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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Aug 24. 2022

김애란 작가의 '입동'

  


  2014년 겨울, 여의도 KBS 본관 5층 1 라디오 사무실.

  출연자와 통화를 끝내고, 질의서와 출연 요청서를 메일로 보내 놓고 한숨 돌릴 즈음 ‘창작과 비평’ 겨울호를 펼쳤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입동’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점심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빠져들었습니다. 다 읽고 난 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출연자가 오고,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입동’의 잔상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렇게 읽었던 ‘입동’을 거의 8년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수록돼 있더군요. 다시 읽어도 예전에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그 느낌은 그대로였습니다.   


        

  내레이터 ‘나’는 전형적인 소시민입니다. 집값의 반 이상을 은행 대출로 끼고, 아주 힘겹게 24평 아파트를 장만하죠. 친구로부터 부러움을 받을 때마다 “그래봤자 하우스푸어”라고 겸연쩍게 변명하면, 친구는 “나는 그냥 푸어인데 그래도 너는 하우스 푸어니 얼마나 좋냐”는 비아냥까지 듣게 되죠. 이십여 년간 셋방살이로 떠돌다가 이제 겨우 뿌리를 내린 느낌, 아들 영우는 더 이상 유치원을 옮기지 않아서 좋다고 하고, 아내는 ‘북유럽 스타일 가구’나 ‘스칸디나비아 패브릭’ 같은 인테리어에 대한 속물적인 집착을 드러냅니다. 그건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를 갖고 싶어 하는 소시민적인 욕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영우는 어린이 집에서 후진하는 차에 치여 목숨을 잃죠.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함께 할 수 없는 아이. 무한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죠. 그런 부부에게 아이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어린이집 원장, 이웃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쑥덕거림은 아내에 대한 집단 가해의 수준이죠.  

  아들 영우는 없지만 생활은 여전히 이어집니다. 주택 대출금이 연체되고, 빚에 시달리면서도 아이의 보험금에는 감히 손댈 수가 없습니다. 그 돈을 쓰면 영우를 죽게 한 사람들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용서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던 겁니다. 더구나 그 돈을 쓰자고 하면 아내가 자신을 괴물로 볼까 봐 겁이 났던 거죠.

  결국은 아내가 그 돈을 쓰자고 먼저 말합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계획했던 집안의 도배를 하기로 합니다.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지금?

  -응.          



  서사 구조로 보면 이게 첫 장면입니다.            



  -여보?

  -……

  -영우 엄마?

  -……

  미진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도배지 든 양손을 벽에서 떼지 못한 채 아내를 내려다봤다.

  -여기……

  -응?

  -여기……영우가 뭐 써놨어……

  -……뭐라고?

  -영우가 자기 이름…… 써놨어.

  아내가 떨리는 손으로 벽 아래를 가리켰다.

  -근데 다…… 못 썼어……

  아내의 어깨가 희미하게 떨렸다.

  -아직 성하고……

  -……

  -이응하고……

  -……

  -이응하고, 아니 이응밖에 못 썼어……           



  부부는 벽에 새 도배를 하다가 벽 구석에 아들 우가 미처 다 쓰지 못한 제 이름 낙서를 발견합니다. 영우라는 이름을 채 다 쓰지 못하고 ‘김’자랑 ‘이응’자만 있는. 영우가 남긴 흔적에 결국 아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에 우리는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어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김애란의 ‘입동’ 아이를 잃은 부부의 아픔과 추위가 절후인 입동보다 먼저 오는 것을 뜻하면서 동시에 일 년 내내 아니 평생 동안 입동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부모 운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유치원생인 영우의 죽음은 세월호 속에서 죽어간 아이들로 환원이 되었고, 영우의 부모가 겪는 아픔은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님들의 아픔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만큼 하면 됐다는 말로 과거를 지우려고 하는 건 억지고 폭력입니다. 내 아이라면?이라는 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질문이 아니더라도 슬픔을 공유하는 건 인간의 본성입니다.           

  소설을 읽지 않는 시대, 소설이 읽히지 않는 시대, 그럼에도 소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이해보다는 공감, 공감보다는 감동이 있는 소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쓰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죠. 김애란 작가와 동시대를 살며, 그의 작품을 읽는 건 축복입니다. 김금희, 최은영, 임솔아, 김멜라, 이원석, 기준영, 구병모 작가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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