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 한동안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었다. 시어머님이 많이 아프셨기에 가족들 특히 집에만 계시는 시아버님 식사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안방에서 식사를 하시던 습관 때문인지 나는 매일매일 소반에 아버님의 밥상을 차려야 했다.
얼마나 오래 쓰셨는지 깨끗한 행주로 닦아도 닦아도 검게 탄 뚝배기 자국이 선명했던 그 낡고 작은 소반은 된장찌개, 나물 무침, 김치, 생선 한 조각만 올려도 한상 가득이었다. 결혼 후 너무나 다른 환경과 생활에 지쳤는지 밥상을 차릴 때마다 보이는 그 검은 뚝배기 자국이 너무 꼴 보기 싫었다. 매일 일상이 힘들어 온갖 짜증을 다 그 소반 탓으로 여겼다. 그것을 냅다 버리고 새것을 열개라도 사드리고 싶었지만 아버님은 아직 쓸만하다고 버리지 못하게 하셨다. 그러면서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집안에서 제일 새것 같고 비싸 보이는 소파 탁자를 필요 없다며 버리고 오셨다. 아마도 아버님도 말기 암 이신 어머님 간호에 지치셨고 살림에 서툴고 정성껏 시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하는 며느리 나에 대한 불만과 아들의 섭섭함에 화풀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식구들에게 힘들다는 표현을 하신 것 같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이사를 하였고 그 소반도 사라졌다. 그리고 매일 안방에 밥상을 차릴일도 없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님 마음에 드는 며느리는 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버님도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사셨던 나의 시아버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전쟁으로 당신 아버지와 모든 재산을 다 잃고 분풀이로 고등학교 재학 중 군에 지원입대하셨다. 제대 후에 몰락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그리고 남매를 둔 가장으로 고생 많이 하셨던 남편의 아버지. 그렇게 사시다 보니 술이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셨지만 손자를 끔찍이 사랑하셨던 할아버지.
하지만 나는 지금도 아버님한테 유감이 많다. 돌아가신 분께 무슨 유감이냐 하겠지만 이런 유감이 있으니 아버님께 드린 죄송함을 퉁 쳐가며 마음에 상처 없이 아버님을 기억할 수 있다.
아직도 누군가의 작은 소반 위에 차려진 밥상을 볼 때마다 그 검은 뚝배기 자국과 아버님이 동시에 떠오는 건 어쩔 수 없다
검게 탄 뚝배기 자국이 있는 낡은 소반에 보쌈 한 접시와 소주 한 잔 그리고 나의 시아버님..,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