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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Feb 21. 2024

어떤 리더여야 하는가

리더의 10가지 다짐

처음 국장이 되고 나서 나는 어떤 리더여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나는 성격상 카리스마 있고 추진력이 강한 리더는 못될 거 같고, 너무 좋은 리더가 되려고 하는 그런 높은 목표가 오히려 서로를 부담스럽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료들의 장점을 해치지 않는 리더가 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물 같은 리더"가 나의 모토였다. 담기는 그릇의 색깔을 그대로 비춰주는 물. 그렇지만 아래로 흐르고 비운 곳을 채우고 장애물은 돌아갈 줄 아는 유연성을 지닌 물. 

이러한 큰 기조 아래 소소한 다짐 10가지를 했다. 그 후 10년, 다짐 중 정말 잘 지킨 것도 있고 마음만큼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늘 잊지는 않았던 것 같다. 


1. 직원을 믿고, 못 믿는 직원은 밑에 두지 않겠다. 

사무국장이 되고 처음 직원들을 채용할 때는 "못 믿는 직원은 믿에 두지 않겠다." 이 말을 수도 없이 되씹었다. 믿을 자신이 없으면 서로의 지옥을 만들지 말고 차라리 그만두게 하자. 그 과정 정말 어려웠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채용이 완료된 이후에는 그냥 직원을 믿는 것만 하면 되니 그건 어렵지 않았다. 앞에 어려운 일을 해내서 믿는 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리라. 내가 중간급 리더였던 이전 직장에서 당시 국장님이 나에게 "직원을 믿지 마라. 믿으면 발등 찍힌다."는 얘기를 늘 했다. 정말 의아했다. 직원을 믿지 않고 어떻게 일한단 말이가. 직원을 믿지 않는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서로에게 지옥이다.  


2. 모르는 건 물어보고, 내 잘못을 인정한다. 

리더가 모든 걸 아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리더인지라 너무 모르는 것도 부끄럽다. 공부하되 모르는 건 물어보는 솔직함이 필요하고, 어렵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늘 새로운 것이 나오는데, 나의 손은 이전 것에 익숙해져 젊은 친구들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단지 적응하고 공부하려는 자세만 있다면 부끄러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어려운 건 잘못을 인정하는 일인데, 나는 실수가 많은 편이라 자주 다른 동료들에게 확인을 받거나 검토를 요청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직원들 입장에서는 먼저 상사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모르는 걸 묻고, 잘못을 인정하려면 내가 리더로서 자신감이 있고 동료들이 나를 신뢰해주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다. 리더로서의 내 입지가 불안하다고 느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1번이 가능해야 2번이 가능한 것 같으니, 서로의 신뢰가 바탕될 때 리더도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는가. 


3. 난이도가 높은 일은 내가 맡는다.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 중 건축디자인 회사 대표인 장동건이 직원에게 이런 대사를 한다. "내가 너보다 월급이 많은 이유가 뭔지 알아? 이런 어려운 일 해결하라고 그런 거야. 내가 몸 힘든 일은 시켜도 마음 힘든 일은 안 시켜. 오늘부터 야근하는 걸로." 이 대사가 어찌나 멋지던지.(장동건이 해서 멋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리더가 되면 몸 힘든 일은 어쩔 수 없어도 마음 힘든 일은 최대한 내가 해결해 주는 리더가 돼야지 생각했다. 늘 그렇게 마음은 먹었는데 실제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3. 너 어디 잘하나 보자. 동료를 시험하지 않는다. 

나는 효율을 무척 중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걸 싫어한다. 내가 실무를 할 때도 그랬고, 리더가 돼서도 그렇다. 때론 그런 쓸데없는 일들도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너무 지름길로만 가려고 해서는 뭘 배우겠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말도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우선 한번 해봐. 니 실력 한번 보자"라는 식의 일은 시키지 않는다. 내가 이미 마음먹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먼저 설명한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참고해서 이후를 계획해 보라고. 그래서 동료들이 스스로 찾아가는 성장이 더뎠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실컷 고민했는데 이미 답정너인 상사의 일방적 수정에 마음 상하는 일은 덜했을 수도 있겠다. 


4. 일찍 퇴근한다. 

나는 늘 일찍 퇴근하는 상사가 좋았다. 특별히 실무가 있지도 않은데 사무실에 나와서 신문도 보고 소일하며 집에 가지 않는 상사가 싫었다. 직원들이 야근하는데 나 혼자 집에 갈 수 없다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재가 필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상사가 있어야 신경 쓰여 일만 더뎌질 뿐. 그래서 나는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사실 리더는 실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야근까지 할 일이 별로 없다. 이건 정말 지키기 쉬운 다짐이었다.  


5. 받기보다 베푼다. 

