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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Feb 17. 2024

나는 어떤 리더인가

T발 C인 리더

무릇 가장 큰 교훈을 주는 것은 나쁜 케이스를 경험하며 "아, 나는 정말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굳게 마음먹는 것이니 그건 뼈에 새겨지는 교훈 같다. 나 같은 경우, 그중 1번을 꼽자면 감정적인 리더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저기압이거나 고기압이 되는 리더는 동료들을 눈치 보게 만든다. 나는 유난히 그런 상사들을 많이 경험했는데, 아침에 직원들끼리 메신저로 '오늘자 대표님 날씨'를 공유한다. 대표님이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알게 되는 날씨는 예보도 불가능하다. 그 공기를 가장 먼저 알게 되는 공간에서 '오늘은 먹구름' '오늘은 맑음'을 알려준다. 중요 결재가 있는 날은 꼭 날씨를 확인해야 한다. 심지어 한때는 너무 오래 안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 중간 리더급에서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 대표님이 갱년기를 맞아 몸이 안 좋은 거 아니냐, 대표님이 간에 열이 많다는데 그래서 자꾸 화를 내는 거 아니냐, 우리가 차라리 한약을 해드리는 게 어떠냐. 이런 리더와 일하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어 혼란스럽다.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실컷 직원들의 의견을 묻고 열띤 토론 후 결정한 내용을 아무런 설명이나 이유 없이 번복하는 경우다. 한 번은 금액이 큰 제안서를 쓰는 일이었다. 그 사업이 선정되면 변화가 많았던 일이라 관련 실무 책임자들이 모두 모여 1박 2일의 열띤 토론 끝에 안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자리에 계속 같이 했던 대표님이 주말을 지나고 오더니 "그 제안서는 쓰기로 결정했다"라고 통보하는 식이다. "우리 의견은 왜 물어본 거야?"란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직원들은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말해도 결국 대표님 마음대로 할꺼기 때문이다. 차라리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시키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세 번째로는 조직 내에 일정한 기준이 없는 경우다. 대학원을 다니는 직원의 근무시간 조정도, 임신한 직원의 출퇴근 시간도 그냥 그때그때 다르다. 왜 저 직원은 해줬는데 나는 안되냐고 항의하면 안 되던 것이 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이유를 알 수 없이(뭔가 변동의 이유는 늘 있다. 대표님의 마음속에) 다르게 적용되는 것들이 많다. 이럴 경우 모든 건건이 대표님께 물어보고 결정해야 하며, 직원들의 불만이 늘어난다. 조직 내에서 대표님이 누구만 이뻐한다는 편애설이 돌아다닌다. 




아주 세세하게는 수도 없이 많지만 나는 이런 경우를 나의 주된 반면교사로 삼았다. 그리하여 나는 T발 C*인 리더가 되었다. 나는 사실 F다. MBTI 유형검사를 대학 때부터 해봤는데(나름 강사자격을 가지고 있다), 내내 F(감정형)이었던 내가 일하면서 점점 F가 줄어드나 싶더니 이제는 완전한 T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F를 품은 T라고 생각한다. 마음 깊은 곳에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있는데 꾸욱 눌러놓은 상태랄까? 


내가 팀장이었을 때만 해도 몇 명 안 되는 동료들과 시시콜콜 개인적인 얘기까지 다 나누는 사이였다. 동료들의 개인사에 관심도 많았고 참견도 많이 했다. 그런데 국장이 되고 나며 직원들이 늘어났고, 직접 같이 일하는 게 아니라 건너 건너인 직원들이 많아졌다. 그들에게 나는 상사(팀장이나 부장)의 상사(국장)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사적 얘기는 조심스러워지고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업무 외 얘기는 도움이 되기보다 오해를 사기 십상이었다. 나는 사실 우리 젊은 동료들을 무척 예뻐하는 편인데, 그런 호감도 잘 표현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에 대한 호감은 다른 사람들에게 편애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고, 나의 다른 결정들이 그 호감 때문인가? 오해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뒤통수로도 전해지기 마련인 법. 온몸이 얘기하고 있는데 말로까지 하지는 말아야 한다. 

