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우편물
국세청은 세금 관련 고지를 등기우편으로 보낸다. 정부기관들은 보통 대표메일로 공문을 보내거나 메일 안내를 보내고 통화로 확인하는 등의 방법을 쓰는데 국세청은 메일도 전화도 없이 등기 우편이 날아온다.
앞에서 쓴 것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국세청과 가까워지기도 하고 국세청 담당 주무관이 내 핸드폰으로 다이렉트 통화를 하는 사이까지 되었지만 그것과 우리 단체의 세금 관련과는 다른 일이다. 2020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우편물이 국세청 등기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는데, 가산세 통지가 날아온 것이다. 비영리단체가 가산세라니? 세금이 면제인데 무슨 가산세란 말인가! 가산세가 무엇인가? 부과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거나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범칙금 같이 내는 세금이다. 본 세금으로 냈으면 100만 원으로 끝날 일이 1000만 원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바로 가산세다.
가산세 항목은 이랬다.
공익법인들이 지켜야 할 세무 관련 사항이 잘 정리되어 있어 내가 매년 소중히 다운로드하여 숙지하는 [공익법인 세무안내]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지켜야 할 10대 의무사항이 있다. 이 의무사항을 지키지 못할 경우 각 항목마다 가산세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이 항목 중 어떤 것을 놓쳤을 리가 없는데? 하며 열어보았더니 10년 전 자료에 대한 가산세가 날아온 것이다!! 내가 일하는 단체는 2010년에 설립되었고, 나는 2011년 말에 입사했는데, 2020년에 10년 전의 자료에 대한 가산세를 부과받은 것이다. 자료 보존 의무가 10년이니 의무기한 마지막에 고지서를 받은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걸까?)
위의 의무 사항 중 1번과 7번의 위반이 지적되었다.
1번은 출연재산, 즉 기부금이 어떻게 들어왔고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8가지 세부양식에 맞춰 보고하는 것인데 지금은 국세청 사이트에 4월까지 공시하면 된다. (앞에서 몇 번 얘기한 국세청 공시 중 한 가지에 해당한다.) 2010년 당시는 공시 사이트가 없어서 직접 관할 세무서에 가서 접수하거나 등기우편으로 제출을 했었다. 이 업무는 당시 세무법인에 위탁하여 진행하고 있어서 제출을 안 했을 리가 없는데 우편물이다 보니 어디선가 누락이 된 것 같다. 10년 전 그 세무법인을 수소문하여 찾아본다.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안 좋게 헤어졌던 그 세무법인을 다시 찾아냈다. (비영리를 잘 모르던 세무법인이라 안 좋게 마무리한 업체였다.) 놀랍게도 우리를 담당했던 그 과장님이 아직도 일하고 있다. 심지어(당연하게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어 사정을 얘기했더니 잠시 기다려보라며 본인이 그때 등기우편 접수를 했을 테니 서류를 찾아보겠다고 한다. 얼마 지나 보내온 서류는 놀랍게도 10년 전 본인의 다이어리에 수기로 적힌 등기 접수 번호다. 우리 단체명과 등기접수번호와 날짜가 적혀있다. 업무 다이어리란 것은 검찰조사 때나 유용하게 사용되는 증거물인 줄 알았더니 이럴 때도 사용되다니! 정말 직장인의 메모와 보관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10년간 보관된 작은 메모로 천만 원에 가까운 가산세가 일단 우릴 피해 갔다.
7번은 전용계좌 개설 사용의 의무인데, 모든 공익법인들은 후원금을 받고 지출하는 통장을 국세청에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전용계좌"라고 부르고 등록되지 않은 통장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이 법은 2008년 만들어져 시행되었고, 초기에는 많은 공익법인들이 전용계좌로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단체도 설립 초기에 전용계좌를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2010년, 2011년 보낸 후에 2012년에 이 사실을 알고 계좌를 등록했으니 이미 지나간 2010년과 2011년의 등록되지 않은 계좌로 들어오고 나간 모든 금액이 가산세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어쩌랴. 가산세 금액을 카운트하는 방법도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통장에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을 모두 더한 금액의 몇%로 가산세가 책정된다. 즉, 2010년도에는 단체가 만들어질 때라 기본재산 10억이 입금되었고, 사업비가 10여 억 입금되었다가 각종 사업으로 지출되었으니 그것만 해도 30억의 돈이 카운트되는 식이다. 통장의 기록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철렁 내려앉는다. 서울 국세청이 담당부서였는데 담당자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10년 전 일로 이럴 수가 있냐,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단체가 가산세 낼 돈이 어디 있냐, 적게 내는 방법을 알려달라 죽는소리를 해본다. 세무법인 과장님이 10년 전 다이어리를 꺼냈듯, 나도 내 전임 국장님이 남기고 간 외장하드를 꺼내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10년 전 수입과 지출의 내역을 탈탈 털어본다. 그렇게 노력해도 결국 가산세 폭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가산세도 가산세지만 그 과정에 마음고생이 또 얼마나 심했는지... 불면의 날들에 탓해야 할 대상이 없는 한탄만 떠도는 시간들이었다.
요즘도 가끔 외부 회의나 타 단체에서 아직도 전용계좌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단체를 만나게 된다. 2023년 현재, 아직도요??? 일단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죽 흐른다. "아직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국세청 등기받지 않음) 괜히 이제서 등록했다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다. 무슨 말인가. 하루라도 빨리 등록을 하라고 알려준다. 더 이상의 엄포는 놓지 않는다. 그냥 표정으로 말해준다. 그건 큰일 날 일이라는 것을. 세부적 사항을 알게 되면 해결할 수도 없는 채 그 사람의 불면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어쩌랴. 차라리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기를, 국세청이 들여다보지 않기를 바랄 뿐.
그러니 털어서 먼지 안 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같다.(10년 동안 먼지가 없어야 한다) 그 당시 서울국세청 담당자가 "제가 지금 10가지 항목 10년 치 다 보고 있습니다." 라며 나에게 추가 엄포를 놓았는데, 더 이상의 등기우편이 오지 않은 것을 보니 내 임기 이후는 문제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최근 사무국장 인수인계를 하며 후임 국장에게 2020년까지는 한번 먼지 탈탈 털었으니 앞으로 10년은 조용하지 않을까? 아, 이것도 그저 바람일 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