이전 직장에서 직원들이 명절마다 돈을 모아서 상사들의 선물을 하는 문화가 있었다. 명절에도 하고 특별한 일이 있어도 의례 돈을 걷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하는 선물이 아니라서 어느 순간 불편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소소한 반면교사가 되었다. 뭔가를 선물하고 주는 건 위에서 아래로 물 흐르듯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선물을 주지는 못했지만 받기보다는 주려고 노력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작은 선물도 내가 받지 않았다. 우리 단체가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이후 명절마다 청와대에서 선물이 왔다. 처음에 풀어서 나눠갔다가 나중에는 돌아가며 직원들 한 명씩 집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포장이 거창하고 청와대 카드와 마크가 찍힌 선물을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시다는 걸 알고부터다. 그게 제한 연도가 있는지 몇 년 오고 말았는데 다행히 전 직원이 한 번씩 다 가져가게 되었다. 


6.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한다. 

지적은 쉽고 일상적이다. 결재라는 것이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는 것이 전제로 깔리기에 그렇다. 잘한 일은 당연한 일이 되기 쉽다. 담당자인데 잘해야지. 잘하는 게 기본값이 되는 것이다. 칭찬이란 모름지기 구체적이고 정확해야 하는 법인데, "좋아. 잘했어. 고생했네"에서 더 나가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칭찬을 잘한다는 건 정성이 많이 드는 일인데 늘 마음보다 부족했던 것 같다.  


7. 소소한 것에 집착하고 지적하지 않는다. 

이것도 반면교사인데, 이전 내가 경험한 리더들은 굉장히 꼼꼼하고 세세한 분들이 많았다. 큰 행사를 하는데 현수막 색깔까지 대표님이 정하셨다. 큰 책자 인쇄도 디자인이 다 나왔는데 마지막 결재에서 전체 컨셉이 엎어지기가 일쑤다. 행사 간식 과자 종류까지 일일이 체크하셨다. 이렇게 되면 진짜 실무자가 일하기 어렵고 일 진행이 안된다. 나는 이 다짐을 해서 그런지 별로 그런 것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특히 디자인이나 인쇄물 관련해서는 개인적 취향을 드러내지 않았다. 디자인 시안이 나올 때도 내가 고른 적은 거의 없다. 담당자가 고르거나 직원 투표로 정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디자인 업체가 맡아서 하게 되면 그다음은 결국 개인적 취향이기 때문이다. 


8. 직원 복지에 신경 쓴다. 

어느 리더십 관련 책에서 읽은 것인데, 작업을 하는 공간에 등을 밝혀주는 것이 업무 효율에 차이를 주는지 실험을 했다. 당연하게도 등을 더 밝혀준 공간의 효율이 아닌 곳보다 높게 나타났는데, 재밌는 것은 그 이후 다시 등을 이전으로 돌려놨는데도 효율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업 환경에 배려를 받았다고 생각한 직원들이 그 환경과 상관없이 효율이 오른 것이다. 난 직원복지란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배려받는다는 느낌. 어차피 우리 조직이 큰돈을 주지도 큰 복지를 주지도 못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매출에 따른 상여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등을 켜주듯이 모두가 배려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업무에 차질만 없다면 최대한 직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하고자 했다. 


9. 긍정적이고 유쾌한 리더

어느 직장이건 그 사무실 공간에 들어가 보면 조직문화가 느껴질 때가 많다. 다들 눈치 보고 억눌려 있는 곳인지 밝고 긍정적인 곳인지는 들어가는 순간 알게 된다. 이왕이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 밝고 긍정적이면 좋겠고, 리더에 따라 분위기는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우리 사무실은 너무 조용해서 적응하기 어려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다들 각자 자기 일에 바빠 담소를 나누거나 큰소리 통화를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외향형보다 내향형들이 많아(나를 포함하여) 왁자지껄 하지도 않다. 그래서 유쾌까진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는 성공한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모두들 안된다는 것보다는 항상 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었기 때문이다. 그 해보자는 일로 또 바빠서 말이 없어졌지만 말이다. 


10. 정보를 공식적으로 정확하게 전달한다. 

직원들이 모두 같이 알아야 할 정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다 같이 동일한 내용으로 알도록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의외로 중요한 얘기도 사적인 자리에서 우연히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정확한 얘기가 아니라 이렇다더라 통신이 떠돌게 되고 아는 내용이 각기 다르며,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 이전 직장에서, 카더라 통신으로 "인사 발령"처럼 중요한 얘기들이 떠돌았다. 누가 어디로 간다더라. 하는 식이다. 그게 결정이면 공식적으로 전달해야 하고, 결정이 아니라면 그런 얘기가 떠돌도록 하면 안 되는 건데 늘 얘기가 직원들의 입에서 입으로 모두 다 돌고 나면 그제야 공지가 나거나 어떤 때는 나지 않는다. 이런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직장의 피곤함을 더하지 않을 때, 업무의 효율도 오르는 것 같다. 



리더란 자리는, 자기가 어떤지 참 알기 어려운 자리란 생각이 든다. 동료들이 리더에게 불만을 얘기하거나 지적하기가 쉽지 않고, 설사 불만을 들어도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하는 경우(관리자는 그럴 수밖에 없어.라는 식으로)가 많기 때문이다. 자기 객관화가 얼마나 되고 있는지 조차가 가늠이 안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결국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다짐하는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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