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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Feb 07. 2024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일하느냐의 중요성

버스에 남은 사람들

일터의 환경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무엇보다 어떤 동료들과 일하느냐에 달렸다. 일은 모르면 배우면 되고 시간이 가면 익숙해지지만 맞지 않는 동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안 맞고 더 미워지기 때문이다. 많은 직장인들의 퇴사 이유를 보면, 매일 봐야하는 누군가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도 그간 6-7개 직장을 옮긴 이유를 되돌아보면 누군가가(특히 상사) 싫어 그만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 떠돌이 생활 끝에 안착한 곳에서는 내가 인사권을 가진 사무국장이 되었으니 그것이 내가 이곳을 10년 넘게 다닌 이유가 아니겠는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채용이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숙제였지만 결과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고 좌석에 앉혀서 버스의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결국은, 인성!

최근에 파트너 댄스에 푹 빠진 친구가 댄스 파트너를 구하는게 남편 구하는 일보다 어렵다고 하소연을 한다. 키와 실력도 맞아야 하고 서로의 기대나 거리감 조절도 중요하며 스킨쉽이 많아서 은근 맞추기가 힘들다는 얘기 끝에, 

"근데 결국 제일 중요한게 뭔줄 아냐?" "뭔데?" 

"인성이야!" 

싱겁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정말 맞는 말이다. 

동료도 마찬가지다. 10가지 역량을 고르고 다방면의 평가를 하고 까다로운 잣대를 대어보지만, 결국 버스 자리에 착석한 동료들을 보니 모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회복지기관이고 비영리단체라 기본적으로 일반 영리 조직에 비해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겠지만, 당연하게도 다 그런것은 아니다. 비영리조직이란 수익을 창출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조직의 미션에 공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약자를 돕는 일에 마음을 다하여 동의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버스가 가는 방향을 놓고 여기가 맞네 틀리네, 왜 여기로 가야 하냐를 문제삼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현장에 필요한가? 사회를 좀 더 나아지게 하는가?"를 기준에 놓고 나의 업무가 늘어나는 것,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 과정이 복잡해지는 것을 감수하는데 한 마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그 선한 인성이 반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조직에는 매년 짧게는 10주, 길게는 1년을 일하는 인턴들이 있다.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들이다. 당연히 모든 업무가 낯설수 밖에 없는데, 이들이 인턴기간을 마치고 퇴사할 때 모두 동일하게 하는 말이 있다. 

"모든 직원분들이 너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항상 감사했어요." 

"저는 입사 초기에 제 선임인 00 매니저님이 진짜 천사처럼 보였어요. 모든걸 차근차근 친절하게 알려주셔서요." 

나는 인턴과 직접 일할 일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퇴사하며 당사자가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니 거짓말은 아니리라. 매년 이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변하지 않는 우리 동료들의 인성을 생각한다.(인성은 원래 잘 변하지 않는다.)

한번은 잠시 왔다가 버스에서 내린 직원이 있었는데, 밥을 먹으면서 자기가 주차 문제로 이웃과 시비가 붙었는데, 남몰래 그걸 복수한 얘기를 하더란다. 근데 그걸 들은 우리 직원들이 모두 아무도 대답을 안하고 갑자기 분위기가 싸아~ 해진 것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대응이 너무 다른 결이라 다들 놀랐으리라. 그 직원은 결국 얼마 못가 스스로 퇴사했다. 


높은 기대수준

일의 완성도나 깊이를 정하는 건 주변 동료나 조직 분위기에 따라 좌우된다. 조직 내에 일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으면 다같이 그 기대수준을 맞추게 되어 있다. 옆의 동료가 하는 것을 보고 나만 느슨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꼭 누가 그래서라기 보다 서로의 상승작용이 있는데, 실무 책임자인 나의 기대 수준을 다른 동료들이 웃돌 때도 많기 때문이다.(꼭 나때문에 그런건 아니란 말이다.) 내부에 있을 때는 모두 다 그래서 우리가 기준이 높은지 잘 모르다가 타 단체와 비교가 될 때면 바로 알게 된다.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거리 페스티발에 참여했을 때다. 그때 우리는 기부 부스를 하나 받아서 운영했는데, 보통 광화문이나 덕수궁에서 여러 단체가 함께 참여한다. 부스를 오픈하는 날, 10시 오픈 시간에 맞춰 8시부터 열심히 짐을 나르고 세팅을 했다. 마침 비가 왔다. 주최측에서 우천으로 인한 변동 공지가 없고 일기예보 상 오후는 개인다고 하여 우리는 10시에 맞춰 모든 세팅을 완료했다. 세팅을 마치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수많은 부스 중 정시에 세팅을 마친 곳은 우리 부스 뿐이다. 잠시 어안이 벙벙하여 어떻게 된거지? 행사가 취소된건가? 생각하는데 그때부터 하나둘씩 단체들이 세팅을 시작한다. 아마 비로 인한 공지를 기다리다 다들 늦게 준비하는 모양이었다.(우리가 미련한건가?)

