜리 땅을 재단에 기부하여 재단에서 10억으로 기부사업을 하고 나에게 떨어지는 돈 0원인 경우.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세금은 피하지만 나에게 남는 돈도 없는 것이 기부다. 


나는 사회복지를 하며 자신이 번 돈을 의미 있게 쓰고 싶고 그 방법을 찾고 싶은 고액 기부자들을 많이 봤다. 참 희한한 것은 그들의 기부가 행위만큼 칭찬받고 존경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부 선진국에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면 그건 부자들만의 몫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기부하려는 부자들을 독려하는 문화와 인식, 장려하는 법적인 제도가 더 먼저인데 우리나라는 그 부분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한 번은 어떤 회장님 사모님께 그림을 기부받은 적이 있다. 그림? 그림은 도대체 얼마지? 했는데 자그마치 7억짜리 그림이었다. 당신이 아무리 부자인들 7억짜리 그림과 기부금 영수증을 바꿀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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