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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Jan 24. 2024

비영리단체 사무국장이 국세청과 이렇게 친해질 줄이야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한다는 것은

사람들은 살면서 국세청을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아마 당신이 부자가 아니고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그다지 국세청을 상대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부자는 당연히 아니고 사회복지사도 (당연하게도) 월급 받는 일개 직장인이라서 내가 내는 세금이란 월급에서 공제되는 소득세와 연말정산할 때 국세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제내역을 살펴보는 정도가 국세청과의 접점의 다였다.

2013년 사무국장이 된 첫 해부터 나의 업무가 국세청과 긴밀함을 알려주듯, 세법 관련 이슈가 터졌다. 당시 내가 일하던 재단은 특정 개인 고액 기부자(앞 글에 나오는 회장님)가 내는 후원금이 전체 사업비의 90% 이상으로 매년 10억이 넘는 기부금을 내고 계셨다. 그런데 하필 내가 사무국장이 되던 해에 "조세특례제한법"이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법이 개정이 되면서 고액기부금의 소득 공제한도가 줄어들었고 그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좀 지켜보겠다며 그 해 회장님의 기부금이 보류된 것이다. 기부금의 소득공제액이 줄어들어 타격을 받은 것이 우리 단체뿐은 아닐 터라 안 하던 연대모임에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관련 대응을 하는 단체를 수소문하여 모임에 나가는 일로 나의 사무국장 업무는 시작되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사무국장이 되는 것은 마치 다른 업종에 새롭게 취직하는 것처럼 완전히 다른 업무였다. 일선 사회복지사로, 팀장으로, 다른 여러 직책으로 일했지만 그동안은 일관되게 어려운 현장과 대상을 찾아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진행하고 평가하는 업무였다고 정의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무국장의 업무는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물론 이런 일들을 이제는 다른 직원들이 담당하고 나는 검토하고 결재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 외 나의 본업은 조직의 재정 문제가 없도록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고 행정적 의무사항들을 지키며 외부 리스크를 관리하고 직원의 인사를 담당하여 조직이 문제없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었다. 사회복지를 해오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회계, 재정, 세무, 법률, 인사가 나의 주업이 된 것이다. 


특히 세무 관련 이슈를 잘 다루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는 비영리단체는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하기 때문에 그렇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여러 단체에 기부를 하고 기부금영수증을 받았지만, 그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기부금영수증이 발급되지 않는 단체라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기부금영수증 발급 여부는 단체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한다는 것은 기부금에 해당하는 돈에 세금을 공제해 준다는 것이다. 그게 월 1만 원, 연 12만 원의 소액이라면 공제세금도 얼마 되지 않지만 우리처럼 한 명이 10억을 내는 큰 금액이라면 그 공제액 또한 큰 금액이 되는 것이다. 현금뿐 아니라 부동산이나 주식 등으로 가면 세금 공제 여부가 더 민감하게 다가오게 되는데, 부자일수록 세액 비율이 높기 때문에 부동산을 매매할 때 양도소득세가 수억에 달하는 큰 금액이 된다. 예를 들어 토지를 매매한다고 해보자. 70년도에 1억에 산 토지를 2020년도에 11억에 매매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차액이 10억에 달하는데 거기서 양도소득세 45%(최대세율)를 낸다고 하면 4억 5천의 세금을 내게 된다. 그 토지를 기부하여 비영리단체가 매매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안 낼 수도 있는데(상세한 내용은 여러 가지 정황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무조건 안 내는 건 아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비영리단체 입장에서 보면 11억의 기부금이 온전히 들어온 것이고(이를 일정 기간 안에 목적사업에 맞게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국세청 입장에서 보자면 4억 5천의 세수가 줄어드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비영리단체가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하는 행위는 국세청의 수입을 우리 수입으로 가져오는 효과가 있다. "정부 지원금 한 푼도 안 받는데 왜 이렇게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라는 게 많아?"라는 불만이 나올 때도 있지만 직접적인 지원금은 없어도 세금 공제의 혜택을 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무국장이 된 내가 가장 많이 들여다본 지침서가 있으니 바로, 국세청에서 발간한 "공익법인 세무안내" 책자다. 세무에 대한 기본 지식이 너무 없는지라 읽어도 읽어도 암호처럼 해독이 잘 되지 않아서 보고 또 보고 관련 업무를 할 때마다 다시 본다. 매년 업데이트하여 새로운 책자가 발간되는데, 올해는 뭐가 바뀌었나 소중하게 다운로드하여 다시 정독을 한다. 

