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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Jan 10. 2024

벽에 붙은 성적표

비영리단체 투명성 순위 매기기

최근 비영리단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더해,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있느냐가 큰 이슈이다. 이를 개별 후원자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을 평가해 주는 기관들이 생겨났다. 외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어 비영리단체의 투명성과 책무성을 평가하는 지표들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다. 


비영리단체를 평가하여 일반 후원자들이 쉽게 구분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비영리단체들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비영리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커졌고, 이를 증명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영리단체라는 이름으로 묶인 수많은 다양한 조직과 활동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복지단체만 해도 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월드비전처럼 대규모급의 재단들도 있고, 지역에서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소규모 지역아동센터, 작은 도서관 등도 있다. 시민들의 혹은 특정 집단의 권리를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시민단체들은 복지단체와 또 다르다. 동일한 비영리라 해도 참여연대, 여성단체, 환경단체 등인 시민단체와 복지단체는 그 활동구성이나 성격에 차이가 있다. 여기에 기업에서 출연한 기업재단은 그 특성이 또 다르며, 문화재단, 교육재단, 국내에서 모금하여 해외에서 사업하는 국제구호단체, 조합원 구성을 기본으로 하되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회적협동조합 등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다양한 비영리단체들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비영리단체를 처음 평가하기 시작한 [가이드스타]는 이렇게 다양한 조직과 활동, 특성을 가진 비영리단체들을 특정한 몇 개의 평가지표로 적용하여 별점을 주기 시작했다. 가이드스타가 들이댄 자는 굉장히 작고 단편적이어서 그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큰 3차원의 조직들을 잴 수 없었으나 가이드스타는 처음부터 이것을 기사화하였다. 가이드스타가 지표에 대한 의견을 듣고 그 지표로 평가받고 싶은 곳을 신청받아 평가하는 상식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초반에 바로 원하지도 신청하지도 않은 단체들을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기사화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비영리단체들은 주무부처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다. 매년 사업보고와 사업계획, 재정을 보고하게 되어 있으며, 기부금영수증을 발급하는 곳은 관련한 서류를 모두 국세청에도 보고해야 한다. 사회복지법인의 경우는 3년에 한 번씩 주무부처의 지도점검이 의무화되어 있기도 하다. 사실은 정부가 비영리단체들을 관리감독하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별점처럼 쉽게 구분해 볼 수 있는 형태로 시민들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부기관도 후원처도 아닌, 제3의 기관에서 평가를 해서 시민들이 구분해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을 단체의 목표로 삼은, 가이드스타 같은 새로운 비영리단체가 생겨난 것이다. 즉, 가이드스타도 자신의 목적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인 것이다. 가이드스타가 "내가 너희들을 평가해 줄 테니 신청해 봐. 별 달아줄게." 할 때 어떤 기관이 신청을 할 것인가. "내가 왜 너한테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의 설득부터 필요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런 쌍방의 논의나 협의 없이 비영리단체들이 국세청에 공시한 자료를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개발한 평가지표를 가지고 일방적인 평가를 진행했고, 그 파급이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기사화한 것이다. 


가이드스타가 비영리단체를 일정 지표에 따라 평가하고 별을 달아 주기를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이다. 지표와 방식은 현재까지 매년 조금씩 바뀌어오고 있다. 

어렸을 적 내가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학원을 다녔을 때, 우리 학원은 모의고사가 끝나면 1등부터 100등까지 이름과 점수를 벽에 붙여놨다. 그때 전체 대상 학생이 150명 정도였기 때문에 100등까지 붙였다는 거는 거의 모두를 붙였다고 보면 된다. 나는 한 번도 거기서 내 친구의 등수를 찾아본 적이 없는데(내 등수는 내가 이미 알기 때문에) 학원의 그런 행위가 매우 치욕적으로 느껴졌다. 가이드스타의 별점 평가를 보며 나는 재수시절 벽에 붙은 성적표가 생각났다. 가이드스타는 평가를 통해 비영리단체가 나아갈 길, 보완해야 할 점을 제시하기보다 부정적 문제를 부각하고 단체명을 리스트화하거나 서열화하여 그대로 기사에 넣는 방식을 자주 썼는데, 내가 속한 단체명이 뜬금없이 그 기사 리스트에 등장할 때의 당황스러움이라니. 


