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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Feb 24. 2024

음악가와 일하는 사회복지사

달나라와 별나라의 만남

지금 일하는 곳에 입사하기 이전, 나는 음악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였다. 입사할 때 아이들 오케스트라 사업을 한다고 들었지만 그 사업이 음악에 그렇게 깊이 발을 들여야 하는 사업이라는 생각조차 못했다. 나는 클래식 공연을 거의 보러 간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머릿속에 "오케스트라"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사업은 규모가 엄청나게 컸고, 한 개의 오케스트라에 50명 정도의 단원이 있었는데 그런 오케스트라가 5개에서 많을 때는 10개가 넘었다. 하나의 오케스트라마다 10명 정도의 악기를 가르치는 강사가 있었으니 음악 강사만 수십 명이었다. 

우리 사업은 특별히 현악기는 없고 관악기만 있는 관악 오케스트라였다. 클라리넷, 플루트 등의 목관악기야 익숙하지만 트롬본, 튜바, 호른 등의 금관악기는 처음 들어보고 처음 보는 악기가 많았다. 뭐가 금관이고 목관인지, 정확한 악기 이름이 뭔지를 익히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어려서 피아노를 배워서 악보 볼 줄 아는 거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복지사가 수십 명의 음악가를 거느린 사업을 맡게 된 것이다. 


무식하니 용감한_달나라에서 온 사회복지사

그런데 그 당시 나는 몰라서 걱정을 했다니 보다, "그냥 하면 되지, 뭐"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1년에 한 번씩 아이들을 무대에 세우는 큰 연주회가 열리는데 당시는 사업 초반이어서 아이들의 연주 실력이 미미한 상태였다. 저 연주를 모두 들어야 하는 관객을 생각할 때 뭔가 연주 외의 다른 요소가 많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각 관악단을 소개하기도 하고 아이들 스토리를 보여주기도 하는 영상이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연주할 공연장은 스크린을 내리면 음향반사판을 쓸 수 없는 구조였다. 클래식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공연장들은 보통 스크린을 잘 쓰지 않는다. 연주를 들으면 되지 다른 효과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지금 스크린이 꼭 필요했다. 지휘자들을 모아놓은 회의에서 스크린을 쓰기 위해 음향 반사판을 쓰지 못한다고 얘기했더니 말도 안 된다며 반대를 한다. 음향반사판이란 무대뒤의 벽 같은 것인데 소리를 반사시켜 객석으로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당시 음향반사판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왜 안되냐고 묻자, "그럼 소리가 안 빠진다. 애들이 그렇지 않아도 소리가 작은데 음향 반사판까지 없으면 안 된다."라고 한다. "그래요? 그럼 마이킹을 하면 어떨까요?"라는 나의 말에 뭔가 어이없어하는 반응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강사들은 정말 황당해서 말을 못 한 것인데, 나는 반론이 없어서 수긍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음향반사판 대신 스크린을 내리고 마이킹을 했다. 여기에 나는 모르고 강사들은 설명하지 못했던 진실은 이런 거다. 오케스트라란 모름지기 여러 악기 소리의 조화가 중요한 것이다. 특정 악기가 튀어서도 안되고 죽어서도 안되고 악기마다 적절한 음향으로 어우러져서 조화가 되어야 비로소 곡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주는 게 음향반사판의 역할인 건데, 버젓이 있는 반사판을 쓰지 않고 특정 악기소리가 튀기 쉬운 마이킹을 선택한 것이다. (보통은 야외 연주회를 할 때 마이킹을 많이 하는데 관악오케스트라는 사운드가 커서 웬만해서는 야외에서도 마이킹을 잘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 바로 클래식 공연장의 음향반사판이다.

이 사업의 모든 과정이 이랬다. 음악의 효과를 높이는 일과 비용을 절감하는 일, 혹은 다른 부수적인 효과를 주는 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음악가들은 당연히도 그 무엇보다도 음악의 효과를 높이는 일을 주장했고 우리는 그 반대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휘자는 계속 "저음이 없다"라고 주장을 한다. 관객들은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멜로디를 주로 부는 고음파트(클라리넷이나 플루트 등)가 중요하게 보이지만 저음부를 담당하는 악기들이 넓고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으면 음악의 사운드가 풍성하게 느껴진다. 안정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당시 그걸 알리 없는 나에게 지휘자는 계속 저음이 없다며, 대부분 엄청나게 고가인 베이스 클라리넷이나 테너 색소폰, 유포늄 등의 악기를 넣자고 주장한다. 아니 저음이 왜 없어 튜바도 있고 트롬본도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 말을 무시하는 식이다. 

연주곡이 결정되면 나는 아, 여기에 어떤 효과를 줄까?를 고민하여 연주하는 동안 마임하는 사람도 나오고 조명 효과를 넣어보기도 하며, 때론 분위기에 맞는 사진을 돌리기도 한다. 그럼 음악강사들은 그런 곳에 왜 돈을 쓰는지 알지 못하고 차라리 객원(전문연주자)을 한 명 더 넣어주지.라고 생각한다. 음악회를 음악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음악가들과 이건 음악회지만 복지사업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차이였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음악을 알지 못하던 나와 사무국이 열정만 넘쳐서 일어난 결과이기도 했다. 