비영리단체라고 모두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인격인 경우만 가능하며, 기획재정부의 허가를 받아 발급을 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사업법에 의해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다. 이 권한을 받고 나면 엄청난 의무가 따라오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매년 국세청에 기부금과 관련된 내용을 공시하는 것이다.(특정 사이트에 올려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시다) 더불어 다양한 법에 규제를 받게 되는데 법인세법, 소득세법, 상속세및증여세법, 기부금품모집법, 공익법인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 민법, 사회복지사업법 등이 그것이다. 너무 버라이어티 하여 이 법의 규제들이 마구 혼동되고 어떤 것은 약간 다른 룰이 적용되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우선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혼자서는 그 혼란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길도, 답을 찾을 길도 없으니 믿고 의지할 전문가가 필수적이다. 그 전문가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비영리 세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가진 회계사, 세무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도 아무것도 모르니 상대가 관련 내용을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누구든 나보다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의지했었다. 연차가 지나면서 전문가라고 해도 잘못된 정보를 주는 사람은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진짜 비영리를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만난 사람들이 공익네트워크 우리는 멤버들이다. 대규모 단체는 아니지만 소규모도 아닌 단체들 중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무국장 혹은 운영책임자들과 변호사 등의 전문가 그룹이 모임을 시작한 것이다. 그 첫 모임부터 영광스럽게 참여하게 되었으니, 전문가를 찾아 헤매던 나의 노력을 누군가 알아준 것 같다. 모일 때마다 이 법률이 뭔지, 이건 어떤 법에 의한 규제인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단체는 무엇 때문에 왜 문제가 되었는지 등의 법률해석, 관련사례 등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2018년에 시작된 이 모임은 처음에는 쏟아지는 정보들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머리와 발걸음이 천근만근 걱정이 하나 가득이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마음 편하지 않았을까 모르는 일들이 너무 많고 모든 것이 지뢰밭처럼 리스크로만 다가왔다. 그 혼동의 시간을 지나 우리는 이 흩어진 규제와 법률들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을 하자는데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NPO자가진단체크리스트이다. 회계 세무 외에도 개인정보보호, 저작권, 노동법 등의 비영리단체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과 관련 법률이 담겼다. 나의 사무국장 10년은 [우리는]을 만나지 않았던 5년과 우리는을 만난 이후의 5년으로 나눌 수 있다. 그만큼 그 모임은 나를 성장시켰고, 어려운 일들을 함께 헤쳐나갈 동료를 만들어주었고 의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국세청과 친해지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정의연 논란이 일어났을 때다. 2020년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 논란의 시작은 당사자 할머니의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할머니들에게 들어온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논란은 영수증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며 갑자기 기관의 재정투명성 문제로 번진다. 그 사건이 그렇게까지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은 것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이슈로 활용이 가능해서였다. 윤미향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어도 그렇게 이슈가 확대됐을까? 당사자 할머니가 그런 발언을 했을까? 란 생각이 들지만 어쨌거나 그 일은 언론의 엄청난 집중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모든 단체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지만 그냥 형식적으로만 하던 "국세청 공시"가 세간의 이목을 받게 된다. 국세청에 올려져 있는 정의연의 공시내용을 기자들이 하나하나 문제시하며 기사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우리는] 멤버들은 모두 불안과 공황상태에 빠졌다. 일단 이 논란은 비영리단체에 대한 엄청난 불신을 가져왔고 이는 당연하게 기부금 감소로 돌아올 것이었으며,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국세청 공시를 직접 하는 담당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왜 정의연이 그걸 그렇게밖에 올릴 수 없었는지 담당자들은 이해가 갔다. 그런데 그게 기사에 난걸 보니 우리가 읽어도 오해할만한 것이다. 큰일 났다. 그제야 우리도 국세청 공시의 일정 양식에 다양한 단체를 모두 구겨 넣는다는 것의 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했다. 다들 언론의 불똥이 우리 단체에도 튈까 조심할 때였다. 개별단체로는 나서기 힘들었지만 [우리는]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조심스레 간담회를 열고 국세청 공시의 개선점을 현장기관들과 나눴다. 그때 전문가 외에 현장기관 중 한 곳이 대표 발제를 해야 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내가 속한 조직은 다른 시민단체들에 비해 국세청 공시 양식과 사업이 잘 맞는 편이라서 내가 총대를 메고 발표를 했다. 그날 발제를 해주신 회계사님이 나에게 간곡하게 한 말이 있었는데, 국세청과 비영리단체 간에 너무 소통이 없어서 국세청에서 이런 현장의 어려움을 알 수가 없으니 이 논의된 내용을 꼭 국세청에 전달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이때 [우리는]에서 만든 제안서를 회계사님의 도움을 받아(국세청과 기획재정부 담당자 컨택 포인트를 연결해 주셨다) 전달하게 된다. 국세청에 처음 문서를 받았냐는 확인전화를 할 때는 얼마나 떨리던지, 공연히 우리 단체가 국세청의 주목을 받게 되어 탈탈 털리는 건 아닐까.(털어 먼지 안 나오는 곳이 없다는 말 뜻을 알 것 같았다.) [우리는]에 소속된 단체가 몇 개 안 되는데 괜히 다들 문제 되는 건 아닐까 조용히 있고 싶은 마음과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마음이 공존하던 시간이었다.  

국세청은 처음에는 약간 방어하는듯하며 반응이 없었는데, 놀라운 반전은 그다음 해에 국세청 공시를 보니 우리가 낸 의견이 대폭 반영된 것이다!!! 이후 국세청 담당자는 적극적으로 우리는의 의견을 묻는데, 전문가들과 하는 내부 간담회에 꼭 우리를 초대하여 의견을 듣는다.(이것도 영 부담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매해 국세청 공시가 끝난 4월 이후 현장 의견을 정리하여 국세청에 넘기고 년 1,2회 열리는 내부 간담회에 참석하여 의견을 나누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국세청 입장에서도 등한시하던 공익법인 공시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중소규모 다양한 현장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차에 우리를 만났을 것이다. 


이렇게 기부금을 받는다는 것은 천근의 무게를 견디는 일처럼 느껴진다. 기부금이 많을수록 그 무게감은 더 커진다. (왕관도 아닌 것이 왜 이렇게 무거운 것인가) 주변의 막 시작한 비영리단체들이 기부금영수증 발급을 위해 신청하려고 하면 나는.. 기부금이 좀 더 커진 다음에 하라고 먼저 말린다. 월 100만 원의 기부금을 받으며 감당하기엔 알아야 할 국세청 의무사항 패키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변에 아직도 기부금영수증 발급을 하면서 해맑게 의무사항들을 모르고 지키지도 않고 있는 비영리단체들을 만나게 된다. 규모가 작아 아직 문제 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모르는 사람은 다리 뻗고 자고 아는 사람은 두통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현 정부는 자꾸만 무슨 규제를 더한다고 하니, 규제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몰라서 문제인 경우가 태반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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