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신춘문예 소설 다섯 편 일별
-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응원을 보냅니다
조선일보 당선작 권희진의 <러브 레터>
동아일보 당선작 임택수의 <오랜 날 오랜 밤>
한국일보 당선작 김영은의 <말을 하자면>
경향신문 당선작 허성환의 <i>
서울신문 당선작 이지혜의 <북바인딩 수업>
해마다 1월이 가기 전에 숙제처럼 신춘문예 당선작을 읽습니다. 배우든 가수든 작가든 신인의 등장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죠. 선택을 받은 분들의 당선을 축하하며, 이번의 등단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떠나는 묵직한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낙선자들에게는 격한 위로와 응원을 보냅니다. 자신의 당선 순서가 기필코 오리란 믿음을 버리지 마시길. 조선일보 권희진의 <러브 레터>, 동아일보 임택수의 <오랜 날 오랜 밤>, 한국일보 김영은의 <말을 하자면>, 경향신문 허성환의 <i>, 서울신문 이지혜의 <북바인딩 수업>에 대해 일별해 봅니다.
조선일보 당선작인 권희진의 <러브 레터>는 전통적 가족해체와 1인 가구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비극이면서 동시에 실존적 절망에 대한 서사이며, 서글픈 자전적 고백이기도 하죠. 재미없는 건조한 문체로 쓴 세태소설이면서 인간관계의 무망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러브 레터>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더 뜨겁고 서럽게 사랑하는 연서입니다.
동아일보 당선작인 임택수의 <오랜 날 오랜 밤>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줍니다. 두희는 건망증과 부증을 앓으면서 딸인 율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두희, 플루트 영재교육을 받는 율, 그리고 악기점 사장 세 사람의 관계에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특별한 서사와 반전도 없는 맹맹한 이야기이지만 작가의 사물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과 그것을 밋밋하게 담아낸 능숙한 문장이 현장감을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내 이웃의 이야기 같아서 저릿했습니다. ‘다만 바람이 불어도 꼼짝하지 않는 나무를, 오랜 날 오랜 밤을 견뎌왔을 나무를 오래 바라보았다.’ 마지막 문장 속에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사물은 성찰한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요.
한국일보 당선작인 김영은의 <말을 하자면>은 노동현장의 르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모순과 폭력 같은 거대악과 싸우는 투쟁이라기보다는 소시민 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자기혐오와 부끄러움의 이야기입니다. 행간 곳곳은 그동안 내가 슬쩍슬쩍 해왔던 부끄러움이 덜컹 걸리는 둔덕이었고, 분칠해놓은 위선의 민낯을 드러내놓기도 했습니다. 가진 자들의 타성적인 불감증과 계급적 차이에서 서로를 향해 내뱉는 인간적 모멸은 오늘도 맞닥뜨리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 부조리한 현실을 보듬고, 화해하려는 노력은 사람 사는 사회의 기본이며 예의입니다. <말을 하자면>은 정치적 구호로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서사로 우리가 잊고 사는 공동체 사회에 대한 철학과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그게 어떤 문학적 가치보다 의미가 있겠죠.
경향신문 당선작인 허성환의 <i>는 세련된 문체도 매력적인 캐릭터도 보이지 않는 투박한 소설입니다. 읽는 내내 답답하고,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노동 현장이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앉아서 쉴 의자가 절실하지만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주인공이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건 아내와 아내의 몸속에서 숨 쉬고 있는 생명체 때문이죠. 정신없이 포장용기를 나르는 시장과 산부인과 병실이 마치 영화의 교차편집처럼 서술되는 장면이 전하는 메시지는 사랑과 희망입니다. 사랑과 희망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이기에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로 환치될 수도 있죠.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의자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여전히 현실부재의 의자이기에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여전히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동의 쉼으로써의 의자와 함께 영혼과 정신이 기댈 수 있는 의자야말로 구원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신문의 당선작 이지혜의 <북바인딩 수업>을 읽으면서 주인공 여자인 ‘나’가 이종사촌 사이인 ‘윤재’와의 이성적 감정이 아리고 애틋했습니다. 과잉된 액션으로 스토리가 진행됐더라면 신파에 지나지 않았을 이야기인데 북바인딩 수업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파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과정이 사회적 연대로 확대되는 메시지로 와닿았습니다. 작은 커뮤니티로부터 시작되는 관계의 확장이야말로 시민사회가 지향하는 목표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됩니다. 거대 담론의 세계는 역사가의 몫일 터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는 취미나 공동 관심사 하나만으로도 인간적인 통로가 마련되고, 그게 건강한 세상을 만드는 힘이죠.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나를 바라보던 윤재의 눈매가 조금씩 휘었다. 윤재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첫 번째 책이야,’ 뭐랄까. 강신재 선생님의 <젊은 느티나무>의 마지막 장면과 오버랩 됐습니다. 동어반복, 아니 세련된 변주곡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 울면서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