언어가 짧은_별나라에서 온 음악가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사 외의 사람들과 협업할 일이 꽤 있다. 우리 사업 중에 음악 외에 교육 사업도 있었는데 아이들의 기초학습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양성하여 파견하는 사업이라 학습교사들과 일하는 식이다. 그 외에도 독서지도강사, 체육 강사 여러 분야의 강사분들을 만나봤지만 음악강사들이 가진 독특함이 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을 꽤 오래 했는데, 수업의 계획안을 작성하는 건 모든 교육의 기본이다. 1시간 수업을 하면 그 시간의 수업계획안이 있어야 들어가지 않은 수업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강사비를 지급할 것 아닌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음악강사들에게는 수업계획안이 없었다. 수업계획안을 달라는 우리에게 그게 왜 필요하냐는 얼굴로 "그건 제 머릿속에 있죠."라고 말하곤 했다. 수업이 끝나고 진행일지를 쓰라고 하면, 몇 달 치를 몰아서 한꺼번에 쓰는 강사, 아이들을 시키는 강사, 이걸 왜 써야 하냐고 반문하는 강사... 약간 사회화가 덜 되었다고 해야 할까? 순수하다고 봐야 할까? 음악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인데, 같이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행정력이나 컴퓨터 사용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문서작업을 상당히 귀찮아하며 돌려 말할 줄 모르고 직언을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업은 아이들을 음악가로 양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서 강사들에게 늘 그것을 강조했다. 아이들의 악기 스킬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어떤 음악강사가 자기가 수많은 레슨을 하러 다니면서 들은 얘기 중 가장 황당한 얘기였다고 한다. 자기가 클라리넷을 가르치러 왔는데 클라리넷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성이 중요하다고 얘기해서 너무 혼란스러웠다고 말이다. 처음에 강사들이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악보를 못 본다, 연습을 안 해서 늘지를 않는다" 아이들을 탓한다. 그럼 우리는 말한다. 지금 연주실력보다 아이가 그 수업을 재밌어하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자부심을 가지게 해달라고. 그런 강사가 되기 위해 인문학 강의를 듣게 하고 교사로서의 태도를 고민하게 하고 하고 회의를 하게 하면, "이런 걸 왜 시키지?"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음악을 모르는 사회복지사와 1:1 악기레슨과 연주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음악가가 서로 어느 이해의 지점에 있는지 조차를 모르면서 가닿지 않는 말로 헤매던 시간이었다. 


결국 달과 별은 같은 하늘에 뜬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도 이제 음악사업을 10년 넘게 경험했다. 10회가 넘는 연주회를 개최했으며 수십 번의 연주회에 참여했고, 백명도 넘는 다양한 음악강사들을 만났다. 이제 더 이상 스크린을 쓰겠다고 음향 반사판을 올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음악강사들보다 더 음향 반사판을 중요하게 여길 줄 알게 되었으며, 타 연주회에 가서도 음향 반사판이 없는 홀은 대번에 알아본다. 

아이들의 연주실력도 많이 올라와서 이전처럼 다른 효과가 많이 필요 없어지기도 했지만 이젠 우리도 음악자체의 완성도가 주는 감동이 뭔지 알기에 그것에 좀 더 집중하려고 한다. 물론 아직도 스크린도 쓰고(음향반사판과 함께 못쓰면 별도로 설치한다.) 조명효과도 넣지만 과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나에게 저음, 저음을 외치던 지휘자는 그만뒀지만 나는 그가 말하던 그 "저음"이 뭔지 알게 되었다. 물론 10년을 거치면서 지휘자가 얘기하던 저음 악기들은 하나씩 보강이 되었다. 게다가 성인이 되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졸업하게 된 졸업생들과 성인 취미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나도 단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클라리넷을 분다.) 합주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저음이다. 저음 악기가 하나만 더 들어와도 합주가 완전히 달라진다. 춤을 추는 곳에서는 춤 잘 추는 사람이 귀하고 잘 생겨 보인 듯이, 합주할 때는 저음파트 연주자면 무조건 대우를 달리해준다. 그냥 존재 자체로 귀하다. 

수업계획안을 쓸 줄 모르던 강사들은 아무리 어려운 연주곡이 나와도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그 곡을 소화하도록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의 능력과 불성실함을 탓하던 강사들은 아이들의 가정상황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고 문제가 생기면 우리에게 알려주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캐치하는 섬세함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 (물론 적응하지 못한 많은 강사들이 그만뒀다.) 사회화가 덜된 것처럼 보였던 그들은 사실은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이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은 우리 단체의 열심과 성장을 높이 평가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 동안 우리 서로는 각자 성장했고 서로를 이해하고 믿게 되자 함께하는 시너지가 더해졌다. 


음악회라고는 우리가 주관하는 연주회거나 지원하는 연주회만 보기를 10년. 아마추어 연주였지만 그 연주를 듣다가 어떤 때는 눈물이 났고 어떤 때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 음악이 주는 감동을 찾아 급기야 최근에는 돈을 내고 클래식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가사도 없고 스토리도 없는 클래식 음악을 두 시간 동안 앉아서 들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곡가가 누가 누군지 모르고 한번 듣고 다시 들어도 뭔 곡인지 몰랐지만 그 시간이 힐링이 되고 좋았다. 저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저 경지까지 가기 위해 바쳤을 노력과 그래서 결국 얻어낸 저 능력과 아름다움이 놀라웠다. 그 가치를 보존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달나라는 별나라를 존경하게 되었다. 달은 별이 될 수 없지만 같은 밤하늘에 뜨게 된다는 사실이, 함께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 사진출처 :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 / 올키즈스트라 정기연주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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