가끔 외부단체에 심사를 하러 갈 때가 종종 있다. 지원금을 받을 단체를 선정하는 심사인데, 나는 그런 심사를 갈때마다 놀란다. 놀라는 이유는, 크게는 수억의 금액을 지원하는 심사에서도 기관들이 제출한 신청서만 주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여러 신청서를 다 읽고 서로 비교해보기 위해 계속 이 서류, 저 서류를 들었다 놨다 하며 혼자 비교표를 그리고 메모하기 바쁘다. 우리 조직에서도 지원금 심사를 하는 일이 잦은데, 우리 동료들은 한번도 신청서만 준 적이 없다. 어떤때는 뭐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될만큼 엑셀표에 빼곡이 데이터를 정리한다. 심사자가 신청서를 따로 들쳐보지 않고 그 표만 봐도 다 알수 있게 해놓는다. 세부 사항이 궁금할때만 신청서를 보면 된다. 나는 항상 내부에서 그렇게 심사를 하다 처음으로 외부단체에 심사를 하러 가서 '이게 뭐지?' 당황했다. 하지만 여러군데를 가다보니 대부분이 그렇게 그냥 신청서만 준다. 우리 조직처럼 정리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다른 곳이 이러니 우리도 하지 말자고 할건가? 하지 말래도 할 사람들이다. 


열정에 열심을 얹어

이런 높은 기대수준은 열정과 세트다. 뭘 하나해도 열심히 한다. 작은 하나도 허투루 하는 일이 없이 촘촘하다. 나도 실무 팀장일 때는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행사가 있으면 행사 큐시트(당일 진행표 같은거다)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혼자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했다. 그런데 우리 동료들은 나보다 한 수 위다. 큰 행사가 있을 때 계획서, 스텝 자료 같은거를 열어보면 10장이 넘을 때가 많다. 행사장 외부 도면과 내부 도면이 등장하는건 기본이고 사람별, 시간별, 각종 진행표과 체크리스트가 총망라되어 있다. 담당자가 얼마나 체크하고 체크하고 또 체크했는지가 보여 웃음이 픽 나올 때도 있다. 

우리 단체는 매년 큰 연주회를 연다.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어서 큰 무대에 올리는 정기연주회가 그것이다. 그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연주회가 있다. 그때 연주회 제목이 "보물섬"이었다. 연주곡 레퍼토리와 잘 맞아 잡은 제목이었는데, 기획 회의에서 보물섬과 관련된 온갖 아이디어가 나왔다. 순서지를 보물지도로 만들자. 연주곡마다 보물 지도에 한 곳을 가는 의미로 스티커를 붙이게 하자. 그럼 티켓은 보물섬 승선 티켓으로 하자. 그렇다면 로비 포토존에 보물을 가득 쌓아놓을까? 캐리비언의 해적이 등장하는건 어때? 뭐 이런 내용들이었는데, 우리는 정말 너무 신나서 저 모든걸 실제로 구현했다. 순서지였던 보물지도는 말아야 제맛이라 접지 않고 돌돌 말아 리본으로 묶었고(손이 진짜 많이 갔다.) 스티커를 나눠줘 하나씩 붙이면 스티커 위에 글자가 조합되며 메세지가 뜨는 깨알 재미를 더했다. 그 때 진짜로 나의 남편과 동료 남자친구를 동원해서 캐리비언 해적 분장을 시켰다. 그 모든 과정에 누구도 왜 이걸 이렇게 손가고 귀찮게 하느냔 말이 없었다. 한명의 아이디어에 한명이 더 덧붙여 점점 일이 커졌으나 신나서 깔깔거리며 했고 행사날 아이들이 재밌어하는 모습에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연주회순서지 / 홍보부스의 보물상자 / 잭 스패로우 분장한 남편님과 실제 잭 스패로우 

