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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Jan 04. 2024

비영리단체의 빈익빈 부익부

비영리, 모금단체, 복지단체.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공익을 추구하는 윤리적인 사람들이 모여, 선한 마음을 가지고 공공의 선 혹은 약자를 위해 일하면서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사회를 변화시키는 활동을 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모금 비리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아, 내가 선의를 가지고 후원한 이 기부금이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쓰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혹은 믿을 수 없으니 기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는 당연하게도 비영리단체들에게 이를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로 다가왔다.  

이전에는 비영리단체가 가진 목적에 맞게 활동을 잘하는지 여부만 중요했다면, 이제는 기부금이 투명하게 잘 사용되고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비영리단체 입장에서는 열악한 재정에 “당연히 투명하게 쓰고 있지! 개인 사욕을 채우는 것도 아니고 이윤을 남기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그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거냐. 가 중요해진 것이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비영리단체라고 해도 미션이 무엇인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정부 지원금을 받는지 여부, 규모 등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이를 자세히 모르는 기부자의 입장에서 A라는 단체와 B라는 단체가 있는데 그중 어디에 후원할 지를 결정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공익법인 회계기준”을 만들고 “국세청 공시”를 의무화한 것 등이 그것이다. 

"공익법인 회계기준"이란, 공익법인마다 모두 관할 부처와 설립근거법이 다른데 이와 상관없이 동일한 기준으로 회계를 보고하도록 하면 사람들이 다양한 공익법인들의 비용이 어떻게 쓰이는지 구분해 보기 쉽지 않겠냐, 정부가 관리하기 더 쉽지 않겠냐 하는 취지로 2018년부터 시작되었다. 그 보고를 하는 곳을 "국세청" 사이트로 정하여 국세청 홈택스에 들어가면 공익법인 관련 회계와 재정을 모두 일정 서식에 맞춰 올리고 누구든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일단 공익법인 회계기준은 복식부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현장의 많은 기관들이 단식부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복식부기에 익숙지 않고 이를 담당할 담당자가 없어 관련 정보나 교육에 거의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2018년 공익법인 회계기준이 적용되고 나서도 아직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단체들도 많다. 비영리 단체에는 5인 이하의 소규모 단체들이 많은데 그런 단체는 보통 회계나 행정을 담당하는 별도의 담당자가 없이 여러 가지 중에 회계 파트도 맡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공시사이트는 양식이 여러 가지에 복잡하여 후원자들이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정보를 구분해 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담당자들 역시 매번 이 양식에 포함되는 비용과 포함되지 않는 비용, 작성 방법들을 찾아 헤매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이를 담당하는 지방 국세청도 이 업무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업무 중 비영리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대부분 잘 모르거나 담당자마다 다른 답을 주기가 일쑤이다. 

다양한 단체의 특성들을 동일한 양식에 맞춰 넣다 보니 단체 특성에 따라서 어떤 곳은 그 양식에 맞춰서 작성하고 보면 활동이 무엇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공익법인 회계기준에는 "사업수행비용"을 분배/인력/시설/기타로 나누어 작성하도록 되어있는데, 재정의 규모가 작아 분배사업이 없이 캠페인 활동이나 정책제안, 연구 활동만 하는 곳들은 인력, 시설을 제외한 모든 사업비가 "기타"로 구분되는 것이다. 한 예로 환경단체 중 나무를 심는 곳은 분배비용이 전혀 없이 나무 심는 비용 수억 원이 기타 비용에 포함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정보가 이 단체의 활동과 투명성을 증명해 주기 어려운 한계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은 공익법인 회계기준이 적용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현장도, 관리부처도 적응 중인 상태이다. 규모가 크고 재정이 많은 대형 비영리단체들은 전문회계사와 수많은 담당자를 두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반면, 역사가 짧고 규모가 작은 단체들은 아직도 이러한 정보에서 소외된 채 본인들이 뭘 안(못)하고 있는 지조차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대형 단체들은 후원자들의 이러한 투명성 요구에 맞춰 적극적으로 후원자들에게 자체적인 재정 리뷰를 진행한다. 다각도로 본인의 단체들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줄어든 기부금은 대형단체로 몰리게 되는 빈인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복잡하고 잘 모르겠는데, 믿을 수는 없으니 그냥 이름 들어 본 곳, 큰 곳에 하자! 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영리단체란 무엇일까? 

정부가 할 수 없는 일, 영리에서 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사각지대를 메우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함께 내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창의적 도전을 하는 것이 비영리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당연히도 비영리단체는 작고, 신생이고, 다양한 조직이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 요소이다. 그렇지 않은 대형 단체들만 살아남은 비영리 생태계라는 것은 이미 다양성과 실험정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작은 단체들이 적은 인력으로도 이러한 법적 규정들을 잘 맞추어서 회계처리를 하고, 정보 공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인 지원이 절실한 이유이다. 뿐만 아니라 기부자가 관심 있는 이슈에 따라 작은 단체의 활동도 소개받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접근의 용이성 등이 함께 가지 않는다면 지금의 환경에서 결국 대형 단체들만 남는 비영리 생태계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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