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하마 Aug 14. 2021

하드보일드 한 스토리와 시골생활

- 지상에서의 거룩한 한 끼

  많은 분들이 시골에 있으면 뭘 먹고 사느냐고 묻습니다. 혹시 굶지 않을까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굶지도 않지만 식탐이 줄어 과식하지도 않습니다. 하루에 두 끼니, 어떤 날은 한 끼니로 족합니다. 몸이 가벼워져서  둔하지 않은 움직임과 머리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 건 덤으로 얻었습니다.    


  

  삶은 감자 두 개.

  살짝 데친 양배추. 

  잘 삶은 찰옥수수. 

  대저 토마토 한 개와 방울토마토 다섯 개.

  그리고 달달한 곰보빵과 우유 한 잔. 

  거의 일주일째 매번 같은 식단입니다. 혼자서 이렇게 식탁을 차려놓고 먹으려고 하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양념으로 뒤섞여 달콤하다가 목이 메기도 합니다. 땅기운 흠씬 머금고, 하늘빛 가득 담아 탱글탱글하게 익은 것들을 식탁에 올리면 오늘 하루도 최소한 밥값은 해야겠단 다짐을 하게 됩니다. 욕심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밥값의 절반은 됩니다. 욕심을 버리면 꽃이 없어도 향기가 납니다.  

  입안에서 삶은 감자와 토마토를 우걱우걱 씹을 때, 생존의 굴욕감과 살아있는 날들의 기쁨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돕니다. 희망을 안락사시켜버린 지 이미 오래됐지만 그래도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언제 어디서든 일하는 중입니다. 남아 있는 시간을 환상 속에 넣어두지 않고, 쓰는 말들이 자위행위가 되지 않도록 일을 하고 있습니다. 쓰레기가 된 남아있는 시간 안에서 구차하게 아메바처럼 살 순 없으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