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동행자를 태우는 일과 내리게 하는 일
내가 처음 입사를 했을 때 우리 단체는 직원이 5명이었다. 내가 사무국장이 된 이후로 직원이 가장 많았을 때가 16명이었으니, 직원을 채용하는 일이 거의 매년 있었다. 인사가 만사라는 상투적 말이 사람들의 입에 왜 그렇게 많이 오르내리는지 알 수 있을 만큼 함께 일할 동료들을 뽑는 일은 중요했고 어려웠다.
면접으로 뭘 알아볼 수 있을까
내가 사무국장이 된 시점은, 얼마 안 되던 직원 중 회계와 사업을 같이 맡고 있던 동료 한 명이 퇴사를 선언한 때였다. 그 후임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내 전임 사무국장님도 퇴사하고 내가 그 자리를 맡았기 때문에 5명 중 2명이 나가고 3명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한 명 한 명의 역할도, 공백도 크던 때였다. 채용 공고를 내고 서울의 좋은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싹싹하고 밝게 웃던 면접자를 채용했다. 사무국장이 된 이후 첫 채용이었다. 채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아주 기본적인 내용도 이해를 하지 못하던 그는 여러 가지 실수로 우리를 당황케 했다. 예를 들면 시수별로 급여가 다른 30여 명의 교육 강사 급여를 엑셀 파일에서 이름만! 오름차순으로 정리하여 모든 급여가 뒤죽박죽 지급되게 하는 등의 일이었다. 그런 건 처음이니 실수할 수 있지라고 (꾸역꾸역) 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자동차세 고지서를 나에게 보여주더니 "이걸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서 "어떻게 하긴? 내야지."라고 대답했는데 '낸다'는 게 무슨 말이냐는 듯 해맑게 나를 쳐다보더니 "파일에 꽂아둘까요?"라고 물었다. 동공이 흔들린 건 나였다. 파일에 꽂아두다니, 그걸 왜 파일에 꽂아두냔 말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더는 같이 할 수 없겠구나.
다행히? 당시 우리 계약서에는 형식적으로만 보이던 수습기간 3개월이 있었는데, 나는 그 계약 내용을 다시 상세히 보고 수습기간이 종료되기 한 달 전 그에게 수습기간까지만 해야겠다는 통보를 하였다. 그 통보는 그에게도 힘든 일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일보다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웬만하면 그냥저냥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우리 사무실 직원이라 봐야 달랑 4명에 회계를 담당한 직원이다 보니 아무리 그냥 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사무국장이란 자리는, 결정적으로 악역을 맡아야 하는 일임을 절감하는 시기였다. 문제는 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 이후로도 이러한 시행착오가 계속되었다.
직원은 4명에서 10명까지 늘어났는데, 6명의 채용 성공이 있었지만 그 절반 정도의 실패가 있었다. 수습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직원들이 두 번에 한 번꼴로 있었고 그때마다 공고부터 채용, 수습기간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보다 마음 아픈 것은 그 직원들에게 실패의 경험을 주는 것이었고, 뭘 반성해야 할지 모르겠는 리더인 나의 한계였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면접을 봐도 누가 나은지 판단할 수 없었다. 면접자의 스킬이라는 것이 결국 말하기 기술인 것 같고 그것과 실제 일하는 것, 우리 조직에 적응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되니 면접 때마다 불안했고 우왕좌왕했다.
뼈아픈 실패를 거쳐
주변의 혹자들은 우리 재단에 새로 채용되어 적응하며 일을 잘하고 있는 6명의 직원들을 부러워했다. 실패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옥같이 일을 잘하고 적응한 사람들을 골라내는 과정이었다'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해 봐도 아직도 우리는 채용공고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인사"라는 분야도 전문분야일 텐데 내가 이걸 그냥 이전에 해오던 방식으로만 했던 것이 문제가 아닐까? 면접을 잘 보고 적합한 직원을 뽑는 것도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그걸 그때서야 깨달은 내가 너무 한심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인사 채용과 관련된 서적을 찾아 읽고 주변의 인사 채용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을 받았다. 그러면서 우리 채용 과정에 보완할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조직이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면접을 보면서 그때그때 온 면접자 중에 제일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뽑았다. 때론 발랄하고 에너지 있어서 뽑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솔직해서 뽑았다. 당시 면접을 함께 보던 두 명의 팀장과 국장이던 나의 개인적인 선호가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다.
우리 조직에서 일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우리는 어떤 것을 갖춘 사람들인지 직원들과 워크숍을 통해 필요한 역량을 뽑아보았다. 10명 정도의 직원들이 뽑은 역량이 신기할 정도로 잘 수렴됐다.* 우린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있고, 그런 역량을 필요로 하는 조직이라는 것이 암묵적으로가 아니라 문서적으로 나타났다. 그 역량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기술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 역량 항목을 기본으로 각 사업팀마다 어떤 역량이 더 필요한지 업무별로 구분했다. 그 역량표는 그 이후 직원을 평가할 때, 면접을 볼 때 기준표로 쓰였다. 아무리 좋은 역량을 가졌어도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업무에 필요한 역량과 맞지 않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어떤 때는 너무 아까운(뽑고 싶은) 면접자가 왔는데도 뽑는 자리와 맞지 않아 떨어뜨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 면접자에게 너무 알려주고 싶다. 비록 이 자리에는 떨어졌지만 당신은 너무 훌륭한 인재라고. (그러니 면접에 떨어진 것이 절대적인 실패가 아니라 맞지 않는 곳이라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면접관이 문제다.