그 첫 시작은 2014년으로 한국일보와 함께 낸 기획기사다. 기사 내용인즉, 공익법인 3만 개 중 공시의무가 있는 곳이 약 4천 개, 그중 제대로 공시한 것은 19곳뿐이라면서 그 19곳을 투명성 순위를 매겨 1위부터 19위까지 나열하였다. 그 순위 기준을 총사업비에서 순수사업비 비중으로 나누어서 사업비 비중이 높은 곳부터 나열을 한 것이다. 1-19번 번호를 매겨서. 순수사업비 비중이 높다는 것이 단체의 활동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그것이 "투명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음에도 일반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자극받을 수 있는 요소를 잡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가이드스타는 "외부회계감사"를 무척 중시하는데 이때도 "제대로 공시"의 기준을 외부회계감사를 받았는지 여부를 기본으로 살폈다. 지금도 가이드스타는 외부회계감사를 받지 않는 기관은 평가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고 있다. 국세청은 2014년 당시는 외부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하는 의무 기준을 기부금(재산가액) 100억으로 두었다.(현재는 20억이다.) 100억 정도 모금하는 곳은 외부회계감사를 하라는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회계사에게 의뢰해야 하는 회계감사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규모와 복잡성에 따라 다르지만 1년 회계 감사에 보통 1천만 원부터 시작한다. 작은 규모의 단체들은 엄두내기 어려운 이유다. 규모가 20억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외부회계감사 의무기준을 20억으로 내릴 때 국세청 간담회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의무사항으로 두려면 회계감사비 지원을 해라. 아니면 공익법인을 감사할 회계사 인력풀이라도 좀 갖춰라."라고 얘기하자, 20억 규모에 1천만 원 만드는 게 뭐가 어렵냐고 묻는다. (어이가 없다) 20억이 모두 후원금이거나 정부지원금인데 그중 회계 감사에 허용된 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가이드스타의 이사진을 보면 회계사이거나 경제인이 대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악한 비영리단체들에게 외부 회계 감사를 기본으로 한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회계감사를 지원하는 사업을 먼저 할 수는 없었던 걸까?   


2021년에 가이드스타는 시사저널과 함께 비영리단체 투명성에 대한 시리즈 기사를 낸다. 이 기사는 특정 단체를 콕 집어서 비난하는 방식으로 연재되었다. 그중에는 정말 문제가 있는 곳도 있겠으나, 그 내용은 활동의 문제가 아니라 국세청 공시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시양식 상으로는 이상해 보이지만 정해진 양식에 맞추다 보니 제대로 보고할 수 없었던 한계도 분명 있는지라 이런 기사들은 시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낮아진 신뢰를 더 바닥에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중 하나가 이 기사인데, "노무현 재단, 100억대 민간기부 받으면서 민간평가 거부했다" 이 제목에만도 가이드스타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단 특정 단체를 집었다. 이슈화하기 좋은 "노무현 재단"으로. 

"민간기부 받으면서 민간평가 거부했다."?????

2014년 평가를 처음 시작할 때는 단체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청하지 않은 단체들을 평가하다가 그 이후는 신청한 비영리단체만을 대상으로 평가하게 되었는데, 단체들이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신청하지 않은 단체들을 비난하는 기사였다. 