우리 직원들끼리 하는 내부 행사를 해도 정성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배우는 악기를 우리도 배워보자고 하여 직원들이 모두 악기를 배운적이 있었다. 실력이 너무 늘지 않아 우리끼리 음악회를 할까? 하며 작은 발표회를 가졌는데, 그런 발표회 마저도 대충이 없다. 순서지가 나오고 사회자 마이크가 등장하며 포스터가 붙는다. 우리끼리만 하는데도 금손인 직원들이 뚝딱 뚝딱 뭔가를 만들다보면 어느새 멋있어져있다. 


속도감

다른 요소들은 나보다 동료들의 영향과 서로의 시너지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속도는 나의 영향이 크다. 나는 성격이 급하다. 내가 맡은 일도 빨리 하는 편이고 남에게 맡긴 일도 빨리 궁금해한다. 아, 그 일은 어떻게 됐지? 하고 굉장히 많은 시간이 흐른거 같은데, 보면 이틀이 지나있는 식이다. 과정이 길고 진전이 느린 일이 힘들다. 되든 안되든 빨리 결정이 나는게 좋다. 그러다 보니 긴 논의나 회의는 지양하고 결재도 빨리 빨리 처리해준다. 결재가 빠르니 일의 속도도 자연히 빨라진다. 나와 오래 일해온 동료들인지라 이런 나의 스타일을 잘 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예 잊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이 일하는 동료가 너무 후달리게 된다. 

내가 워낙 일을 빠르게 하다보니 직원들의 속도도 덩달아 빨라진다. 나는 다른 곳에서 일할 때도 내가 샘플을 만들었다. 여러 부서가 작성해야 하는 서류에 내가 속한 부서가 늘 제일 먼저 냈다. 그러면 이렇게 하세요. 하고 내 서류가 샘플이 되는 식이다. 이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나의 오래된 습성이라 어쩔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속도가 빠른 버스인 셈이다. 

그런데 아뿔사. 점점 나이가 들면서 나는 속도가 점점 떨어지는데, 동료들은 점점 더 빨라지니 이제는 내가 그들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회의를 하면 발표하거나 질문하는 사람의 말이 끝나기 전에 무슨 말인지 다 알고 답도 머리속에 이미 나와있는 경우가 많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가 바로 대답을 하니 자연히 발표자의 속도도 빨라진다. 근데 이제는 누군가 발표를 하면 그걸 이해하느라 머리가 마구 돌아가는 도중에 이미 주제가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러면, "잠깐만, 좀 전에 한 말이 뭐였지?" 하며 다시 묻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내가 이제 속도가 느려져서 이해가 잘 안되니 좀 천천히 말해달라고. 

아마 우리 버스에 타지 못한 사람들 중 여럿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한번은 타 단체 대표인 친구가 정부 지원금 공모에 제안서를 내야 하는데, 운영파트에서 기본 서류를 떼놓지 않아서 제안서를 다 작성하고 제출을 못했다고 한다. 서류가 바로 나오는 줄 알고 담당자가 제출날 오전에 갔는데 하루가 걸리는 서류였던 것이다. 애써 써놓은 제안서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너는 이럴때 직원한테 뭐라고 해?"라고 친구가 묻는다. 

잠시 생각한 나의 답변, 

"우린 한번도 그런적이 없어서..." 

사실이다. 나와 오래 함께 일한 운영파트 팀장은 데드라인과 상관없이 요청한 서류를 바로 바로 준비해준다. 그런 제안서를 제출할 때 한번도 데드라인에 닥쳐서 해본적인 없다. 기본적으로 이틀전에는 완성하고 내부 다른 동료들과 같이 검토하고 하루 전에 제출한다. 타 단체들과 함께 작성하는 제안서의 경우, 마감 이틀 전인데 그때서야 이제 쓰려고 한다..하면서 도와달라고 하면 정말 눈이 휘둥그레진다. 왜 빨리 빨리 안하고 이제서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외부 작업 때는 그런일이 잦아 그건 또 그러려니 할수 밖에 없다.     


이런 능력있고 마음까지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속도감 있는 버스의 여행길은 

그 길이 어떠하든 갈만한 길이었다. 

어디를 여행하느냐보다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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