개인적인 선호와 애정도를 떠나 모든 직원들에게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뭔가 새로운 사례가 생기게 되면 그 해당자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이런 경우는 이렇게 한다. 는 기준을 동료들과 함께 세우고 동의를 얻어 공지한다. 동료들이 원하는 수위와 내가 생각한 수위가 다를 때가 종종 있는데, (동료들은 후한 처우를, 관리자인 나는 주로 박한 처우를 주장한다.) 밀당을 하다가 중간 지점에서 내쪽으로 조금 더 당겨서 정한다. 논의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간단히 이유를 설명하고 딱 잘라 거절한다.(괜한 토의를 붙이지 않는다.) 기준을 정하는 게 당연한 일 같은데, 사실 그게 없는 조직들이 많다. 비영리는 작은 규모가 많아서 그런지 꽤 큰 곳에서도 나는 기준이 없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예를 들어 밀당 케이스라면, 코로나 때 재택 범주 적용이었는데, 인턴은 재택이 어렵다고 생각한 나는 인턴은 출퇴근 시간 조정만 가능하고 재택은 안된다고 한 반면, 동료들은 인턴들에게도 재택을 열어주자고 주장했다. 논의와 고민 후에 나는 6개월이 지난 인턴에게는 재택을 허용하는 선에서 결정했다. 거절 케이스는, 백신 휴가였는데 당시 백신 휴가가 직장 재량에 따라 1-2일 주는 경우가 있었다. 동료들이 '우리는 안 주나요?'의 질문을 여러 차례 했는데,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고 매년 연차를 남기고 있으니 그걸 우선 쓰라고 딱 잘랐다.(줄 마음이 없어 논의에 붙이지도 않았다. 이래서 T발...)   


반면, 화도 잘 안 낸다. 나는 사무실에서 동료들을 혼내거나 화낸 적이 10년 동안 거의 없다고 자부한다.(기억의 왜곡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화가 없는 건 아니다. 외부업체들과는 종종 싸우는데 내가 전화기를 붙잡고 왈왈거리고 있으면 동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느껴진다. 내가 일하다 화가 나는 경우는,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경우가 아니라 개념 없이 일하는 경우다. 개념 없이 일하는 사람은 일찌감치 우리 버스에서 내렸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조직 내에서는 화낼 일이 별로 없다. 실수는 일하다 보면 안 생길 수 없다. 처음 하는 일은 잘못하기도 하고 일을 처리하다 보면 실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나도 사실 실수를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실수에 너그러운 편이다. 실수를 혼내면 숨기게 되고 그건 해결을 늦추기 때문에 나는 문제가 생기면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무조건 해결방안을 찾는 쪽에 힘을 모은다. 혼내지 않아도 이미 실수한 사람은 고개를 못 든다. 대부분의 실수는 열심히 하려다 일어난 일이라 화낼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실수를 용인하는 조직이 구성원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일의 효율을 올린다고 한다. 일의 효율이 무엇보다 중요한 나는 T...


리더의 감정 변화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리더가 불안해하면 직원들은 더 크게 불안해지는 것이다. 리더의 1cm 움직임이 작대기 저 끝에 가서는 10cm로 움직이듯 말이다. 다행히 나는 원래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직이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외부의 요소에 늘 흔들리게 되어 있다. 내가 외부의 바람을 제일 먼저 맞게 되는데 그 외부적 요소와 불안이 필터 없이 고스란히 조직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노력을 했다. 나란 껍질을 거치고 나면 불필요한 자극은 내부로 전해지지 않도록 수박처럼 두꺼운 껍질이 되고 싶었지만... 글쎄.. 귤껍질 정도는 되었으려나?

여기까지 쓰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겠다. 

사실 리더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얘기를 듣는 건 불가능하다. 일상적으로는 불편하고 어렵다가 결정적일 때, 그래! 역시 우리 국장님밖에 없어. 하는 날이 한 번이라도 찾아오면 성공인 게 아닐까? 사실 리더에 대한 지나친 기대, 리더인 나 스스로에 대한 너무 높은 목표는 오히려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실천 여부를 떠나 사무국장이 되면서 소소하게 다짐을 한 것을 다음 글에서 소개해볼까 한다. 



* "C발 너 T야?"를 돌려하는 것인데, MBTI의 T유형의 논리사고유형이 공감이나 배려가 떨어질 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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