자문해 주신 분이 이런 말을 한다. 조직의 리더급이라고 해서 모두 면접관으로 적합한 것은 아니다. 면접관도 교육받고 제대로 면접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개인적 궁금함을 물어보거나 목표 없는 질문을 하지 말고 알아보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물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보니 가끔 면접을 하다가 면접자가 자신의 개인사를 얘기하면서 울거나;; 너무 긴장하여 말을 제대로 못한 경우들이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면접관인 나도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그건 아마도 질문이 과도했거나 적절하지 못했던지, 너무 긴장되는 분위기를 조성한 문제였을 거라는 반성이 들었다. 쎈캐*를 가진 팀장들을 면접관에서 빼고 친절함과 편안함을 탑재한 기획경영팀 매니저에게 진행을 맡겼다. 기본적 역량을 알아볼 질문을 하는 1차 면접과 해당 업무 수행능력을 중심으로 담당팀에서 묻는 2차 면접으로 재구성했다.
우리 조직도 면접자들에게 잘 보이자!
그 당시 우리 조직은 생긴 지 10년도 안된 한마디로 듣보잡 단체이다. 사회복지법인인지라 사회복지사들이 원서를 넣지만 이름만 들어도 아는 큰 단체도(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등) 아니고 정부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지도 않아서 한마디로 뭘 보고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 단체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이런 조건의 사람을 뽑는다고 공고를 올리면 100통은 거뜬히 넘는 서류들이 들어왔다. 그만큼 구직하는 사회복지사들이 많은 것이리라. 그렇지만 그 수많은 서류들 중에 우리에게 딱 맞는 한 사람을 고르는 일이 그렇게 어려웠으니, 우리는 채용공고를 더 섬세히 손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우리 조직을 엄청 어필한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곳이니, 우린 이런 단체고 이런 장점이 있어요. 우리랑 일하면 이런 게 좋아요. 구직자들이 읽을 때 혹하도록 꼬시는 멘트를 잔뜩 넣는다.(물론 다 진짜다.) 심지어 나중에는 화기애애한 직원 단체 사진도 함께 올린다. 백번의 말보다 하나의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더 클 것이라 생각하며.
예를 들면 이런 문구다.
우리 조직에는 있다. ① 일에 대한 열정과 재미 ② 교육(배움) 권장과 지원 ③ 직원각자의 캐릭터
우리 조직에는 없다. ① 눈치 보는 야근 ② 폭언과 인격무시 ③ 무리한 술자리
정말로 그 이후로는 훨씬 더 좋은 이력서가 많이 들어왔으니 훌륭한 인재들이 우리 단체를 패싱 하지 않고 눈여겨봐준 것이다. 면접을 온 사람에게도 우리는 1차, 2차 두 번의 면접을 보기 때문에 2차 면접 때는 약간의 교통비를 지급하고 떨어지더라도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실제로 우리 단체에서 면접 보고 떨어진 후 더 좋은(?) 단체에 취직하여 우리와 파트너로 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면접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맞고 안맞고의 문제다.)
조직이란 버스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
위의 인사 채용 정비를 했다고 해서 면접으로 적임자를 알아볼 수 있게 된 건 아니다. 역시나 한계가 있지만 훨씬 더 나아졌고 채용이 안착이 되었다. 그 이후로 우린 더 이상 채용공고가 나지 않는다. 내가 사무국장이 되면서 우리 조직에 들어온 동료들이 이제 반 이상이 10년 차가 되어간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라면 나만 제대로 하면 되지만, 여럿이 함께 일하는 조직이라면 조직원들이 모두 함께 손발을 잘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조직의 리더는 자기가 일을 잘하는 것보다 멤버를 제대로 구성하고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동료 자체가 환경이다. 손발이 잘 맞는 사람들이 조직에 남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가 되도록 하는 일, 옆의 동료를 보고 나도 더 힘내야겠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일, 그래서 서로를 신뢰하는 문화가 조직 전반에 깔리도록 하는 일. 그건 다른 게 아니라 누구를 태우고 누구를 내리게 할 것이냐로 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란 말이 이렇게 수많은 리더들의 공감을 얻게 된 것이리라.
*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오픈해 보자면 역량은 기본역량과 핵심역량으로 구분되고 기본역량은 o, x로 평가하여 x가 2개 이상이면 자격미달이다. 기본역량은 열정, 정직(솔직함), 성실, 인성, 배려, 적응력, 속도 7가지이다. 핵심역량으로 직원 평가나 채용기준을 삼는데 60점이 공통역량이고 40점은 업무별 역량이다. 공통역량은 의사소통능력, 이해력, 판단력, 문제해결능력, 주도성, 책임감이다. 업무별 역량은 팀마다 다르지만 기획과 행정력, 사업운영능력, 협업능력 등이다. 너무 뻔하다고? 뻔한 것도 정리해 기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작동하게 된다.
* 쎈 캐릭터란, 우선 나를 비롯 2명의 팀장이 모두 성격도 급하고 에너지도 높고 조직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가 각별하다 보니 면접장에서 자기도 모르게 "내가 너를 알아보고야 말겠다"는 레이저와 에너지를 뿜어댔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면접장에 들어와서 면접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울음을 터트리는 면접자가 왜 생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