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품 모집의 활성화와 장벽 사이
어금니 아빠 사건이 준 충격은 비영리단체 모금활동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나 마찬가지다. 많은 언론을 통해 불치병인 아빠와 동일한 병을 앓는 딸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된 것이 2005년. 어금니 아빠에 의한 여중생 살인사건이 있었던 2017년까지 12년 동안 12억의 후원금이 모였다고 한다. 어금니 아빠는 적극적으로 본인의 상황을 직접 언론이나 매체에 노출하며 모금활동을 해왔으며, 모금된 12억 중 10억을 치료비나 생활비가 아닌 외제차를 사는 등의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단순히 후원금을 잘못 사용한 문제를 넘어 파렴치한 범죄자가 도와주고 싶은 안타까운 상황의 부녀로 둔갑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안타까운 상황의 이웃을 보면서 그 진실성을 의심하게 되는 불신의 씨앗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심었을 것이다.
이때 어금니 아빠는 수많은 죄목에 의해 무기징역을 받았으며, 그중 하나가 "기부금품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위반이었다. 모든 비영리단체들은 후원금에 대해서 그것이 어떻게 쓰였는지 증빙하도록 되어 있다. 모든 지출에는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영수증 처리가 필수적이며 이러한 재정은 관할부처에 매년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이 받는 후원금은 다르다. 후원금을 받고 나면 그것을 어떻게 썼는지를 보고할 의무가 개인에게는 없다. 이를 악용한 것이 어금니 아빠 같은 사건이다. 이 후원금이 모두 단체를 통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딸의 의료비로 단체가 모금을 했다면, 그것이 의료비로 쓰였는지를 확인하도록 지출되기 때문에 병원으로 직접 지급을 하든지, 영수증을 받게 되어 있다. 이러한 증빙시스템이 때론 유연하지 못하고 거추장스러운 행정처리가 되기도 하지만 10억을 유용하는 이런 어이없는 사태를 막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금니 아빠 사건으로 오히려 모금하는 비영리단체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내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믿지 못하겠다"며 지갑을 닫는 행위에 비영리단체들의 모금이 타격을 받은 것이다.
모금단체에서 일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사람들은 공식적인 비영리단체가 하는 모금행위보다 어떠한 개인이 하는 모금행위에 훨씬 더 쉽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즉, "***단체에서 할머니와 둘이 사는 00 아이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보다 "제가 아는 00을 도우려고 하는데요, 그 아이는 할머니와 둘이 살고 도움이 필요해요."라며 후원을 요청할 때 훨씬 더 지갑을 잘 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일하고 정부의 허가를 받아 관리를 받고 있는 단체보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위에서 설명한 그러한 이유에서 그 돈을 어떻게 쓰든지 모금한 개인에게만 온전히 맡겨져 있다. 이러한 개인의 모금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있는데 바로 [기부금품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이다.(이하 기부금품모집법)
기부금품모집법은 1951년에 제정된 유서 깊은 법이다. 이때 당시의 법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법은 기부금품모집을 금지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개인이나 민간단체들이 후원금을 걷어서 정부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법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수많은 시간을 거쳐 법의 이름도 바뀌고 전면 개정도 몇 차례 되었지만 여전히 이 법은 반정부 활동에 대한 모금을 허용하지 않고, 이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사실상 기부금품 모집 규제로 활용된 것이다.
이 법에 의하면 천만 원 이상의 돈이나 물품을 공개적으로 모집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미리 이에 대한 계획을 제출하여 모금활동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하며, 모금이 완료된 이후에 모금 완료 보고, 모금한 금액을 모두 사용한 이후에 사용 보고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다.
법인격인 비영리단체들은 이미 모든 기부금 수입과 지출에 대해 관할부처에 계획, 보고 등을 의무화하고 있고 국세청에 공시하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또다시 기부금품모집법을 관할하는 행안부(혹은 관할 지자체)에 계획과 보고를 하는 것은 매우 이중적인 일이라 당연히 제외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회원들의 회비는 제외이지만 후원금은 제외가 아닌 묘한 기준에 의해서 그 어떤 비영리단체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고자 하면 문제가 되는 회색지대에 빠져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많은 비영리단체들은 기부금품모집법을 모른 채 살아왔다. 기부금품모집법을 담당하는 부서도 비영리단체들이 이미 정부의 관리시스템 안에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고, 제외인지 해당인지 애매한 상태에서 단체들은 모른 채 살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근데 이 법의 활용도가 다른 곳에서 나타났으니, 어떤 비영리단체든 문제 삼고 싶을 때 이 법으로 걸면 무조건 걸린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영향력을 한창 발휘하던 비영리단체들의 활동에 제동을 걸고 싶을 때 이 법으로 문제 삼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일단 회색지대에서 흰색인지(합법), 흑색인지(불법) 가리느라 그 단체를 한껏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유에서건) 특정 단체에 안 좋은 마음을 품은 고발자, 특정 단체를 깎아내리고 싶은 국회의원 등 "기부금품모집법 위반이 의심된다"는 말은 어디에 끼워도 끼워지는 귀(코)걸이?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이 법에 걸려 고생한 단체 혹은 아는 단체만 아는 법으로 있던 기부금품모집법이 모든 단체들이 아는 유명한 법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20년 정의연 논란으로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이 한창 정치권의 도마에 올랐을 때, 국회에서, 언론에서 모든 비영리단체들이 비리를 저지른 양 떠들고 정부는 뭘 하고 있었냐고 채근할 때마다 애꿎은 행안부 장관이 불려 오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영리단체라는 것은 그 사업에 따라서 관할부처가 모두 다르다. (복지부, 교육부, 문체부, 통일부 등) 그러다 보니 이를 싸잡아 모든 장관을 부를 수는 없어 애매하게 기부금품모집법을 담당하는 행안부가 불려 가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당연히 행안부장관은 본인이 관할하는 기부금품모집법을 더 강화하겠다고 답변을 한다. 하고자 하는 목적과 이를 이루고자 하는 방법이 빗나가는 순간이다. 그때부터 기부금품모집법은 점차 강화된다. 수만 개의 비영리단체 중 기부금품모집 등록을 하는 단체가 300여 개에 불과했는데, 이를 더 늘리기 위한 노력(혹은 협박)이 강화된다. 국세청에 모두 공시를 하고 있음에도 행안부가 별도의 기부금품공시 사이트를 열어서 거기에도 관련 자료들을 올리도록 하는 이중적 업무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법이 관심을 받자 비영리단체들은 "우리가 왜 이중적 보고를 해야 하냐, 우리는 빼고 개인 기부자만 관리해라."라고 얘기하지만 이미 이 법을 강화하기로 마음먹은(요구받은) 행안부는 비영리단체의 기부 활성화가 아닌, 기부금품모집법 활성화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후로는 비영리단체의 비리문제만 터지면 애매한 기부금품모집법이 불려 나가게 되니, 이 번지수가 잘못된 규제는 현재까지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시민들의 신뢰를 잃은 비영리단체는 기부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기부금품모집법이라는 허들에 걸려있다. 어금니 아빠 사건에서 보듯이 개인의 무분별한 모금활동은 규제의 대상이 맞다. 하지만 이 법이 비영리단체의 옥상옥 규제가 되어 기부문화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걸림돌을 제거하기는커녕 견고한 벽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가 모든 비영리단체가 안고 있는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