기부를 받으면 수많은 정부기관에 평가와 보고를 해야 한다. 그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다.(그 의무사항만 해도 얼마나 다양하고 버라이어티한지 모른다) 민간평가는 선택사항인 것이다. 마치 가이드스타가 "민간기부"를 대표하는 "민간평가기관"인 양 제목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민간기부 받으며 정부평가 거부했다."가 제목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말이다. 내용은 더 가관인데, 가이드스타의 평가를 거부한 (거부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건 단체의 선택일 뿐. 바빠서, 필요성이 없어서, 그런 게 있는지도 몰라서 안 한 것이다) 92.6%의 단체들이 "수차례 독촉전화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소제목으로 마치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자료를 비리가 있어 숨긴 것처럼 보도했다. 심지어 기사 안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평가받지 않은 기관 리스트를 나열했다. 그 나열된 단체 안에서 내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단체 이름을 발견했을 때의 황당함이란. 

가이드스타가 신청하지 않은 모든 기관에 일방적 별점을 다는 평가를 진행할 때 내가 일하는 단체는 항상 최대 별점을 받았다. 가이드스타의 평가 방식이 신청제로 바뀐 이후로는 가이드스타의 운영방식에 동의하지 않아 일부러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을 뿐이다. 

특정 단순한 지표로 모든 기관을 평가하려고 하는 방식, 현장의 의견을 듣지 않는 일방적인 방식, 우리가 투명성의 진리인데 안 하는 곳은 모두 불투명하다는 오만함, 부정적 기사를 남발하여 비영리단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방식, 동의할 수 없는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그룹핑한 기관 이름을 모두 기사에 리스트화하여 모욕감을 주는 방식, 특정기관을 타깃 하여 기사화함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은 많은 기관들의 입을 막는 방식, 회계감사가 모든 투명성의 답인 양 큰 기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논리를 강화하는 방식. 

이러한 이유로 나는 가이드스타의 평가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다양한 평가 기관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 후원자들이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식은 기부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평가기관들이 준비하고 시작될 때 그 시작을 돕거나 현장의견을 전달하거나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이 그렇고, 마이오렌지가 그렇다.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은 소규모 기관들도 원할 경우 일정 비용을 내면 투명성과 책무성에 대한 자가평가와 점검을 받고 인증기관임을 명시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으로 비영리단체들이 참여한 후 일반 시민들에게 투명성을 홍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가능하다. 마이오렌지는 기부자들이 가입하여 단체를 검색해 보거나 기부하는 단체에 리뷰를 달 수 있고 서로의 평가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 외에도 삼일회계법인과 삼일미래재단이 주는 "삼일투명경영대상"이 있는데 우리 단체는 여기에 3번 신청했다. 우리 단체는 규모가 크지 않아 상 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투명성을 올리기 위한 자체적 노력으로 계속 신청하고 전문가의 리뷰 결과를 다시 반영했다. 그 결과 2023년에 드디어 투명경영상을 수상했다!!! (중소부문상을 탔다)


사람 관계에서도 한번 깨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이전보다 몇 배의 더 큰 노력이 든다. 비영리단체가 잃어버린 신뢰도 마찬가지다. 회복할 길이 막막하다. 선한 마음을 가진 많은 시민들이 본인들이 직접 할 수 없는 약자를 돕는 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대신해 주는 비영리단체들에게 고맙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주는 기부금이, 이제는 더 이상 믿지 못해 그 지갑마저 열지 않을 때, 비영리단체의 존폐와 일하는 사람들의 밥그릇이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약자와 감시기능이 사라지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인 것이다. 이 신뢰의 회복을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무겁고 심각한 과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뿐 아니라 이를 평가하고 감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둔 가이드스타와 같은 단체들 역시 비영리단체의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고 오해를 깊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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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영리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투명성과 책무성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정부에 개선방안을 제안하는 [공익네트워크 우리는]이라는 모임이 있다. 이곳에서 만든 비영리단체 자가진단지표도 단체들이 참고할 만한 자료이다. 이러한 자발적인 모임들이 더욱 많아지고 활성화되어 비영리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좀 더 회복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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