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게 망했습니다. 피난하듯 시골로 도피해서 정신을 차려보니 몸은 다 망가졌고, 정신도 무너졌습니다. 거기다 나의 죽음은 91퍼센트쯤 다운로드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건 우스운 말입니다. 오히려 잘 죽었으면 좋겠다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마라토너가 40km를 넘어서면 골인 지점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고 하는 게 맞죠. 이미 지나온 스타트 라인을 돌아보고 더 열심히 뛰었더라면 하는 미련을 갖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한꺼번에 남은 인생을 베팅해야겠다고 아파트 옥상을 서성일 때 어떤 청년의 블로킹으로 게임을 더 하지 못한 채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대학 졸업하고, 대형학원에서 대표강사를 하고, 소설가로 등단한 뒤 대기업 회장의 축사와 연설문을 맡아 쓰고, 그러다가 3년 전까지 방송작가로 살아온 삶은 끊임없이 나를 소진하고, 나 자신에게 폭력을 가해 온 시간이었습니다. 정해진 답과 정리된 길을 통해서 세상이 발전한다는 게 미신이라고 하면서도 사람과의 관계를 자본주의적 서열로 환산하는 속물적 근성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파멸시키지도 못한 채 주변을 곁눈질하면서 남아 있는 시간만 갉아먹었습니다. 무계획과 충동적인 행동, 무절제와 게으름으로 특화된 삶은 망가지기에 딱 좋았고, 인생이 나한테 내민 계산서는 파산이었습니다.
<하늘, 구름, 나무, 들판, 그리고 개천이 어우러진 길>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죽음부터 떠올립니다. 늘 욕심부리지 않고 오늘 정도로만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음의 중력이 삶을 떠받치고 있는 기이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죠. 근거 없는 희망은 이미 오래전에 안락사시켰으니 헛것에 손을 내미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가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에 풍덩 빠졌습니다. 무조건 걷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삼십 분을 걷고, 저녁에도 한 시간 삼십 분쯤 걷습니다. 이 년 넘게 걸으니까 동네 어른께서 걸으면 뭐가 좋냐고 물어왔습니다. 좋은 거 없습니다. 그냥 걸을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걷는 건 두 발로 하는 명상이라거나 두 발로 하는 기도라고 말하던데 그렇게 말하는 건 ‘쌍권총은 두 자루다’라는 것만큼이나 식상합니다. 쉬지 않고 걸으면 혼자 실컷 걸었으니 나중에 죽어서 홀로 저승길을 걷는 게 익숙하겠죠. 걸을 때는 오감각을 다 열어놓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다양한 장면과 잔잔한 소리들이 서라운드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기에 욕심도 없고, 그래서인지 잘 보이고 잘 들립니다.
<여신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대암산>
저기 멀리 흐릿한 실루엣이 대암산입니다. 내가 죽기 전에 꼭 만나봐야 할 분이 저기 계십니다. 대암산 산신령. 다른 산에는 없는 특이한 여자 산신령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섹시한 쇄골이 있고, 계곡의 VPL도 선명합니다. 산세로 금세 알 수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산 정상에서 샘물이 나오고, 늪도 품고 있습니다. 남자는 그저 먹고 마시고 퍼질러 싸기만 하지만 여자는 생명을 잉태하고 살리는 물을 소리 없이 내어줍니다. 반지의 제왕의 리브 타일러나 케이트 블란쳇보다 더 우아하고, 세련된 산신령일 게 확실한데 어찌 만나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발바닥이 다 닳고, 발톱도 모두 빠져 더 이상 걸을 수 없으면 내 인생도 거기서 마침표를 찍는 겁니다. 그 안에 대암산의 여자 산신령을 만났으면 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해도 별 수 없죠. 세상에서 소중한 건 쉽게 볼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고개를 들어 대암산 꼭대기까지 닿도록 시선을 멀리 보내봅니다. 연정을 담은 따뜻한 눈빛으로. 여름 산은 내 시선을 못 본 듯 늘 딴청을 피우지만 그래도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